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40주년 맞은 5·3민주항쟁의 역사적 평가

인천 5·3민주항쟁이 40주년을 맞았다. 1986년 5월3일 옛 주안동 시민회관 앞 일대에서 벌어진 항거는 이듬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항쟁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다. 당시 참가 인원만 5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수도권 주요 대학 학생·노동운동단체·일반 시민 등이 모여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의 퇴진과 헌법의 민주적 개정을 요구했다. 엄청나게 쏟아붓던 최루탄에 악전고투하며 취재를 했던 기자 초년 시절이 새롭게 다가온다.
인천 5·3민주항쟁은 1987년 6·10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선출을 골자로 하는 6공화국 헌법 개헌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한동안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수단인 '보도지침'으로 인해 '5·3사태'라는 부정적 명칭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마침내 202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을 통해 3·15의거·4·19혁명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다. 다만 40년이 지났는데도 인천 5·3민주항쟁의 위상이 다른 민주화운동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여러 시각을 통한 연구로 5·3민주항쟁 자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분석을 낳는다.
인천 5·3민주항쟁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한 '상징적 민주운동'으로 꼽힌다. 민주적 개헌 요구와 반독재 구호를 넘어 노동3권 보장·8시간 노동제·파업 자유 등을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외치며 정치의 주체로 떠오른 첫 집회라는 의미가 있다. 결국 인천에서 촉발된 반독재 정서는 장기집권을 이어가려던 전두환 신군부를 '공황 상태'에 빠지게 했고, 6·10항쟁에도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인천민주화운동센터는 지난 3일 '제40주년 인천5·3민주항쟁'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항쟁 당시 옛 시민회관 앞에서 주안역 남광장에 이르는 도로를 '5·3민주로'라는 이름의 명예도로로 지정하는 제막식을 진행했다. 아울러 항쟁 당시 경찰에 연행된 구속자들이 모여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청구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40주년을 맞은 인천 5·3민주항쟁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이어가려면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은 필수적이다. 서울과 광주를 비롯해 대구·부산·창원 등 주요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역은 기념관을 짓고 민주화운동 역사를 기록하며 미래세대를 잇는 활동을 펼친다. 그래서 새로운 인식으로 하루라도 빨리 인천민주화운동기념관을 세웠으면 한다. 여기에는 인천 5·3민주항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기록 등을 남겨 역사적 자산을 어떻게 정리하고 미래세대에 전할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할 터이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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