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詩)가 오는 계절

이혜연 충북교육연구정보원 총무팀장 2026. 5. 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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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혜연 충북교육연구정보원 총무팀장

봄은 나날이 깊어져 초록색으로 물들어 간다. 세상 만물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 각자의 색으로 물들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생각난다. '가까이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그 풀꽃 말이다.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문장인 "너도 그렇다"이다. '나만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 문장을 처음 만난 순간 후광이 비치듯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색 나뭇잎도, 따뜻한 햇살아래 한가롭게 낮잠 자는 고양이도, 개굴개굴 울기 시작한 개구리도 다정한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시다. 고향의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서 그려지고 이미 노래로도 많이 접해왔던 정지용 시인의 <향수>도 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와 크게 다르지 않게 실개천이 흐르고, 급할 것 없이 느릿느릿 여유를 부리며 여물을 먹거나, 긴 꼬리로 파리를 쫒던 황소와 끝을 알 수 없던 파란 하늘과 해가 지면 밤하늘에 쏟아져 내릴 듯 반짝이던 별과 화롯불에 구워 먹던 밤이 생각나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 간 듯하다.

주말을 맞이하여 아이와 제천으로 향하는 길. 산자락 여기저기에 보라색 꽃이 피어있다. 예부터 딸을 낳으면 시집갈 때 장을 해주기 위해 심었다는 오동나무 꽃이다. 어릴 때 집 뒤에서 매해 보라색 꽃을 피우던 오동나무가 생각나기도 하고, 오랜만에 오동나무 꽃을 보니 국어시간에 배웠던 이병기 시인의 <오동꽃>이 생각났다. 사실 학교에서 시를 배울 때는 시험에 출제되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해설에 대한 것만 선택적으로 공부하여 시의 전문을 기억하지 못해 인터넷으로 찾아 들으며 아이와 좋아하는 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우리 집 청소년은 뚱한 얼굴로 왜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이지만, 또 물어보면 시큰둥하게나마 대답해주니 이야기하는 재미에 자꾸 물어보게 된다. 첨언을 하면 우리 자매들 중 어느 누구도 오동나무 장을 혼수로 하지 못했다. 농사짓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어느 순간 아버지가 나무를 정리했기 때문이다.

충주를 지나는 길에 목계나루 이정표를 보니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가 생각났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이렇게 시작하는 시로 신경림 시인만의 슬픔이 있고, 그 슬픔을 동경하던 시절에 좋아했던 시다. 쇠락한 목계장터를 배경으로 정착하고 싶지만 떠돌이로 살 수밖에 없는 민중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문장에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은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비가 오면 가끔씩 우산을 받쳐 들고 아버지와 냇가로 올라온 물고기와 민물새우를 잡아 애호박과 뚝뚝 떼어낸 수제비를 넣어 끓여낸 찌개를 맛있게 먹던 기억 때문일까?

곧 감자꽃이 피어날 계절이다. 초록색으로 무성한 감자줄기를 보니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이 생각난다. <감자꽃>은 짧으면서도 아주 재미있어 아이들도 좋아하는 시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다 하얀 감자"가 시의 전문이며, 일제 강점기시대에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야기한 시다. 우리 아이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재미있어하며 감자를 캐거나 먹을 때마다 시를 읊곤 했다. 자기가 캔 감자가 제일 예쁘고 맛있다면서 말이다. 흔하디흔한 감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시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삶에 대한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햇살이 따사로운 오늘은 어떤 시가 나에게 올까? 평생 시를 써온 대가들이 하나하나 시어를 고르고 골라, 정교하게 벼리고 벼린 언어로 완성된 시가 살아 숨 쉬며 가슴 뛰게 한다. 우리에게 찬란한 5월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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