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마당정원 예원에는 많은 생명이 함께 삽니다. 그중 안젤라가 특히 정성을 다하는 것은 꽃과 나무입니다. 심고, 돌보고, 물주고, 가꾸는 일로 하루해가 짧습니다. 꽃은 피어나서 좋고, 나무는 자라나서 좋았습니다. 색이 좋고, 모양이 좋고, 이름이 멋져 예원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정원을 가꾸다 알았습니다. 좋은 나무도 아름다운 꽃도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습니다.
예원의 첫해에 클레마티스를 심었습니다. 꽃이 아름다워 볕 좋은 곳에 두면 잘 자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강한 햇볕은 너무 버거웠습니다. 뜨거운 볕에 잎은 지치고, 꽃은 힘을 잃었습니다. 결국 반그늘 쪽으로 자리를 옮겨 주었습니다.
크리스마스로즈도 나무 밑 그늘에서 편안하게 자랍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직접 받지 않아 좋습니다. 그늘에서 더 깊고 단단하게 잘 견딥니다. 모두가 밝은 곳에서만 잘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생명은 그늘에서, 어떤 생명은 햇볕에서 무성해집니다.
나무와 꽃이 아름다워지려면 생존의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배수가 잘되어야 합니다. 물이 고이면 뿌리가 썩습니다. 햇볕은 부족해도 강해도 문제입니다. 바람도, 흙도, 온도도 맞아야 합니다. 나무는 의지만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자기 생명에 맞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시듭니다. 성실한 사람도, 마음의 배수가 되지 않으면 감정이 고입니다. 밝은 사람도, 뜨거운 경쟁과 평가로 지칩니다. 깊은 사람도, 끊임없이 소란한 곳에서는 자기 뿌리를 잃습니다.
생존의 조건만 맞았다고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나무는 혼자 살 수 있지만, 정원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원은 함께 어울릴 때 완성됩니다. 아름다움은 혼자 빛나지 않습니다. 함께 어울릴 때 더 깊어집니다. 앞에 서야 할 꽃이 있고, 뒷배경이 되어야 할 나무가 있습니다. 낮게 피어야 아름다운 꽃이 있고, 높이 서야 풍경이 되는 나무가 있습니다. 모두가 앞에 서려고 하면 정원은 답답해집니다. 모두가 높아지려고 하면 작은 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피는 계절도 중요합니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을 견디는 잎이 있고, 가을에 물드는 나무가 있고, 겨울에도 푸른 생명이 있습니다. 한꺼번에 모두 피어나는 정원은 잠시만 화려합니다. 긴 시간 아름다운 정원은 계절마다 피어나는 생명이 다릅니다. 기다림과 순서가 있어야 정원은 깊어집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크기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색이 있습니다. 내가 피어나는 계절이 있습니다. 누구는 앞에서 말해야 하고, 누구는 뒤에서 받쳐 주어야 합니다. 누구는 강한 색으로 분위기를 만들고, 누구는 부드러운 색으로 편안하게 해줍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가 살아나는 곳입니다. 내가 있어 주변도 살아나는 곳입니다. 내 색이 다른 색을 해치지 않고 어울리는 곳입니다. 내 키가 다른 생명을 가리지 않고 풍경을 이루는 곳입니다. 내 뿌리가 숨 쉬고, 내 가지가 하늘을 향하고, 내 꽃이 때가 되어 피어나는 곳입니다.
삶의 어느 순간 자기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내 생명에 맞는 자리에 있는가? 나는 주변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는가? 나는 내 키와 색과 계절을 알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혼자 빛나려는 사람인가? 함께 정원을 이루려는 사람인가?
꽃과 나무는 자기 자리를 찾을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가 살고, 우리가 함께 아름다워지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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