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달린 공무원 ‘뉴비’가 묻다, AI 행정의 목적지는? [오상도의 경기유랑]
아시모프의 역설과 ‘새로’의 등장…SF 소설이 현실이 된 거리와 관공서
전통시장 짐꾼부터 화재 현장 ‘파이로’까지, 대도시의 ‘피지컬 AI’ 전쟁
알고리즘은 면죄부가 아니다…효율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적 유대’
“뉴비 지나갈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함께하는 성남시 순찰 로봇입니다.”

이 낯설고도 흥미로운 장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뉴비’. 지난해 11월 이곳 율동공원에 둥지를 튼 뒤 지금은 판교와 야탑 등 성남 곳곳의 번화가를 누비며 시민의 안전을 살피는 순찰대장입니다.
호기심이 발동해 10여분간 이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가 보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겉모습은 귀엽지만, 내실은 여느 자율주행 자동차 못지않습니다. 대형 렌즈 2개를 포함해 무려 12개의 ‘눈’(렌즈)이 로봇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제어합니다. 앞 부분에 달린 렌즈의 숫자만 그렇습니다.

며칠 뒤 야심한 밤, 가족과 식사를 마치고 산책에 나섰다가 뉴비를 다시 만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밝은 라이트를 켜고 공원 구석구석을 살피는 녀석을 마주하니, 왠지 모를 반가움이 앞섭니다.
이달 초 서현역 퇴근길에서도 녀석은 분주했습니다. 인파 속에서 행인들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으려 이리저리 몸을 사리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지만,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우리 일상에 이토록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 녀석은 성남 시민들에게 구면입니다. 처음엔 판교 일대에서 음식을 나르던 ‘배달 로봇’으로 눈도장을 찍었었지요. 잠시 잊혔던 그 녀석이 이제는 시민의 밤길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 돌아온 셈입니다.
차가운 기계 덩어리일 뿐인데, 봄날의 풍경 속에 녹아든 뉴비의 뒷모습에서 묘한 온기를 느낍니다. 첨단 기술이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우리의 안전과 일상을 다정하게 보듬는 미래, 거리를 누비는 저 작은 로봇의 바퀴 자국 안에 이미 그 미래가 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수원시나 화성시청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공무원이 아닌 ‘민원 로봇’입니다. 9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민원인을 안내하는 이들을 마주하노라면, AI와 로봇이 공공 업무의 주역이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풍경은 SF 장르에선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뜨거운 화두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에비던스(Evidence)>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시장 후보로 나선 인물이 실은 정교한 ‘휴머노이드’라는 의혹을 다루는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간보다 더 도덕적이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로봇 정치인은 가능한가?” 로봇 3원칙을 철저히 준수하는 기계가 부패와 편견에 찌든 인간 정치인보다 시민에게 더 이로울 수 있다는 역설은, 당장 다가올 지방선거를 앞둔 우리에게도 묘한 울림을 줍니다.
하지만 기술의 장밋빛 미래 뒤엔 늘 서늘한 경고음이 따릅니다.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가 보여주듯,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예측 행정’은 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 의지와 인권을 침해할 위험을 내포합니다. ‘시스템의 결정’이라는 불투명한 근거가 행정의 면죄부가 될 때, 사회는 거대한 통제의 굴레에 갇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경기지역 대도시들은 이러한 ‘로봇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삭막한 기계가 아닌, 든든한 이웃으로서 행정 혁신을 이끄는 모습입니다. 성남시는 오는 8월부터 모란전통시장에 ‘AI 스마트 짐꾼’을 투입합니다. 좁고 복잡한 시장 골목에서 20㎏의 짐을 거뜬히 들고 점포를 안내하는 이 로봇은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표준 모델이 될 전망입니다.

파이로는 폭발이나 붕괴 위험으로 소방대원이 진입하기 어려운 극한의 화재 현장에 투입돼 분당 2650ℓ의 물을 뿜어내며 화재 진압과 인명 탐색의 선봉 역할을 맡습니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이 추진하는 ‘AI 챌린지 프로그램’은 이러한 변화의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죠. 5.8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공모에선 성남시의 짐꾼 로봇을 비롯해 구조 현장 인명 검색 피지컬 AI, 어르신 맞춤형 돌봄 케어봇, 지반침하 예측 시스템, 복합 재난 관제 플랫폼 등 9개가 지원 대상에 선정됐죠.

그러나 기술의 화려함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행정의 온도’입니다. 소설 속 미래가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는 명확합니다.
첫째, 데이터의 공정성이 곧 행정의 정의입니다. 알고리즘에 투입되는 데이터에 편향이 있다면, 그 결과는 특정 계층에 대한 차별로 이어집니다. 효율성을 위해 소수의 권리를 희생하는 행정은 진정한 혁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셋째, 기술이 새로운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로봇 행정이 고도화될수록 디지털 소외계층이 느끼는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이 행정의 편의를 넘어 또 다른 소외를 낳지 않도록 끊임없이 현장을 살피는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로봇은 행정의 효율을 높이는 강력한 도구일 뿐, 그 목적지는 언제나 사람이어야 합니다. 알고리즘의 차가운 판단 위에 인간 공무원의 따뜻한 책임감이 더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기술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최종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은 시스템 뒤에 숨은 인간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4억원 자산가 전원주의 치매 유언장…금괴 10kg이 증명한 ‘현실 생존법’
- “나이 들어서” “통장 까자”…아이비·장근석·추성훈의 악플 ‘사이다’ 대처법
- 32억원 건물 팔고 월세 1300만 택했다…가수 소유, 집 안 사는 ‘영리한 계산법’
-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암 투병 숨긴 채 끝까지 현장 지킨 김지영·허참·김영애
- 2000만원 연봉이 40억원 매출로…전현무가 축의금 ‘1억원’ 뿌린 진짜 이유
- 철심 7개·장애 4급…‘슈주’ 김희철, 웃음 뒤 삼킨 ‘시한부’ 가수 수명
- 육사 수석·서울대 엘리트서 ‘60.83점’ 합격생으로…서경석, 오만의 성채가 허물어진 자리
- 임영웅 1억 거절·홍지윤 일당 3000만원, 그들이 직접 쓴 ‘이름 가격표’
- 30억 빚 → 600억 매출…허경환은 ‘아버지 SUV’ 먼저 사러 갔다
-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고소영·남규리·홍진희, 멍들게 한 헛소문의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