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고농축 핵물질 반출 놓고 미·이란·러시아 3파전

이규화 2026. 5. 1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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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전승절 기념행사서 이란 핵물질 러시아 이전 제안

'60% 농축 우라늄 약 400~450㎏' 종전협상 주요 이슈

러, 2015년 JCPOA 합의 때는 핵물질 반출받고 보관 중

美·이란, 반출 놓고 강경 대립…러 반출, 타협점 될 수도

이란 고농축 핵물질을 러시아로 반출하는 카드를 제안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러시아가 보관할 수 있다고 공개 제안하면서 미국·이란 핵협상이 러시아까지 개입한 3파전 양상으로 갈지 주목된다.

핵심 쟁점은 하나다. 이란이 보유한 60% 농축 우라늄 약 400~450㎏을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다. 미국은 "완전 반출"을 요구하고 있고, 이란은 "핵주권 포기 불가"를 내세우며 버티고 있다. 러시아는 자신들이 중재 보관국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실제 미국 오바마 행정부 당시 이란과 서방 간 합의한 핵합의(JCPOA) 당시 이란의 고농축 핵물질이 러시아로 반출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전승절 행사 이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이미 2015년 이란 핵합의 당시 우라늄을 받아 보관한 경험이 있으며, 같은 역할을 반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이 한때 우라늄 반출에 공감했지만 이후 미국이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으로 반출하라"고 입장을 바꾸자 이란도 강경 노선으로 선회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매체들에 따르면 러시아의 중재안은 최근 수개월 동안 비공개 협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로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러시아로 이전하자"고 제안했지만 트럼프가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우라늄이 완전히 확보되는 것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한 이유는 이란의 핵물질 규모 때문이다. 악시오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현재 이란이 보유한 60% 고농축 우라늄은 무기급인 90%까지 농축하는 데 수주밖에 걸리지 않으며, 이론상 핵탄두 10기 이상 제조가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따라서 단순한 농축 중단이 아니라 핵 잠재력 자체를 제거하려 하고 있다. 최근 협상에서 미국이 "20년 농축 중단"과 "전량 해외 반출"을 동시에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이란은 핵개발 능력 자체를 국가 생존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 대한 극단적 불신이 강하다. 이란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JCPOA에서는 러시아 반출을 받아들인 전례가 있다. 당시 뉴욕타임스와 CNBC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저농축 우라늄 대부분을 러시아로 이송했고, 그 대가로 대규모 경제제재 해제를 얻어냈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이란 지도부 내부에는 "미국과의 약속은 언제든 뒤집힌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게 됐다.

그 후 이란의 입장은 시계열적으로 더 강경해졌다. 초기에는 "저농축 우라늄 일부 해외 이전 가능" 정도의 유연성을 보였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이후에는 해외 반출 자체를 국가 주권 침해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협상에서는 "미국 반출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 매우 분명해졌다. 악시오스는 이란 협상팀이 미국의 전량 반출 요구에 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아래 자국 시설에서 희석(down-blending) 처리하겠다"고 역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란의 입장이 강경하자 러시아 카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 입장에서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신뢰 가능한 전략적 파트너이며, 동시에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할 기술력도 갖춘 사실상 유일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은 최근 "2015년에도 이란 요청으로 우라늄을 반출했으며 이번에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이 실제로 러시아 반출에 최종 동의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 역시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서방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국제 금융망과 물류 체계 접근성이 크게 떨어졌고, 이란 내부 강경파는 "러시아에 맡긴 우라늄이 사실상 영구 압류될 수 있다"는 의심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핵물질이 해외로 나가는 순간 향후 협상에서 이란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사라진다는 전략적 계산도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러시아를 탐탁지 않게 보는 분위기가 강하다. 미국은 현재 단순 보관이 아니라 "핵 능력의 원천적 제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필요할 경우 특수부대를 투입해 이란 핵물질을 직접 확보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던 전력도 있다. 이는 미국이 러시아의 '관리형 해법'보다 직접 통제를 더 선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협상의 본질은 "누가 이란의 핵 잠재력을 통제할 것인가"를 둘러싼 지정학적 힘겨루기 성격도 갖고 있다. 미국은 핵능력 제거를 원하고, 이란은 체제 안전보장을 원하며, 러시아는 중재국 역할을 통해 중동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30일 임시 휴전 및 양해각서(MOU) 체결 후 핵·해협·제재 등을 구체적으로 협상하자는 데 합의하더라도, 고농축 우라늄 처리 문제는 마지막까지 남는 최대 난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란이 미국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작지만, 제한적 조건 아래 러시아로의 이전 카드를 이란이 동의할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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