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기업 철학의 정수…‘경천애인’ 철학자 이나모리 가즈오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 2026. 5. 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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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남부의 후시미구.

교토에서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인 20층 높이의 교세라 본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교세라의 창업부터 현재까지를 보여주는 '파인 세라믹스관'이었다.

창업자 이나모리 가족 중에는 현재 교세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하시우라 관장은 "이나모리는 창업 초기부터 가족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매우 강했다"며 "교세라는 개인의 회사가 아니라 창업 구성원 모두의 회사라는 생각을 끝까지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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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라이브러리 르포]
경영철학으로 기업에 반석 놓아
14개 언어로 번역해 글로벌 공유
사후에도 시스템이 되어 기능해
AI 시대에 일하는 방식 달라져도
이나모리 철학의 본질은 안 변해
일본 교토 교세라 본사 인근에 있는 이나모리 라이브러리 1층에 세워진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실물 크기 입상. [교토 이승훈 특파원]
일본 교토 남부의 후시미구. 교토에서 보기 드문 고층 건물인 20층 높이의 교세라 본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교세라의 창업부터 현재까지를 보여주는 ‘파인 세라믹스관’이었다.

1998년 설립된 이곳은 교세라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파인 세라믹스’라는 말 자체도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가 1973년 직접 만든 용어다. 단순한 산업용 세라믹이 아니라, 불순물을 제거한 고순도 소재에 첨단 배합 기술을 결합한 미래형 소재라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장에서는 각종 세라믹 부품을 볼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 다음 수준의 경도, 섭씨 1200도 이상의 내열성, 산과 체액에도 부식되지 않는 내식성 등 세라믹의 핵심적인 성질도 한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저서. [교토 이승훈 특파원]
하시우라 카요 이나모리 라이브러리 관장은 “교세라의 파인 세라믹은 IT 기기 패키지와 인공관절, 태양전지, 심해 탐사 장비, 핵융합로 부품에까지 쓰이고 있다”며 “일본 우주탐사선 하야부사와 스바루 망원경 지지구조물에도 적용됐다”고 소개했다.

파인 세라믹에도 흑역사는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 직원 아이디어로 세라믹 바둑돌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 단단해, 바둑을 둘 때마다 바둑판을 훼손하는 바람에 상품화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교세라를 세계적 부품 회사로 끌어올린 계기가 된 미국 IBM에 공급한 대형 컴퓨터 집적회로(IC)용 세라믹 기판. [교토 이승훈 특파원]
교세라는 1959년 직원 28명, 자본금 300만엔(약 2800만원)으로 출발했다. 창업 제품은 TV 브라운관용 세라믹 절연 부품이었다. 당시 네덜란드 필립스가 독점하던 부품을 국산화하며 시장에 진입했다.

이나모리 창업자는 이전 직장인 쇼후공업에서 세라믹 기술을 연구했고, 창업 전 마쓰시타전기공업(현 파나소닉)으로부터 납품 약속을 받아내며 첫해부터 흑자를 낼 수 있었다.

교세라를 세계 시장으로 끌어올린 것은 1966년 미국 IBM으로부터 대형 컴퓨터 집적회로(IC)용 세라믹 기판 2500만개를 수주한 것이었다. 일본 내 하청업체 수준이던 회사가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철학을 설명중인 하시우라 카요 이나모리 라이브러리 관장. [교토 이승훈 특파원]
교세라 본사 옆에는 2013년 개관한 이나모리 라이브러리도 있다. 연간 방문객이 2~3만명에 달하는데, 중국인 방문객이 특히 많고 한국 수학여행단도 자주 찾는 곳이다.

5개 층으로 구성됐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5층 집무실 재현 공간이다. 본사 19층에 있던 창업자 이나모리의 집무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책상과 서류함, 메모지 위치까지 똑같다.

창업자 이나모리는 2022년 사망했다. 그의 사후에도 그가 남긴 경영철학은 꾸준히 계승되고 있다. 직원들은 매일 회의와 조회 시간에 이나모리 철학이 정리된 ‘교세라 필로소피 수첩’을 읽는다.

이나모리 라이브러리 5층에 있는 이나모리 집무실 재현 공간. 창업 당시의 사진과 창업 초기 멤버 28명과 함께 찍은 사진, 그의 경영철학의 바탕이 되는 ‘경천애인’ 글자, 회의탁자에서 일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교토 이승훈 특파원]
하시우라 관장은 “한 문장을 읽고 그것을 자신의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토론하는 것이 일상”이라며 “현재 한국어를 포함해 14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사업장에서 사용 중”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창업자의 생각을 어떻게 다음 세대에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한국 경영자들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 답은 문서화하고, 반복하고, 일상에 녹이는 것이다.

한국어를 포함해 14개 언어로 번역된 교세라 필로소피 수첩 [교토 이승훈 특파원]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이나모리 경영철학은 통할 것인가. 하시우라 관장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윤리를 중시하며 적극적으로 도전한다는 근본은 시대가 바뀌어도 똑같다”며 “다만 일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는데, 그 변화를 이해하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는 리더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이나모리 라이브러리의 집무실 재현 공간에 배치된 매일경제신문사서 출판된 서적인 ‘이나모리 가즈오의 마지막 수업’. 원재는 ‘경영의 원점 12개조’이다. [교토 이승훈 특파원]
창업자 이나모리 가족 중에는 현재 교세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하시우라 관장은 “이나모리는 창업 초기부터 가족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매우 강했다”며 “교세라는 개인의 회사가 아니라 창업 구성원 모두의 회사라는 생각을 끝까지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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