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시대, 음식은 물질인가 행위자인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
인류세(Anthropocene)는 인간 활동이 지구 전체에 지질학적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적 논의이다. 기후 재난이 일상화될 수 있으며 인류를 위협하는'다중복합위기(poly-crisis)'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인공지능 기술의 등장은 인간이 사유적 주체로서 자연과 사물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가진다고 본 인본주의적 사유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근대적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뿌리를 두고 인간을 합리적이고 우월한 존재로 설정하고, 자연과 물질을 수동적이며 통제 및 착취가 가능한 도구적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이는 자연에 대한 정복과 소비를 정당화하는 환상을 키웠고, 결과적으로 지구 생태계의 파국을 초래하게 되었다.
신유물론의 사유체계와 물질 이해
신유물론은 이원론적 사유에서 벗어나 물질적인 것에 특별한 관심을 둔다. 물질에게 내재적인 생기(vitality), 능동성, 그리고 행위성(agency)이 있음을 인정한다. 신유물론은 인간과 비인간이 분리할 수 없게 얽혀'사회물질적'공동 세계를 구성한다는 통찰을 기반으로 하여, 물질의 행위성을 이론화함으로써 인간의 특권을 내려놓고 비인간의 역량을 인정할 것을 요청하는 탈인간중심주의적 사유를 지향한다. 신유물론이 탐구하는 물질은 남에 의해 뭔가를 하게 되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 무엇이든 되게 하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물질이다.
물질의 세가지 특성
신유물론에서 바라보는 물질의 가장 큰 특성은 행위성(agency)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물질의 행위성을 아이디어로 시작된 영화로 독성으로 가득한 세상에 거주하는 위협을 가시적인 힘으로 변환시켜 극화한다.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성화학물질을 무단 방류함으로써 생겨난 돌연변이 괴물이 등장한다. 독성물질의 행위성으로 변화된 괴물은 인간의 예측과 의도를 벗어나 난동을 부리게 된다.
물질의 횡단성(transversality)이란 경계를 돌파하는 운동이며 동시에 그 결과로 형성된 구성물이다. 횡단성을 이해하기에 좋은 예는 백신이다. 백신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중간적 장소에 속하는 물질로 접종자가 획득하게 되는 면역은 본래 타고난 것에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자연물도 인공물도 아니다. 백신과 접종자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배치성(assemblage) 은 서로 다른 실체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들 사이에서 창출되는 것으로 일정 기간 함께 작동하도록 하는 양식을 의미한다. 배치성은 행위자 능력을 나타내는 행위자(agent)와 행위소(actant)의 일시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연합으로 새로운 전체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모인 다양한 개체들의 배열이다. 배치성은 세계에 대한 재현 즉 모방이 아니다. 물질은 배치됨으로 모방이 아닌 새로운 세계를 이룬다.
음식의 물질성-동지김치, 몸국, 범벅
신유물론적 관점에서 음식은 인간의 의도와 예측 범위 내에 머무는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음식은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비인간 행위소들과 물질적·기술적으로 얽히며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예측 불가능한 배치의 주체로 파악된다.
음식이 가진 생기성은 인간의 쾌락과 욕망을 발생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소로 작용한다. 신유물론이 바라보는 음식은 생기가 넘치며 그 생기를 띤 채 살아있으며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욕망을 발생하게 하는 적극적인 행위소라고 볼 수 있다. 제철음식에는 생기성이 있다. 우영에서 겨울을 넘긴 배추에서는 부드러운 꽃대가 올라오는데 이를 동지나물이라 부른다. 동지나물은 꽃피기 직전의 어린 줄기와 잎으로 2월 말에서 3월 중순 사이에 곧게 올라온다. 제주에서는 이른 봄철에 동지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
음식이 신체를 횡단하여 일으키는 변화는 단순히 즉각적인 반응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 걸쳐 축적되어'궤적(trajectory)'을 형성한다. 궤적을 과거 현재를 잇는 기억의 흔적이라고 본다면 궤적성이 있는 제주음식으로는 몸국을 들 수 있겠다. 몸국은 큰일에 참여한 자들이 모두 함께 나누어 먹으며 큰일에 참석해서 함께 몸국을 먹는 것은 집단 특정의 사회적 관계를 실천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음식의 궤적은 장기적으로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제주와 오키나와의 장수 노인들에 대한 연구는 그들이 먹어온 보리밥, 야채, 된장국과 같은 소박한 식단이 건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았다.
제주음식은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한 식재료들 간의 결합으로 새로운 음식으로 거듭났다. 국, 죽, 범벅 등 식재료 간의 결합에서 배치성이 발휘된다. 육지의 범벅이 죽 종류에 속하여 풀처럼 되게 쑨 유동성 높은 반고체형인데 비해, 제주의 범벅은 손으로 먹을 수 있게 된 고체의 형태이다. 메밀가루가 주재료이지만 떤 부재료가 들어가느냐에 따라 음식의 이름이 결정된다. 감저(고구마)범벅, 톨(톳)범벅, 깅이(게)범벅, 는젱이 범벅 등이다. 동지김치는 제철 식재료의 생기성을 보여주며, 몸국은 사회적 관계의 궤적을 드러내고, 범벅은 재료들의 배치성을 잘 보여준다.
음식이 사람을 비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해서 이것이 비인간이 작동하고 있는 사례라는 것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수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에서는 음식으로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이 하루 세끼를 맥도날드 햄버거만 먹으며 신체를 관찰했다. 30일 동안 몸무게가 11.1㎏ 증가했다.
우리 조상들이 강조한 '약식동원(藥食同源)'은 음식의 물질적 효능을 인정한 삶의 철학이었다. 음식은 단순히 소비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얽힌 관계망 속에서 윤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존재다. 신유물론은 이러한 전환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탐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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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81호(2026)에 '신유물론으로 본 제주 '쉰다리'의 물질성'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논문을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요약 정리한 것이다.

제주대학교 초등도덕교육전공 박사과정으로 공부중이며 제주대학교 초등교육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의 음식문화와 생태적 조건이 연구의 출발점이다. 신유물론, 포스트휴머니즘, 행위적 실재론, 생기적 유물론을 철학적 무기로 삼아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있다. 9월 발간 예정인『Not Yet』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