[정동칼럼]수사기록 의존 기소는 개혁이 될 수 없다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라. 2006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말이다. 저 발언은 ‘검사들이 사무실에서 비공개 진술을 받아놓은 조서를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두는’ 수사기록 의존 재판을 공판과 구술 중심의 재판으로 바꾸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공판중심주의(형사재판)와 구술주의(민사재판)가 어느 정도 정착된 지금에 와서 보면 타당한 내용인데 20년 전에는 검찰이 ‘극대노’했고 나라가 술렁였다. 대법원장은 거친 표현을 사과하면서도 신념은 철회하지 않았다.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면 피해자 인권이 침해된다는 기적의 논리까지 펼쳐지는 가운데에서도 이 전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공판중심주의 정착을 위해 노력했고, 나는 그 끝자락에 판사가 되었다.
형사재판을 해봐야 비로소 판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나는 정말로 그렇게 느꼈다. 국가 권력 중 한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기준에서 가장 강하고 폭력적인 권력이 수사권한의 행사이므로 판사는 수사권 남용을 통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형사처벌은 가장 강하고 폭력적인 사법권의 행사이므로 판사는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고 유죄 인정 및 양형 판단에 신중해야 한다. 이런 추상적이고 교과서적인 원칙이 재판하는 과정에서 실무준칙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형사재판을 할 때는 매번 헌법과 판사의 소명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사재판을 했을 때는 피해자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집중했는데 이 역시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형사사법의 본질이 그러한 것 같다. 수사와 처벌은 피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삶을 흔드는 한편 피해자의 삶을 회복시키는 사법정의의 첫 단계가 되기에 모든 제도적 논의에 삶의 무게가 얹힌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판사가 법정에서 직접 목격하고 들은 것을 근거로 재판해야 한다는 원칙)를 구현하고자 노력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 덕이 크다. 재판을 하면 수사기록이 그렇게 정갈하고 예쁠 수가 없다. 공소사실을 빈틈없이 정리하고 입증한 거대한 책. 증거를 분리제출 대신 한 번에 모아 받을 때는 수사 개시 단계에서부터 공판에 이르기까지 수사의 흐름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심지어 재판에서 증인신문을 하면서 일단의 심증을 형성한 후 사무실로 돌아와 기록을 검토하고 그 심증을 정반대로 바꾸는 경우도 생긴다. ‘증인, 그렇게 안 봤는데 순 거짓말쟁이였네’라고 혀를 끌끌 차며. 그런데 그런 흐뭇함을 이겨내고 법정 공방을 활성화시켜 보면 다른 관점이 나타날 때가 있다.
다른 관점에서 사실관계를 바라볼 때 생겨나는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한 수사는 대부분 부실하다. 즉, 수사관의 확증편향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이는 수사관이 조작을 일삼는 나쁜 놈이란 말이 아니다. 수사관도 인간인 이상 사건을 보고 처음 세운 가설에 부합하는 쪽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논리를 세워나가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개인적으론 수사기관의 확증편향을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를 통해, 직접 피고인과 증인에게 묻고 답변을 듣는 과정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20년 전 신념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직접주의는 다른 영역에도 확장되어 적용되는데, 예를 들어 피해자에게 증인신문과 별도로 피해 진술을 하도록 보장하면 판사 입장에서 그 사건의 의미가 확연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했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 단계에서 심문 절차를 만들자는 최근 법원의 입장도 직접주의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판사가 서류로만 보는 것과 직접 문답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직접주의 원칙은 판사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현재 진행되는 ‘검찰개혁’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표어 아래 검사가 일체의 수사권한도 보유하지 못하도록 설계되는 것 같다. 그러나 경찰로부터 송치된 기록만 본 검사가 사안을 충실히 파악해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까. 기록만 보고 공소를 유지하는 검사는 법정에서 제대로 된 공방을 벌일 수 있을까. 수사기록 의존 재판을 멈추고 직접 보고 들으라는 주장을 체화한 사람으로서 현재의 검찰개혁 논의가 기소 및 공소유지 단계에서의 직접주의 형해화로 귀결되고 그로 인해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가 후퇴하게 될까봐 걱정한다. 이를 막기 위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주체가 사안을 직접 마주할 수 있게끔 제도를 설계하는 데 논의가 집중되길 바란다. 실무상 돌아갈 수 있는 제도여야 함은 물론이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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