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 선생님 덕에 나만의 방식 살려 신나게 연극합니다”

한겨레 2026. 5. 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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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연극 연출가 이상우 선생님을 기리며
극단 연우무대와 차이무 만들고
한예종 교수로 많은 제자 길러내
이상우 연출가. 극단 차이무 제공

2026년 4월26일, 이상우 선생님은 또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셨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이상우 선생님의 제자이다. 내가 연출님이 아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택한 것은 이상우라는 사람은 나에게 연극이라는 차원을 넘어 이 세상을 제대로 살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이유로 이상우 선생님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상우 선생님은 1951년 태어나셨고, 서울대 문리대 미학과를 졸업하셨다. 광고 회사에 다니다 동료들과 함께 1977년에 ‘극단 연우무대’를 창단하셨고, 1995년에 ‘극단 차이무’를 창단하셨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교수로 재직하셨다. 대표적인 연극 연출 작품은 ‘칠수와 만수’, ‘늘근도둑 이야기’, ‘비언소’, ‘통일 익스프레스’, ‘돼지 사냥’, ‘거기’, ‘마르고 닳도록’, ‘변’, ‘올모스트 메인’, ‘광부화가들’, ‘러브 러브 러브’,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꼬리솜 이야기’ 등이 있다. 영화 연출은 ‘작은 연못’, 저서는 ‘야생연극_늘근나무 창작노트’ 등이 있다.

“너는 참 잘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만 할 수 있는 너만의 것을 해.”

학교에서 만난 이상우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는 아무도 관심 없던 나라는 사람의 인생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실제로 당시의 내가 진짜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관심 있는 말 한마디는 내 인생의 소중한 날개가 되어 주었고, 많은 학생의 인생에도 커다란 날개가 되어 주었다.

이상우 연출가. 극단 차이무 제공

“밥은 먹었냐?”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나와 동료들에게 선생님은 자주 밥과 술을 사주시며 안주로 연극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시에 번역극이 주가 되던 한국 연극계에 한국만의 창작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고 늘 입에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셨고, 덕분에 많은 제자가 한국 사람만의 한국 연극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나는 선생님이 하시는 그 말이 늘 싫었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감사하게도 이상우 선생님을 통해 ‘극단 차이무’ 선배들을 만나 작업할 기회를 얻게 됐고, 늘 말로만 듣던 잘하는 선배들을 만나게 됐다. (당시 나는 열심히 했지만 잘 해내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알게 됐다. 현장이라는 곳은 열심히만 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잘해야지 살아남는 곳이라는 것을!

그때 배웠던 일명 ‘차이무식’ 연극은 내 연극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극단 차/이/무’는 ‘차원이동무대선’의 줄임말! ‘차원이동무대선’은 관객을 태우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여주는 이들이라는 것! 선생님이 늘 자랑하시던 ‘극단 차이무’를 보며 언젠가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팀을 만들어 연극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의 동료들과 함께 ‘극단 신세계’를 만들어 연극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연출에게 영향을 받은 많은 제자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한국 연극을 이어가고 있다.

이상우 연출가. 김수정 대표 제공

학교를 퇴임하신 이상우 선생님은 강원도 고성 바다 근처로 거처를 옮기셨고, 그곳에서도 창작 작업을 이어가셨다.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은 자신을 늘근나무라고 칭하셨는데, 고성에서는 나무와 돌에 또 다른 차원을 부여하는 취미를 갖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잠시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시고 행복해하셨지만 결국 몸이 안 좋아지셨고, 서울에서 투병을 이어가시다 이 세상의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시게 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한테 물으셨다.

“넌 연극을 왜 하니?” “글쎄요. 재밌잖아요. 선생님은 왜 하시는데요?” “글쎄다. 신나잖아?”

내가 언제까지 재밌게 나만의 방식의 연극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를 비롯한 많이 사람이 이상우라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고, 선생님과 같은 차원에 살게 되지 않은 지금 그가 그립다는 것이다. 내가 나중에 선생님 차원으로 찾아갔을 때도 나의 연극 스승님이, ‘재밌게 연극하고 왔냐?’ 해주시길 바란다. 지면의 한계로 이상우 선생님의 신나는 이야기를 더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보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늘근나무, 아재 언니 연출가 선생님 이상우!

김수정/극단 신세계 대표·상임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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