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재개발, 지난해 의견 수용했으면 지금쯤 세계유산영향평가 끝났을 것”…허민 국가유산청장, 서울시 유감 표명

배문규 기자 2026. 5. 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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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국가유산청장이 지난 8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대한 국가유산청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국토교통부가 주관하고 LH가 시행하는 ‘태릉CC주택개발’은 올해 안에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절차가 끝날 것으로 봅니다. 종묘 앞 세운4구역도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국가유산청 의견을 수용했다면 지금쯤 평가가 끝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8일 기자들과 만나 “세계유산영향평가는 보존과 개발의 접점을 찾기 위한 절차이지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서울시를 비판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6일 서울시와 SH, 종로구에 세운4구역 사업에 대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거친 뒤 사업계획 보완과 인가 절차를 진행하라는 이행 명령 공문을 보냈다. 종로구가 절차를 강행할 경우 추가 행정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국가유산청은 논란이 불거진 뒤 서울시와 지속적으로 협의를 시도해왔다고 밝혔다. 허 청장은 “지난해 하반기 서울시가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추진할 때부터 세계유산영향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며 “서울시 고위 간부들과 만나 SH의 사업시행인가 신청을 취하하고, 평가를 먼저 받은 뒤 경관 문제를 조정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 측은 기존 입장만 반복했다는 것이다. 허 청장은 “청장이 주민대표를 직접 만나겠다는 뜻까지 전달했지만 만남 자체가 거부됐고, 종로구는 협의 창구에 나오지 않은 채 주민 공람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정비사업통합심의위원회를 열어 세운4구역 사업을 ‘조건부 의결’로 결정했으며, 사업 계획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단계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가를 획득한 뒤에는 사업 내용이나 계획을 변경하는 게 쉽지 않다.

허 청장은 “이번 명령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반드시 받고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라는 것”이라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추가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기본법상 세계유산과 역사문화환경 보호 조치 명령, 문화유산법상 행위 중지·원상회복 명령 등을 근거로 추가 대응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지자체 처분에 대해서는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따른 시정명령과 취소·정지 가능성도 거론했다. 허 청장은 “정부 입장에서는 할 수밖에 없는 조치”라며 “7개월 동안 상생 방안을 찾으려 했는데 어렵게 된 데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 왕릉과 접한 태릉CC 개발을 “상생의 모델”로 들며 국가유산청이 개발 자체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태릉CC는 지난 1월부터 영향평가를 진행해 높이와 아파트 디자인 협의가 거의 끝났다”며 “세계유산영향평가는 주민과 시민에게 부담을 주려는 절차가 아니라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 등은 오랜 논의 끝에 2018년 종묘 맞은편 세운 4구역에 들어설 건물 높이 기준을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로 협의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시가 최고 높이를 145m로 상향 조정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허 청장은 서울시와 논의 과정에서 높이 조정을 제안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는 “서울시장과 대화할 때 71.9m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도 전달했다”며 “세계유산영향평가를 통해 종묘 경관을 고려해서 높이 조정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봤고, 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도 논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의 특수성과 주민 요구까지 고려해 접점을 찾으려 했는데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허 청장은 올해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종묘 앞 재개발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전날 “합리적 해법을 찾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합리적 해법은 사업시행인가를 내지 않는 것”이라며 “인가를 중단하거나 취하한 뒤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인허가를 내버리면 합리적 해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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