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람 그리고 건축…이타미 준의 ‘방주교회’와 ‘포도호텔’

관리자 2026. 5. 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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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건축] (13) 제주 ‘이타미 준 건축’
물 위에 떠있는 듯 기다란 ‘방주교회’
뾰족한 뱃머리 ‘노아의 방주’서 영감
징크 지붕, 제주 하늘 시시각각 담아
오름과 초가지붕 형상화 ‘포도호텔’
벽·바닥 전통미에 일본식 창 가미
유리관 속 식물 자라는 중정도 눈길
배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형상의 방주교회. 세계적 건축가인 이타미 준이 2011년 타계하기 전에 지은 유작이다. 제주=현진 프리랜서 기자

“그곳에 잠시 멈춰 서 있으면, 마치 주위에서 공기와 빛이 달려드는 듯하다. 그건 다름 아닌 하늘의 움직임 때문이다. 그 순간, 하늘과 빛이 질주하는 듯한 표층을 나타내는 형태. 그러한 건축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방주교회’. 몇번이나 건물 주위를 맴돌았지만 무거운 하늘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질주하는 빛이 어떻게 지붕을 타고 흐르는지, 바람이 어떻게 물에 비친 건물을 흔드는지, 이곳에 서 있던 건축가의 감각에 눈과 마음을 얹어보고 싶었다. 건물 구석구석을 헤집기보다는 건물과 자연 사이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제주를 사랑한 건축가가 제주의 자연을 담아낸 작품이니까.

방주교회는 재일 한국인이자 세계적 건축가인 이타미 준이 2011년 타계하기 전에 지은 유작이다. ‘바람의 건축가’라 불리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추구한 이타미 준은 제주에 여러 작품을 남겼다. 방주교회(2009년)를 비롯해 ‘포도호텔’(2001년) ‘수·풍·석뮤지엄’(2006년) 등이 제주 남서쪽 중산간지역에 몰려 있다.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 방주교회 전경. 물로 둘러싸인 건물과 기하학적인 무늬의 지붕이 인상적이다. 제주=현진 프리랜서 기자

변화무쌍한 하늘을 고대했지만 방주교회는 하늘의 움직임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건축이다. 수(水)공간으로 둘러싸인 기다란 건물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독특한 조형미를 드러낸다. 배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형상으로 노아의 방주가 모티브가 됐다. 뱃머리처럼 뾰족하게 솟은 부분은 웅장하면서도 우아하고, 나무 기둥이 늘어선 벽체는 단정하면서도 리듬감을 자아낸다.

‘하늘의 교회’라고도 불리는 이 건물은 그 이름처럼 하늘을 담고 하늘에 둘러싸여 있다. 세가지 징크 소재로 된 기하학적인 무늬의 지붕은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 하늘을 표현한 것으로, 빛을 받으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또 지붕 가운데에 돌출된 천창도 빛을 안으로 들인다. 이타미 준은 “건물의 지붕이라기보다 상부의 조형이 하늘과 어떻게 조응할지”를 건축의 주제로 삼았다.

천장의 서까래와 기둥이 이어진 독특한 구조의 방주교회 내부. 제주=현진 프리랜서 기자

건물을 둘러싼 수공간에도 하늘이 들어 있다. 물에 비친 하늘로 둘러싸인 건물은 하늘에 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의 서까래가 벽의 기둥으로 이어진 독특한 목구조가 눈길을 끈다. 벽 아래쪽에 창이 나 있어 수공간이 보이고 빛이 들어와 경건한 분위기를 더한다. 기도하면서도 물에 비친 하늘을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하늘의 교회’다.

제주의 오름과 초가지붕을 모티브로 한 포도호텔. 이타미 준의 작품 중에서도 한국적인 미와 지역성을 잘 살린 건물로 꼽힌다. 제주=현진 프리랜서 기자

방주교회가 제주 하늘을 담은 건축이라면 포도호텔은 제주 오름과 어깨를 맞댄 건축이다. 방주교회에서 2㎞ 거리에 있는 포도호텔에 도착하자 검은 돌담과 노란 유채꽃 너머로 둥글둥글한 지붕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제주 오름과 초가지붕을 모티브로 한 단층 건물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포도송이처럼 보인다.

입구 옆 전망대에 오르니 크고 작은 오름과 산방산, 멀리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타미 준은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작은 마을을 형성하듯 설계했는데, 완만한 산의 능선과 지붕 선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제주의 자연을 실내로 옮긴 포도호텔의 ‘캐스케이드’. 유리관 위쪽이 뚫려 있다. 제주=현진 프리랜서 기자

내부에도 자연이 들어와 있다. 큰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듯 긴 복도를 지나면 커다란 유리관 속에 식물이 자라는 중정 ‘캐스케이드’가 나온다. 유리관 위쪽이 뚫려 있어 햇빛은 물론 비나 눈이 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내부 곳곳도 마을의 골목처럼 밖으로 열려 있어 자연을 끌어들인다.

전통미를 드러내는 포도호텔 복도의 격자무늬 창. 제주=현진 프리랜서 기자

포도호텔은 이타미 준의 작품 중에서도 한국적인 미와 지역성을 잘 살린 건물로 꼽힌다. 제주의 갈옷 천으로 마감된 벽, 황토에 한지를 바르고 콩기름을 입힌 바닥, 격자무늬 창 등이 전통미를 드러낸다. 격자무늬 창에는 한지를 안쪽에 붙이는 한국식과 바깥쪽에 붙이는 일본식이 섞여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경계인으로 살았던 이타미 준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두 건축의 여운을 간직한 채 수·풍·석뮤지엄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은 제주의 물과 바람, 돌을 주제로 한 명상 공간이다. 주민들이 사는 단지 안에 있는 뮤지엄은 예약을 통해 정해진 시간에만 볼 수 있다. 자연 그 자체가 전시물이 된 텅 빈 공간 속에 서자, 건축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전하려는 것은 건축을 매개로 자연과 인간 사이에 나타나는 세계, 즉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그가 말한 새로운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느 틈에 있는 걸까. 자연을 담고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얼마나 더 서성이면 그 세계를 볼 수 있을까. “바람의 소리,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던 건축가처럼 제주의 하늘과 산, 물과 돌, 바람이 건네는 말에 귀를 더 기울이면 보일까.

제주=김봉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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