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어린이날, 우리는 미래를 올려다보았다

5월은 유난히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까지. 누군가의 존재를 축복하고 감사하는 날들이 5월 안에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5월은 단순한 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절처럼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올해 나에게 가장 특별했던 날은 단연 어린이날이었다.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나 쭉 자랐기 때문에 한국에서 어린이날을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 또한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어린이날이 새롭게 다가왔다. 어릴 적에는 그저 선물을 받고 놀러 가는 날이었다면, 이제는 아이에게 어떤 하루를 선물해줄지 고민하는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어린이날을 앞두고 나는 꽤 오랫동안 검색창 앞에 앉아있었다. 아이와 갈 만한 곳들을 찾다보니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전국의 유명한 축제들 대부분이 어린이날 연휴에 맞춰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의 대표 행사부터 과학, 자연, 문화, 역사에 이르기까지, 그것만 보아도 어린이날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어린이날은 단순히 아이들만의 날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한 어른들의 마음이 가장 크게 움직이는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유독 하늘을 나는 것을 좋아한다. 비행기만 보면 한참을 올려다보고, 로켓 영상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곤 한다. 얼마전 국립광주과학관에서도 아이의 시선은 누리호 영상 앞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거대한 불꽃을 뿜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누리호의 영상을 숨도 쉬지않고 바라보던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빛은 아직도 선하게 기억난다. 그렇게 한참 동안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이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래, 어린이날은 저 아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보자.'
그렇게 우리는 고흥우주항공축제로 마음을 정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발사장 견학 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 누리호가 발사된 장소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어린이날 연휴의 긴 이동이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국 우리는 새벽부터 서둘러 집을 떠났다.
그리고 도착한 고흥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푸른 바다와 넓은 하늘, 그리고 도시와는 조금 다른 느린 공기, 어린이날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고흥은 어딘가 담백하고 단단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축제장에는 가족들의 사랑이 느껴졌고, 곳곳에는 우주와 과학을 주제로 한 체험부스들이 이어졌다. 로켓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는 아이들, 우주복 체험을 하며 신나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모습을 눈과 카메라에 담고있는 부모님들까지. 그 공간은 단지 어린이날을 즐기는 곳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기꺼이 함께 따라가 주는 부모들의 마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발사장 견학이었다.
안내를 따라 이동하며 실제 발사대를 가까이에서 마주한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텔레비전 뉴스 속에서만 보던 장소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도 가슴을 울렸던 건 우리가 우리 손으로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주 개발은 멀게만 느껴지는 분야였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직접 로켓을 만들고, 위성을 쏘아 올리며, 우주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나라가 되었다.
설명을 들으며 발사장을 바라보는데 마음 한편이 뜨거워졌다. 아마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감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우주는 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로켓과 우주비행사는 영화 속 장면 같았고, NASA(미국 항공우주국)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 아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누리호를 이야기 한다. 발사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로켓이 왜 하늘로 가는지 묻고, 언젠가는 우주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상상으로만 바라보던 세계를, 이 아이는 현실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이, 가만히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음악이 떠올랐다. 바로 홀스트의 <행성> 중 '주피터' 였다. 웅장하게 시작되는 선율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음악은 단지 거대하고 압도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인간이 미래를 꿈꾸는 마음, 더 먼 곳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하는 희망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고흥의 발사장을 바라보던 순간, 그 음악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왔다. 닿을 수 없는 곳을 꿈꾸고,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했다. 클래식 음악 속에서도 그런 동경은 계속 이어져 왔다. 홀스트는 행성을 음악으로 표현했고, 수많은 작곡가들은 광활한 자연과 인간의 가능성을 노래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실제로 로켓을 만들고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날 내가 가장 오래 바라본 것은 거대한 발사대보다 그 앞에 서 있던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아이는 작은 손으로 로켓을 가리키며 끝없이 질문했다. 어쩌면 어린이날은 그런 날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하는 동시에, 어른들 역시 아이들을 통해 미래를 바라보게 되는 날. 고흥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나 역시 아이와 함께 미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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