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고]커피 시장 뜨겁게 달군 '카제인나트륨' 논란
'맥심 천하'에 균열 낸 프렌치카페의 역습
노이즈 마케팅 논란…광고 전쟁의 결말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한 여성이 새하얀 이불 속에서 손을 뻗어 커피잔을 집는다. "화학적 합성품 카제인나트륨이 든 커피?"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화면에는 '프림 속 화학적합성품 카제인나트륨?'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어 "모를 땐 그냥 먹었지만 프림을 알고 바꿨다. 프림까지 좋아야 좋은 커피"라는 멘트와 함께 '화학적합성품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라는 문구가 화면을 채운다. 마지막으로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제품이 비춰지며 광고는 끝난다.
2011년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카제인나트륨'이라는 생소한 단어 하나가 등장하면서 술렁이게 됩니다. 당시 남양유업이 내놓은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광고 때문인데요.
남양유업이 핵심 키워드로 잡은건 '카제인나트륨'이었습니다. 광고에는 강동원과 김태희 등 당대 톱스타들이 등장해 "그녀의 몸에 카제인나트륨이 좋을까? 무지방 우유가 좋을까?"라고 묻습니다. 또 다른 광고에서는 "카제인나트륨은 이제 안 되니까"라는 문구까지 등장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사실상 "카제인나트륨은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이라는 인상을 남기게 된 셈이죠.
'맥심 천하' 흔든 후발주자
당시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동서식품 '맥심'의 독무대였는데요. 맥심의 시장 점유율은 약 80% 수준이었습니다. 한국네슬레 '테이스터스초이스'가 뒤를 잇고 있었지만 존재감은 크지 않았죠.
이 틈을 파고든 게 남양유업이었습니다. 남양유업 입장에서는 '맥심'이 장악한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 차별화 전략이 절실했습니다. 약 2년에 걸친 시장조사 끝에 커피믹스 소비자들 사이에 "'프림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점에 주목했죠.
이에 남양유업은 2010년 12월 프렌치카페 카페믹스를 출시했습니다. 우유업계 강자라는 점을 앞세워 기존 프림 원료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당시 확산하던 웰빙 열풍과 합성첨가물 기피 심리를 정조준한 전략이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프렌치카페는 출시 1년 만에 테이스터스초이스를 제치고 업계 2위로 올라섰습니다. 남양유업은 대형마트 판매 기준 점유율이 13~18%, 일부 채널에서는 20% 수준까지 올랐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점유율을 둘러싼 신경전도 벌어졌습니다. 2011년 12월 동서식품은 AC닐슨 자료를 인용해 "올해 커피믹스 시장 점유율이 81.8%"라며 "신규 업체의 카제인나트륨 유해 논란 등 노이즈 마케팅에도 점유율 변동은 미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남양유업은 즉각 반박 자료를 냈습니다. 남양 측은 "동서식품이 현재 시점이 아닌 연평균 수치를 사용해 점유율 하락을 숨기고 있다"면서 "최근 대형마트 기준 점유율은 이미 70%대로 떨어졌다"고 맞섰습니다.
"유해하단 말은 안 했다"
폭발적인 광고 효과만큼이나 '카제인나트륨'을 둘러싼 유해성 논란도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사실 카제인나트륨은 우유 단백질인 카제인을 가공해 만든 식품첨가물로, 식품의 점도를 높이고 풍미를 안정화하는 데 널리 쓰이는 물질입니다. 미국 FDA는 물론 유럽, 호주 등 전 세계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우유 유래 성분이죠.
하지만 남양유업은 대중에게 이 명칭이 생소하다는 점을 전략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안전성 여부와는 별개로 낯선 화학적 용어가 주는 심리적 위압감과 거부감을 마케팅의 동력으로 삼은 셈입니다.
이에 동서식품은 즉각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동서식품은 "안전한 원료를 마치 유해 물질처럼 묘사해 소비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 항의의 핵심이었습니다. 특히 "카제인나트륨은 이제 안 되니까"라는 광고 문구는 정당한 차별화 전략을 넘어선 '공포 마케팅'이라며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이 몸에 해롭다고 명시한 적은 없다"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저 자연 원료를 선호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발맞춰 '우유를 넣은 제품'이라는 강점을 강조했을 뿐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역풍도 불었습니다. 남양유업이 과거 자사의 일부 유제품과 발효유에도 카제인나트륨을 활발히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경쟁사들은 "본인들도 사용하던 성분을 후발 주자로 나선 커피믹스 시장에서만 갑자기 문제 삼는 것은 모순"이라며 비판했습니다.
이런 설전은 곧 커피믹스 시장 전체에 '광고 전쟁'으로 번졌습니다. 프렌치카페의 점유율이 급격히 상승하자 위기감을 느낀 동서식품은 '피겨 퀸' 김연아를 내세운 '맥심 화이트골드'를 출시하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광고를 통해 "우유를 넣어도 향이 깊은 커피"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남양유업은 즉각 "프렌치카페를 노골적으로 베낀 미투(Me-too) 제품"이라며 공격 수위를 높였고, 동서식품은 "우유를 넣은 커피믹스는 원래 존재했던 카테고리"라고 맞받아치며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양측은 이후에도 카제인나트륨의 실제 함량과 표기 방식 등을 문제 삼으며 치열한 공개 설전을 이어갔습니다.
비방 광고
카제인나트륨 논란은 결국 정부 기관의 엄중한 판단으로 일단락됐습니다.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적법하게 허가된 식품첨가물을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묘사해 타사 제품을 오인하게 하는 행위는 비방 광고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듬해 한국식품안전연구원 역시 "카제인나트륨은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물질"이라며 "식품의 안전성을 마케팅의 도구로 악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습니다.
비록 행정적 제재와 비판이 뒤따랐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후발 주자가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 치밀하게 설계한 '전략적 노이즈 마케팅'의 전형으로 평가합니다. 논란 그 자체를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지렛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남양유업은 후발 주자라는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성분 전쟁'을 통해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습니다. 2013년 AC닐슨 기준 점유율은 12.5%까지 솟구치며 시장의 판도를 재편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적 마케팅의 효과는 영원할 수 없었습니다. '불안'을 동력 삼은 상승세는 점차 동력을 잃었고, 이후 점유율은 하락세로 돌아선 뒤 5%대까지 주저앉으며 부침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렌치카페의 광고는 국내 식품 마케팅 역사상 가장 강렬했던 '네거티브 전략'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제품 간의 품질 경쟁을 넘어, 소비자의 잠재적 불안 심리를 원료라는 프레임으로 정교하게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견고했던 1위 업체 중심의 시장 질서를 뒤흔든 것은 물론, 기업의 마케팅이 소비자의 인식과 시장의 기준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김다이 (neverdi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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