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꾼 꿈에 1500명이 몰렸다”···유튜브 토크쇼가 공연장이 된 밤

전지현 기자 2026. 5. 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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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열린 <B주류초대석 비밀파티>. 관객들과 함께 ‘최고의 장면 월드컵’을 진행하고 있다. 토스 제공

“여러분을 잘못 꾼 꿈으로 초대합니다.”

토스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구독자 73만6000명)가 지난해 11월 새 코너 ‘B주류초대석’을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다양한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영화·만화·패션 등 취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 팟캐스트가 소소한 관심을 넘어 큰 인기를 끈다는 건, 비슷한 팟캐스트가 많은 상황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기묘한 조합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힙합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드러머 김간지, 김민경 민음사 편집자. 세 사람이 함께 출연했다 하면 조회 수가 100만회는 가뿐했다. 이들이 처음 출연한 5개월 전의 영상은 10일 현재 조회 수 208만회를 기록했다. 세 사람의 이름자를 모은 ‘허간민’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시즌제로 기획돼 4월 말 종영을 일찌감치 정해둔 제작진으로서는 높아지는 인기가 기쁘고도 부담됐을 테다.

토스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 코너 <B주류초대석>에 출연한 (왼쪽부터)드러머 김간지, 음악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 김민경 민음사 편집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9CM 갈무리

다음 영상을 바라는 구독자들에게 머니그라피 측은 계획대로 종영하는 대신, 인기 출연자 ‘허간민’과 함께하는 공연을 약속했다.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그 공연, ‘B주류초대석 비밀파티’가 열렸다. 1500여 석이 티켓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하지만 ‘비밀파티’라는 이름답게 정확히 ‘무슨’ 공연인지를 사전에 알기란 어려웠다. ‘허간민’ 트리오가 출연하고 그들이 데려온 ‘비밀 친구’가 축하공연을 한다는 내용만이 공지됐다. 이 비밀스러운 공연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현장을 찾았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 앞에서 <B주류초대석 비밀파티> 관객들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전지현 기자
비밀 파티, 입장합니다

오후 5시.

입장이 시작됐다. 20~30대로 보이는 관객들이 스탠딩석 입장을 위해 줄을 섰다. 서울 양천구에서 온 홍연아씨(32) 등 관객들은 “세 사람의 ‘티키타카’가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B주류초대석을 알게 된 경로는 저마다 달랐다. 배은경씨(35)는 출판사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를 통해 김민경 편집자를 먼저 알았다고 했다. “김민경 편집자가 머니그라피에도 나오셨길래 봤어요.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얘기하는 것, 싸울 수도 있는 주제를 심각하지 않게 웃으며 얘기하는 대화의 ‘핑퐁’이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9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 로비에 마련된 방명록에 <B주류초대석 비밀파티> 관객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써붙여뒀다. 전지현 기자

래퍼 빈지노 등이 만든 ‘아이앱(IAB) 스튜디오’ 티셔츠를 입은 홍현택씨(31)는 힙합 음악 프로듀서인 허키 시바세키를 보려고 영상을 틀었다가 다른 두 사람에게까지 매료됐다고 했다. “허키로 입문해서 김민경 편집자님 마력에 빠져 민음사 TV 영상을 한참 보다가 김간지님까지 좋아하게 됐어요.” 그는 “예술인 둘과 사대보험 받는 직장인 하나, 불협화음이 날 것 같은 셋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고 대혐오의 시대에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오후 6시 본공연 전 공연장에서는 DJ 하세가와 요헤이가 오프닝 공연을 했다. 관객들은 허간민 세 사람의 얼굴이 인쇄된 포스트잇에 손수 방명록을 남겼다. ‘시민들’(구독자명)은 “시즌2 해주실 거죠?”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지날 수 있었습니다” 등 마음을 전했다. 유튜브 썸네일을 활용한 포토존도 인기였다.

