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후폭풍 ‘에너지’…넛지 정책 도입할 때 [이보형의 퍼블릭 어페어즈]

서경IN 2026. 5. 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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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형 마콜컨설팅그룹 사장
AI 시대 에너지난에 대비한 넛지 정책을 설명한 AI 이미지.

AI 열풍이 거세질수록 전력 확보의 공포는 깊어진다. 데이터센터는 AI 시대의 공장이자, 전기를 삼키는 하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17% 늘었고, 고집적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폭증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센터를 동시에 가져가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능력은 곧 국가 경쟁력이고, AI 산업을 키우려면 대규모 데이터센터도 필요하다. 중동발 전쟁은 이 위기를 가속한다. 세계은행은 2026년 에너지 가격이 중동 충격으로 24% 상승해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선택지다. 원전도 필요하고, 재생에너지도 필요하다. 송전망과 저장장치도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발전소는 하루아침에 지을 수 없다. 송전망은 더 어렵다. 지역 갈등, 주민 수용성, 환경 규제, 인허가 문제가 얽힌다. 그래서 에너지 정책에는 또 하나의 축이 필요하다. 바로 수요관리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해 통합적으로 관리된다. 문제는 수요관리 정책들은 국민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정작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확보가 국가경쟁력인 이 시점에 생산량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수요관리에 대한 정책도 하나의 큰 정책과제로 자리잡아야 한다. 전기를 더 만드는 것만큼, 이미 쓰는 전기를 덜 낭비하게 만드는 일이 공급을 늘리는 만큼 중요하다. AI 시대의 에너지 정책은 공급 확대와 가격 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요를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

전력위기가 오면 정부는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벌인다. 불을 끄자. 코드를 뽑자. 냉방 온도를 높이자.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가격정책도 마찬가지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소비는 줄 수 있다. 하지만 물가와 산업 원가를 함께 끌어 올린다.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에는 더 가혹하다.

에너지 수요관리를 캠페인에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가정, 소상공인, 공장,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쓰는 방식이 다르다. 같은 절약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 가정에는 이웃 비교와 요금 예측이 효과적일 수 있다. 소상공인에게는 피크 시간대 요금 부담을 줄이는 안내가 중요하다. 공장에는 설비별 전력 사용과 생산성 데이터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데이터센터에는 전력효율 공개와 수요반응 참여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행동경제학이 필요하다. 사람은 합리적 계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장기적 국가 이익보다 당장의 손실에 민감하고, 절대적 수치보다 남과의 비교에 더 빨리 반응한다. ‘전기를 아껴야 합니다’보다 ‘당신은 비슷한 이웃보다 전기를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라는 손실회피 메시지가 더 강력하다. 절약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 설계의 문제인 것이다.

미국 오파워(Opower) 사례는 이를 보여준다. 오파워는 각 가정에 에너지 사용량을 전기 요금 고지서와 함께 제공한다. 60만 전력 소비 가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전력 소비량을 다른 소비자들과 비교를 통해 평균 2% 줄였다. 회사가 반복하여 각 소비자가 자신들의 전력사용량을 알게 함으로써, 이들의 전력 사용 습관이 만들어졌고 결과적으로 절감된 에너지 소비량이 유지되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방식, 즉 에너지 소비 행동에 넛지(‘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으로, 강요나 인센티브 대신 타인의 선택을 부드럽게 유도하는 개입을 의미한다)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위치(전력 소비량)’를 알려주고, ‘다음 행동(전력 사용 절약)’을 제시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도 기반은 충분하다. 이미 1,200만 가구 이상에 지능형전력량계를 보급하였고, 한전은 파워플래너를 통해 실시간 사용량, 예상 요금, 과다 사용 알림, 이웃 사용량 비교 등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인프라의 부족이 아니라 활용의 부족이다. 파워플래너 가입률은 실제 지능형전력량계 사용자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플랫폼은 깔렸지만, 행동 변화와 절감 성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약하다. 소비자가 에너지 절감률과 비용 절감액, 피크전력 감축량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더 나아가 파워플래너를 단순한 전력 조회 서비스가 아니라, 가정과 산업현장의 에너지 수요 행동을 설계하는 정책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인프라가 실질적 에너지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이 문제를 비시장전략으로 봐야 한다. 전기요금, 공급망, 생산능력, 데이터센터 입지, 소비자 부담, 탄소정책이 얽힌 전략 이슈다. 기업이 먼저 에너지 절감 모델을 만들면 비용을 줄일 뿐 아니라 정책의 방향의 변화도 이끌 수 있다. 스마트빌딩 수요관리, 공장 피크전력 절감, 데이터센터 전력효율 공개, 협력사 에너지 절감 지원은 기업이 제안할 수 있는 훌륭한 정책 의제다.

AI가 전력 위기를 초래했다면, 해법 또한 AI에서 찾을 수 있다. AI를 소비 패턴을 읽고 낭비의 지점을 도려내는 ‘절감의 두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실시간 전력 수요를 개별적으로 타깃팅해 관리하는 데 AI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가정에는 최적의 절약 습관을 제안하고, 공장에는 낭비 전력을 찾아주며, 데이터센터에는 부하 조정 알고리즘을 입혀야 한다.

공급 확대는 물통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나 물통만 키운다고 위기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디서 물이 새는 지부터 살펴야 한다. 오늘의 구멍은 정보의 부재와 보상의 미비다. 정부는 전기를 더 만드는 노력만큼, 전기를 덜 쓰게 만드는 AI 활용과 행동경제학적 정책을 구상할 때이다.

이보형의 퍼블릭 어페어즈

서경IN sk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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