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욱 칼럼] ‘절대왕정’ 꿈꾸는 민주당의 오만

18세기 초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남긴 절대왕정의 그늘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왕은 곧 국가였고, 법은 왕의 의지였다. 귀족의 특권은 하늘을 찌르고, 민중의 삶은 짓이겨졌다. 재판은 왕이 임명한 법관들의 손에 쥐어졌고, 그 법관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판결을 내렸다. 이 시대를 살아낸 법복 귀족 출신 샤를 루이 드 스콩다, 즉 몽테스키외는 1716년 보르도 고등법원장에 취임하면서 권력이 재판을 지배할 때 정의가 어떻게 소멸하는지 눈앞에서 목격했다. 재판은 법보다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흔들렸고, 시민의 자유는 침해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20년 넘게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영국의 입헌주의를 탐구했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의회가 왕권을 제어하게 된 영국의 경험은 그에게 거대한 지적 충격을 안겼다. 그 사유의 결실이 1748년 ‘법의 정신’이다. 몽테스키외는 이 책에서 입법·행정·사법의 세 권력이 각기 다른 주체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재판권이 입법권이나 행정권과 결합되면, 혹은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 시민의 생명과 자유는 전제적 지배에 놓이게 된다는 경고였다. 몽테스키외의 경고는 절대왕정의 현실에서 피어난 처절한 통찰이었다.
‘법의 정신’은 이후 1787년 미국 헌법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 매디슨과 해밀턴이 기초한 미국 헌법의 3권분립 조항에 몽테스키외의 논리가 그대로 녹아들었다. 제퍼슨은 ‘법의 정신’ 주석서를 직접 썼다. 근대 민주주의는 몽테스키외의 3권분립론 위에 서있다.
그로부터 278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집권 세력은 그 주춧돌을 뽑아내려고 하고 있다. 일명 ‘조작기소 특검법’이라 불리는 ‘공소취소 특검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특검에게 재판 진행 중인 사건을 검찰로부터 넘겨받아 공소 유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공소 취소라는 말을 교묘히 피했지만 그 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 특검을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소 취소권을 쥔 특검이 수사할 12건 가운데 8건이 이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이다. 피의자가 자신의 사건을 처리할 재판관을 직접 고르는 것이다. 몽테스키외가 목격했던 18세기 프랑스 법정의 망령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의 발언은 이 법안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자백하고 있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시민 10명 중 8~9명은 공소 취소 뜻을 잘 모른다고 했다. 김어준씨 유튜브에서는 “자세히 아는 국민은 없다”, “법률적으로 가면 피곤한 문제”라고 했다. 말 실수가 아니다. 이것은 설계의 언어다. 국민이 모르니 해도 된다는 논리, 지방선거 후에 처리하면 별 탈 없다는 계산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보는 반민주적 오만함을 날것 그대로 드러냈다. 이것은 개인의 실언이 아니라 민주당 지도부가 공유하는 본심이다.
정의당도, 경실련도 이 법을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좌파 진영 내부에서조차 경고음이 울리는데 민주당은 귀를 닫았다. 이 대통령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법안 추진을 시사했다. 선거가 끝난 뒤를 노리는 전술적 후퇴다. 법의 정의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타이밍을 재고 있다. 법치가 정치 일정표에 종속되는 나라, 그 나라의 이름에 ‘민주공화국’을 붙일 수는 없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그토록 경계한 것은 단순히 왕의 전횡이 아니다. 왕정이든, 귀족정이든, 민주정이든, 그 어떤 권력도 법의 외피를 두르고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이다. 그는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남용하려 한다고 봤다. 한계에 부딪힐 때까지 나아간다고 썼다. 지금 민주당은 몽테스키외의 통찰을 정확하게 증명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허무는 것, 가장 위험한 이 전제는 언제나 민주주의의 언어로 포장돼 왔다.
10명 중 8~9명이 공소 취소의 뜻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가 자신의 재판관을 임명한다는 것이 왜 불의인지는 안다. 그것이 왜 위험한지도 안다. 몽테스키외가 절대왕정에 맞서 썼던 그 문장들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서 다시 유효하다.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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