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화려한 변신 새로운 라이스위스키 세상 열린다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2026. 5. 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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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위스키' 첫 제조 허가
증류식 소주서 업그레이드
스카치·버번 못지않은 풍미
세계 술시장에도 쌀로 도전
K푸드 마지막 퍼즐 완성할 것
글린트증류소가 만든 라이스위스키 '이화'.

충남 논산에 있는 글린트증류소. 이곳에서는 현재 쌀을 이용해 위스키를 제조하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쌀로 위스키를 만든다고? 위스키가 어떤 술인가. 싹을 틔운 보리, 즉 몰트를 이용해 만든 발효주를 증류해 원액을 만든 뒤에 오크통에서 장기간 숙성한 술이 바로 위스키다. 고급 술의 대명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술의 제왕'으로 통한다. 그런데 글린트증류소에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쌀로 만드는 위스키 주류 제조 허가를 얻었다. 여기에서 나오는 술에는 공식적으로 라이스위스키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사실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쌀로 만든 위스키 성격의 술이 시중에 이미 출시되고 있기는 하다. 쌀로 만든 증류식소주 원액을 오크통에 숙성하면 위스키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위스키는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라이스위스키라는 이름을 쓰지는 못한다. 국내 주세법상 위스키는 곡물을 원료로 당화·발효한 뒤 증류하고, 오크통 등에 저장·숙성한 증류식 주류로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바로 당화이기 때문이다. 당화는 전분을 효모가 먹을 수 있는 당으로 바꾸는 과정을 말한다. 이때 당화를 위해서는 몰트처럼 곡물의 싹을 틔우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일반 증류식 소주는 발아시키지 않은 곡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위스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글린트증류소는 쌀을 발아시킨 뒤 일부 몰트와 섞어 발효주를 만들고, 이를 증류한 뒤 오크통에 숙성하는 방식으로 위스키 제조 허가를 받았다. 이렇게 생산된 라이스위스키는 다른 위스키와 비교해 어떤 장점이 있는 것일까. 라이스위스키의 주원료인 쌀이 갖는 특성에 의해 라이스위스키만의 독특한 풍미가 완성된다고 한다. 이준연 글린트증류소 대표는 "쌀을 이용해 만든 증류원액은 워낙 맑고 깨끗한 맛이 특징이기 때문에 마치 하얀 캔버스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듯이 오크통이 갖고 있는 고유한 풍미가 있는 그대로 원액에 흡수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라이스위스키가 세계 어느 나라 위스키 못지않은 맛과 풍미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매경 애그테크혁신센터와 한국벤처농업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한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에서 발표자와 토론자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허동웅 농림축산식품부 과장, 고희종 서울대 명예교수, 장지윤 농협중앙회 식품지원부장,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조원동 한국ST거래 대표, 민승규 박사, 이준연 글린트증류소 대표, 조유현 시드피아 대표, 고화순 대한민국 나물명인, 권예섬 한국벤처농업포럼 대표. 이승환기자

한국에서 개발된 이러한 라이스위스키가 세계 술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요인은 이 밖에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뚜렷한 사계절을 활용한 숙성의 미학이다. 우리나라는 여름철 폭염이 대단하다. 극한의 고온다습한 날씨는 원액이 오크통 판재 깊숙이 흡수되도록 만들어 그 풍미를 고스란히 흡수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 이어 가을이 되면 오크통이 수축되면서 풍미를 머금은 원액을 배출하고, 겨울철 추위 속에서 원액이 안정화되면서 휴식을 취한 뒤 봄이 되면 서서히 깨어나고, 다시 여름철 극한의 날씨 속에서 빠른 숙성이 이뤄지게 된다. 이 대표는 "이처럼 극단적인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면서 오크통을 마치 스펀지처럼 쥐어짜며 원액에 유례없는 생명력과 복합미를 불어넣는 완벽한 숙성 공학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는 고품질의 쌀 품종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어 위스키 원료 공급망 측면에서 매우 우수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K푸드와의 페어링을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미국 뉴욕에서 미쉐린 가이드 별점을 획득하는 한식당이 빠르게 늘고 있는 등 전 세계적으로 한식이 뜨고 있는 만큼 라이스위스키에도 큰 기대를 걸 수 있다.

위스키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주인공이 새롭게 탄생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위스키의 시초는 사실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아일랜드다. 발아한 보리와 생보리를 혼합한 뒤 3회 증류를 통해 부드러움을 추구한 아일랜드 위스키가 처음 등장했지만 위스키가 찬란하게 꽃피운 곳은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였다. 몰트를 원료로 피트 훈연향을 입히는 방식, 최소 3년 이상의 숙성을 통해 세계 최고의 풍미를 자랑하는 스카치위스키는 지금껏 위스키계의 중심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스카치위스키가 모든 위스키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후반 미국 켄터키주를 중심으로 옥수수가 과잉 생산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해 만든 버번위스키가 등장해 지금까지 위스키계의 중요한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뜬 위스키는 바로 20세기 초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본 위스키다. 정교한 블렌딩과 높은 소장 가치로 전 세계 위스키 애호가들을 사로잡은 일본 위스키는 지금도 프리미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대만 위스키 '카발란'은 아열대 기후에서는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를 깨끗이 뒤엎고 오히려 더운 날씨를 활용한 고속 숙성법으로 단기간에 풍미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전 세계 위스키계를 놀라게 했다. 불과 20년 전에 등장했음에도 곧바로 세계 위스키 품평회 대상을 휩쓸 정도로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의 라이스위스키에도 충분히 기대를 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우리나라의 쌀 산업 발전 측면에서도 라이스위스키에 거는 기대가 크다.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을 지낸 민승규 박사는 최근 매일경제 애그테크혁신센터와 한국벤처농업대학이 공동 주최한 'K라이스위스키 심포지엄'에서 "이제 쌀 산업의 핵심은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라 생산된 쌀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로 바뀌었다"며 "정책의 중심이 공급이 아니라 수요 설계로 이동한 만큼 지금 쌀 산업에 필요한 것은 생산 억제보다 새로운 쓰임의 창출"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사케용 쌀로 연간 20만~25만t을 소비하고, 미국 버번위스키가 옥수수 과잉 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쌀을 이용해 위스키와 같은 고급 술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민 박사는 이를 위한 전략으로 5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미국 버번위스키가 위스키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라이스위스키라는 독자적인 네이밍을 확립하고, 대만이 일군 카발란처럼 해외에서 성공한 위스키 사례를 잘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원가 절감보다는 품질을 우선해 몰트 위스키를 능가하는 풍미를 구현하고, 고객 수요에 맞춘 실험적이고 다양한 제품군을 개발해 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셋째, 글렌피딕이 블렌디드 관행을 깨고 세계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품화했던 것처럼 라이스위스키만의 창의적인 마케팅 혁신이 필요하다. 넷째, 쌀로 만든 술은 저렴하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가치 중심의 가격 결정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최고급 스카치 위스키인 맥켈란이 전용 보리 품종을 사용하는 것처럼 라이스위스키 전용 쌀 품종을 개발해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준연 대표는 "일본 하면 바로 사케, 중국 하면 백주, 영국 하면 스카치위스키가 떠오르지만 한국은 K푸드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에도 생각나는 술이 없다"며 "라이스위스키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키운다면 K푸드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공급 과잉에 신음하고 있는 쌀 소비를 늘리는 데도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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