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화폐 이야기] 50. 굿즈 시장 판도 바꾼 ‘돈명태’ 마그넷

강승구 2026. 5. 1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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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운 막던 명태, 폐지폐 만나 ‘행운 굿즈’로 부활
소각되던 5만원권 조각…이야기 입은 화폐 굿즈 열풍
한국조폐공사가 최근 출시해 SNS상에서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돈명태’ [조폐공사 제공]


냉장고 문에 명태 한 마리가 붙어 있다. 무심코 지나치다 가까이 다가가면, 지느러미 사이에서 무언가 빛난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조각들이 5만원권 지폐의 부산물이라는 걸 알아챈 순간, 마음 한구석에 묘한 생각이 든다. “이게 진짜 돈이라고?” 한국조폐공사가 최근 출시한 ‘돈명태 마그넷’이 SNS를 달구는 이유다.

돈명태를 이해하려면 먼저 명태가 왜 문 앞에 걸렸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이사하거나 개업할 때마다 현관이나 대문에 명태 한 마리를 매달았다. 입을 크게 벌린 명태가 잡귀를 삼키고, 부릅뜬 눈이 액운을 노려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와 함경도 어민들은 명태를 ‘집을 지키는 물고기’라 불렀고, 상점을 개업할 때 새출발을 알리는 말린 명태 한 마리는 빠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비린내 나는 마른 생선이 가장 신성한 부적이 되는 역설, 그것이 한국식 행운의 미학이다.

명태는 말린 것, 얼린 것, 반건조한 것 등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한국인의 삶 곳곳에 스며들었다. 북어로 불린 건조 명태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았고, 황태로 불린 덕장의 명태는 건강한 식자재로 인기가 높다. 이 대표적 국민 생선인 명태가 조폐공사의 손에서 화폐 굿즈로 새롭게 태어났다. 화폐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해마다 100톤가량의 화폐 부산물이 발생한다. 예전에는 대부분 소각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돈 들이다. 쓸모를 다했다는 이유 하나로 불길 속으로 사라진 지폐 조각들이 이제는 다른 운명을 걷는다.

돈볼펜, 도깨비방망이 돈키링에 이어 세 번째 주자로 등장한 돈명태 마그넷은 출시 당일 1차 물량이 완판되었고, 이후 4차 판매까지 매번 매진 행진을 이어 갔다. 현재는 5차 예약 판매가 진행 중이다. 사라질 뻔했던 돈이 사람들의 냉장고 문 앞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셈이다. 버려지는 것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소각되는 것에서 간직되는 것으로 바뀐 이 전환이 굿즈 하나의 성공을 넘어서 꽤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무엇을 가치 있다고 부르는가.

5만원권 화폐부산물이 들어간 ‘돈명태 마그넷’ 제품 실물모습 [조폐공사 제공]


돈명태가 SNS를 뜨겁게 달구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진짜 지폐 조각이 들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콘텐츠가 저절로 만들어진다. 이 제품을 개봉하는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이거 진짜 돈이에요?”라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빛에 비춰 보는 순간, 5만원권 홀로그램이 은은하게 반짝일 때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낸다. 위조를 막으려 정밀하게 설계된 보안 요소가 오히려 SNS 공유를 부르는 가장 강력한 방아쇠가 되는 것이다. 완성도도 빠지지 않는다. 에폭시 레진으로 마감한 황금빛 몸통, 명주실을 실리콘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매듭, 자석을 안에 숨긴 깔끔한 구조. 흔한 기념품이 아니라 ‘오브제’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마감이다. 손에 쥐는 순간 이것이 단순한 기념품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미신과 거리를 둔다는 MZ세대가 왜 이 작은 돈명태를 구하려 열광하는 것인가. 두 가지 흐름이 맞물려 있다. 하나는 뉴트로다. 뉴트로는 옛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복고가 아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의 감성을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이다. 할머니 댁 부엌에서 명태 걸개를 본 MZ세대는 거의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신선하다.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그 간격이 뉴트로가 통하는 자리다. 익숙함은 향수를 부르고, 낯섦은 호기심을 부른다. 돈명태는 그 두 감정을 동시에 건드린다.

다른 하나는 의미 부여 소비다. 요즘 세대는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는 물건에 기꺼이 값을 치른다. 돈명태 안에 든 지폐 조각은 그저 장식이 아니다. 개업, 이사, 취업처럼 새출발을 앞둔 누군가에게 이 물건을 건네면 “행운과 돈이 함께하길”이라는 마음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진다. 실제로 돈명태를 구매한 이들 상당수가 ‘선물용’을 이유로 꼽는다는 점은 이 물건이 단순한 인테리어 소품이 아님을 방증한다.

결국 돈명태는 물건이 아니라 이야기를 판다. 액운을 막던 전통의 상징, 실제 화폐의 흔적, 폐기물을 가치 있는 자원으로 되살린 업사이클링, 누군가의 새 출발을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 손바닥만 한 마그넷 하나에 네 겹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조그만 물건이 가격을 넘어선 가치를 갖는 이유다. 돈명태는 오늘도 누군가의 냉장고 문에 조용히 붙어, 아무 말 없이도 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진구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장


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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