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동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마을 세월을 이기지 못했네 [조문환의 연암루트2]

조문환 여행 전문가·작가 2026. 5. 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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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 제일의 술맛 도시
낙후된 농촌 같은 방균진
‘경동제일진’ 명색 무색
술맛 좋다는 계주 시장서
연암과 조우한 듯한 착각
함께 즐기는 도리 떠올려

여행은 편견을 지우고 빼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또 새로운 편견을 더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더하고 지우고 쌓고 무너뜨리는, 밀물과 썰물의 무한 반복이 결국 어떠한 결정체로 남아 '나의 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을 하든 안 하든 마찬가지겠다.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않은 그 상태로도 가능할까? 머리가 복잡하다.

연암이 산해관에서 만리장성의 각산을 오를 때 오직 그의 눈에 허물을 지녔다고 한 것도 사실은 스스로 지닌 편견을 한탄한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 비록 깎아지른 각산이라도 금방 자신의 발아래 있을 것을 한 걸음도 떼어 보기 전에 이미 오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버린 것이다. 지레짐작으로 포기하거나 겁먹는 것도, 반대로 업신여기는 것도 모두 편견에서 온다. 여행은 보편적 편견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곁길과 같을 수 있다. 길을 걸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여행 속에서 맞이하게 된다.
패루의 글이 무색한 거리 경동제일진. /조문환

내 편견은 결국 연암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

아,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가진 무수한 허물과 편견을. 일들 속에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나는 편견을 토해내는 자동기계와도 같은 존재로 살아 움직였다. 편견은 나를 무너뜨리고 상대를 하대하거나 업신여겨 그를 그로 보지 못하고 기형적 인간으로 치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나는 무수히 갈고 닦아,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을 그 자체로 인식하고 무색무취의 존재는 아닐지라도 그를 그로 볼 수 있는 사람이길 갈망한다.

역사도 편견 속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취사선택의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과거 누군가의 성과나 발자취를 따르기도 하고 배제하기도 하며, 미래의 누군가도 내가 걸었던 길을 따르기도 하고 배제하기도 하는, 이 무한하고 살벌한 취사선택의 과정에 놓여 있는 존재인데 그래서 역사를 선택적 생존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길을 선택적으로 취사하는 중이다. 그 선택적 취사선택의 결과는 연암으로 귀결되었다.
중국 최고(最古) 목조건물 독락사 관음각. /조문환

어제의 경동제일진이 오늘은 낙후된 농촌마을

옥전현에서 계주까지는 약 37㎞거리다. 계주에 근접할수록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먼저 경동제일진이라 불리었던 방균진으로 달려갔다. 북경의 동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인데, 패루가 시장 중심지를 지키고 있다. 예전에는 패루가 서 있는 3차선 전체를 도로로 사용했지 싶지만 지금은 가운데 차선을 상가로 조성해 놓아 도로의 혼잡을 더했다.

너무 믿었던 탓일지 모른다. 방균진은 중국 농촌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해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102번 국도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갈라진 상가들, 가장자리로 갈수록 조잡하고 빈 점포들, 닭 머리를 무거운 칼로 내리치는 식당 주인, 오물이며 쓰레기가 낭자한 시장거리, 패루에 걸려 있는 '경동제일진(京東第一鎭)'이 무색하게 만든 장면들이다. 모를 일이다. 연암이 이 길을 걸었을 때에는 경동제일의 고장이었을 수도. 그 산세와 화려하게 지어진 건축물들을 통해 연암은 신세계로 느꼈을 수 있다.

계주의 상징 독락사와 어양고루

어양은 계주의 옛 지명으로 독락사(獨樂寺)와 어양고루는 계주의 중심이자 상징성을 지닌다. 독락사의 관음각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누각식 건물이다. 높이가 자그마치 23미터, 이 관음각 내부에는 16.8m의 거대한 관음보살이 안치되어 있는데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막아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했다. 안녹산이 이곳에서 처음 난을 모의했다는 곳으로 독락사 현판은 중국의 10대 간신이라 일컫는 엄숭의 글이라고 한다.

독락사는 안녹산과 엄숭의 열기와 간사함이 투영된 곳이다. 755년 안녹산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장안을 점령하자 당 현종은 촉으로 피신하고 수도 장안은 함락되었다. 하지만, 763년 당군과 회족의 연합군에 의해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 탓에 당나라는 국력이 급격히 약화하고 중앙권력도 흔들리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엄숭은 명나라 가정제 시대의 재상으로 아들 엄세번과 함께 부정 축재와 탄압을 일삼은 간신 중의 간신이었다. 늦깎이 60대에 이르러 줄을 잘 타 재상에 올랐다. 황제가 정사를 돌보지 않은 틈을 나 나라를 마음대로 주물렀지만 결국 말년인 87세에 굶어 죽었던 인물이었다.
연암이 술을 마셨을 어양고루 앞 광장. /조문환

관동제일의 술 맛을 지닌 도시, 밤마다 야시장이 펼쳐지고

어양고루 앞은 광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원형의 대리석 마당은 저녁 5시가 되니 삼삼오오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여섯 시를 넘기면서부터는 광장은 삽시간에 인산인해로 변했다. 이윽고 시가지의 중앙대로 변이 점차 사람들로 차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야시장이 벌어졌다.

마치 주말이라서인지, 야시장은 말 그대로 불야성을 이뤘다. 병아리와 고양이, 온갖 동물들을 파는 사람부터 양고치와 부침개, 치킨과 같은 먹을거리가 주류를 이루는 대로변 시장이 적어도 1㎞가량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인도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아 양고치와 몇 가지 음식을 시켜 놓고 계주시민들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연암도 그랬다. 숙소에 도착하니 문밖에는 장사꾼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고 말과 나귀 수레에 서책과 서화가 실려 있기도 하고 길들인 동물들의 진기한 재주도 구경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우리가 본 이 장면은 200년이 넘은 연암의 행로에서도 그대로 펼쳐졌으니, 이것이 이들의 역사요 삶이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
밤마다 야시장이 펼쳐지는 중앙대로. /조문환

홀로 즐거움이냐 함께 즐거움이냐

김진겸이 독락재(獨樂齋)라는 집을 짓고 혼자 또는 친구들과 책을 읽으며 삶의 여유를 누리고자 했다. 이에 연암은 '천하 사람들과 함께 즐기면 여유가 있지만 자기 홀로 즐기자면 부족한 법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독락재기(獨樂齋記)'를 써 보냈다. 그러면서 연암은 자기 본성대로 행하고 자기 자신에 전념할 수 있다면 술 마시는 것으로도 평생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지만 밝은 창 조촐한 책상에서 낮이나 밤이나 글을 읽어 게을리하지 않는 자는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고 술과 글을 빗대기도 했다.

아 오늘 밤 연암과 술 맛 좋다는 이 계주의 시장 모퉁이에 마주 앉아 흉금을 터놓고 거나하게 마시고 취해보고 싶다. 연암도 그렇게 설파했지만 독락(獨樂)보다는 중락(衆樂)이 더 취할 수 있기에. 그대여, 함께 글 읽고 함께 술 마실 수 있는 그런 시간, 그런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가? 그대라 할 수 있는 나여!

/조문환 여행 전문가·작가

필자소개 ☞ 작가, 시인. 하동 평사리에 산다. 현장에서 일하고 현장에서 내일을 본다. 상상한 만큼 성장한다는 말을 믿는다. 그 상상을 현장으로 가져오는 일을 하는 중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