9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 로비에 마련된 <B주류초대석> 썸네일을 활용한 포토존. 전지현 기자
토크쇼였다가 힙합 페스티벌이었다가 록 페스티벌….
9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열린 <B주류초대석 비밀파티> 무대에서 (왼쪽부터) 드러머 김간지, 음악 프로듀서 허키 시바세키, 김민경 민음사 편집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토스 제공

오후 6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OST와 함께 미 서부시대 카우보이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허간민’이 무대에 등장했다. “생각보다 시민들 얼굴이 잘 보이네요?”(김민경), “잘못 꾼 꿈에 너무 많이 왔어”(김간지). 구독자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임에도 세 사람에게서는 긴장한 기색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공연은 토크쇼와 음악 공연 사이를 오갔다. 토크쇼 파트에서는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시작해 서로의 취향 토크로 넘어가는 B주류초대석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되, 관객 참여를 독려했다. 유튜브 댓글을 매개로 한 팬들이라는 특성을 살려 QR코드로 접속 가능한 익명 오픈채팅방 참여를 유도한 것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인터넷에서 바이럴된 여러 클립 영상 중 1위를 고르는 ‘최고의 장면 월드컵’을 진행할 때 무대 스크린에는 오픈채팅방 화면이 같이 띄워졌다.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온라인 채팅방에 의견을 올리고, ‘허간민’은 화면을 보며 관객들과 소통했다. 팬덤 안에서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된 장면들에 대해 세 사람이 직접 후일담을 털어놓을 때, 관객들은 한 마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모인 이들이 서로 다른 취향을 가졌다는 건 축하 공연 때 느낄 수 있었다. 지난달 종영한 <쇼미더머니 12>(쇼미 12) 심사위원이었던 허키 시바세키는 ‘비밀 친구’로 방송 중 자신의 팀이었던 래퍼 나우아임영을 데려왔다. <쇼미 12> 준우승자인 그가 “쇼미 이후 처음으로 부른다”며 ‘애니멀’(Animal) ‘키스 키스 키스’(Kiss Kiss Kiss) 등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힙합 페스티벌이었다면 바로 열광적인 호응이 나왔을 선곡이지만, 노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뒤섞여 있는 이날 공연장이 충분히 예열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9일 서울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열린 <B주류초대석 비밀파티>에서 공연하고 있다. 토스 제공

오후 8시30분.

김간지가 소속된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이날 7년 만의 무대를 선보였다. 멤버 ‘나잠 수’는 “저희가 김간지를 좋아하고, B주류초대석의 팬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뭉쳤다)”고 말했다. ‘의심스러워’를 시작으로 ‘사라지는 꿈’, ‘탱탱볼’ 등 6곡을 열창했다. 김민경 편집자가 ‘샤이닝로드’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공연의 막바지, ‘허간민’ 세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김간지는 “이렇게까지 커지고, 같이 무대를 할 줄은 아무도 상상을 못 했다”며 “세상일은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허키 시바세키도 “첫 촬영 때는 정말 어떻게 될지를 몰랐었다”고 회상했다. 김민경 편집자가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릴 적) 합창 대회 이후로 무대에 처음 올라와 본다. 제게는 이 모든 게 큰 모험이었다”는 “즐거운 꿈을 꾼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안녕을 고했다.

오후 9시.

마지막 게스트 크라잉넛이 ‘말 달리자’ 등 1시간가량 열창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장장 5시간의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오후 10시.

공연은 끝났지만, 시민들은 오픈채팅방에 남아 소감과 사진, 이날 플레이리스트 등을 서로 공유했다. 김민경 편집자가 이 방에 직접 ‘셀카’를 남기기도 했다. 유튜브를 계기로 오프라인 공연으로, 또 다시 익명 채팅방으로 옮겨간 대화는 밤새 멈출 줄을 몰랐다.

‘허간민’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머니그라피 백순도 PD는 서면 인터뷰에서 “시즌2나 향후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재미있는 기획과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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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khan.co.kr/article/20260408060011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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