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만성 B형 간염, ‘완치’의 문 열린다
만성 B형 간염 환자에게 매일 먹는 한 알의 약은 일상이자, 동시에 무거운 짐이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환자에게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걷는 것과 같은 심리적 부담을 주곤 한다. 현재의 항바이러스제는 간경변이나 간암으로의 진행을 막아주는 훌륭한 방패이지만, 바이러스를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 터널의 끝에 서서히 빛이 보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과거의 치료 목표가 바이러스를 억제해 간 수치를 정상으로 유지하는 ‘관리’였다면, 이제는 ‘기능적 완치’라는 더욱 공격적인 목표가 정립됐다. 이는 약 복용을 중단한 후에도 6개월 이상 혈액 내에서 B형 간염 표면 항원이 검출되지 않고, 간 수치가 정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스스로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먹던 항바이러스제(바라크루드, 비리어드, 베믈리디 등)는 바이러스가 자기 복제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복사기 방해꾼’ 역할을 했다. 약을 먹는 동안 복사기는 멈췄지만, 우리 간세포 안에는 이미 바이러스의 ‘원본 설계도(cccDNA)’가 숨어 있어 약을 끊으면 이 원본 설계도가 다시 복사기를 돌려 바이러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평생 약을 먹어야 했다.
최근 개발 중인 완치 치료제들은 원본 설계도를 무력화하거나, 바이러스의 껍데기까지 싹 치워버리는 전략을 쓴다. 현재 완치 치료제 개발에서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것은 영국 제약사 GSK가 개발 중인 베피로비르센(Bepirovirsen)이다. 이 약은 ASO, 즉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티드라는 유전자 조각을 활용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직접 달라붙어 복제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임상 2b상에서 10%의 환자에서 기능적 완치 효과가 확인되었다. 기존 치료제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리고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립하기 위한 임상 3상(B-Well 등)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베피로비르센 단독 투여 외에도, 면역 조절제나 다른 기전의 약물과 함께 사용하여 완치율을 더 높이려는 연구가 병행되고 있다.
불량품을 만드는 ‘캡시드 저해제’. 바이러스는 껍데기(캡시드) 안에 알맹이를 채워 넣어야 완성된다. 이 약은 껍데기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게 하거나, 알맹이가 없는 빈 껍데기만 만들게 하여 제대로 된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대표적인 약물로 페비포스코르비르 나트륨 (Pevifoscorvir sodium, ALG-000184)과 ABI-4334 등이 있다.
잠든 우리 몸의 경찰을 깨우는 ‘면역 조절제’. B형 간염 바이러스는 교묘하게 우리 몸의 면역 세포(경찰)를 잠재운다. 면역조절제는 이 잠든 면역 세포를 다시 깨워, 우리 몸이 스스로 바이러스를 공격하게 만들고 내 몸의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를 계속 감시하게 한다. 대표적인 약물로 치료용 백신인 BRII-179(VBI-2601), PD-L1 항체(면역관문 억제제)인 ASC22(Envafolimab), 단일클론 항체인 토베비바트(Tobevibart, VIR-3434) 등이 있다.
물론 모든 환자가 내일부터 당장 약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치료제들이 기존 항바이러스제와 병용되거나 순차적으로 투여하는 등 가장 효과적인 조합을 찾는 과정이 남았다.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치료법들이 간 손상이 적고 건강한 상태의 환자들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미래의 완치제를 안전하게 투약받으려면 지금 복용 중인 약을 거르지 않고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간 손상을 최소화하며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제쯤 약을 그만 먹을 수 있을까요?”라는 환자의 질문에 이제는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머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할 근거가 마련되고 있다. B형 간염은 이제 ‘평생 관리하는 병’에서 ‘단기간에 완치할 수 있는 병’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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