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온몸으로 예술하는 운동…남녀노소 ‘리나리노’
취미로 발레 하는 ‘취발러’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수 급증
반복 훈련으로 몸의 변화 체험
무대에 서는 특별한 즐거움도

취미로 발레를 하는 사람들, 일명 ‘취발러’는 이제 제법 익숙한 단어가 됐다. 10년 전만 해도 취미로 발레를 한다고 하면 신기해하거나 유난스럽다고 여기는 반응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회사 동료 또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취미로 발레를 하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마주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성인 취미 발레는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뚜렷한 취미의 카테고리로 이제 자리 잡았다. 취미로서의 발레가 ‘2.0’으로 진화하면서 발레와 관련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극소수가 즐기던 발레가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건 가장 먼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취미 발레인 온라인 커뮤니티 ‘레오타드를 입는 사람들’의 회원 수는 3년 전 1만5천명에서 최근 3만5천명을 넘어섰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을 보면, 2025년 무용 장르 티켓 판매액은 전년 대비 29.5%(61억원) 증가했다. 엠넷에서 방영한 무용 경연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로 커진 무용수 팬덤의 영향도 있지만 취미 발레 시장이 커진 것도 주요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취발러’가 꾸준히 느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이들은 입을 모아 발레 자체가 가진 특별함이라고 답한다. 14년 넘게 취미 발레를 하면서 발레의 매력에 빠져 ‘바른 발레 생활’ 등을 펴낸 출판사 플로어웍스 윤지영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발레는 몸으로 표현하는 운동이라는 게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맞춰 몸을 움직여 동작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춤을 춘다는 근본적인 즐거움이 발레만 줄 수 있는 매력이죠. 근력 위주의 운동이라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세도 좋아지고 균형도 찾아갈 수 있어요. 레오타드 등 연습복을 사는 재미도 중요해요. 또 발레는 한 장르를 깊게 파는 걸 좋아하는 이들에게 딱이에요. 발레를 하다 보면 용어도 궁금하고, 발레 공연에도 관심을 갖게 되거든요. 프랑스어로 된 발레 용어의 뜻만 따라가도 발레의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발레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도 즐길 수 있게 되죠.”
윤 대표는 발레에 대한 ‘오타쿠적’ 관심을 출판으로 옮겨 발레 용어, 의상, 음악, 작품에 대한 책을 펴냈다. 5년 전 발간된 ‘올바른 발레 용어’는 취미로 발레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다. 대중서이면서 전문서인 책은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하는 발레’와 ‘보는 발레’가 가까워지면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한다.

발레만의 또 다른 매력은 보는 아름다움의 정반대에 있는 반복적 훈련이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발레리나를 꿈꾸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수없이 반복하는 기본 동작이다. 이러한 반복 훈련이 운동으로서의 발레가 갖고 있는 핵심이다.
배진수 세종대 전자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2022년 ‘물리의 쁠리에’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과학자인 배 교수가 바라본 발레 이야기다. ‘보는 발레’의 매력에 빠져 발레를 즐기다가 취미로 발레를 배우기도 한 배 교수는 “발레는 간단한 기본 동작을 체계적으로 반복 훈련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며 “직선적이고 단순한 기본 동작을 반복하면서 곡선이 풍부하고 복잡한 동작을 완성하는 과정이 발레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발레는 몸의 모양과 기능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몸을 보면 그 사람의 발레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죠. 다시 말해, 발레 실력이 늘면 몸의 모양도 달라집니다. 필라테스나 요가가 자기 몸의 특성을 유지한 채 좋은 움직임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발레는 몸의 변화를 빠르게 체험할 수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취발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운동으로서의 발레를 꾸준히 하면서 몸의 변화가 주는 기쁨을 추구하는 이들과 콩쿠르나 경연대회 등 무대에 서는 짜릿함을 추구하는 이들로 나뉜다. ‘취발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이 설 수 있는 발레 무대가 많아지는 것도 ‘취미 발레 2.0’ 시대의 특징이다.
발레를 시작하면서 무대에 서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 요가나 필라테스, 러닝 등의 운동은 개인적인 영역이 거의 전부지만 발레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발레 실력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낼 수 있다는 게 발레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2분 남짓의 짧은 작품을 6개월 넘게 연습하고, 무대에서 입을 의상과 메이크업을 준비하고,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하는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다. 무대는 운동으로 발레를 하다 보면 찾아오는 발레의 권태기, 일명 ‘발태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보통 발레를 하면서 만나는 친구를 ‘발레메이트’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의 발레메이트인 취미 발레인들이 모이는 페스티벌이 있다. 와이즈발레단 주관으로 매년 열리는 ‘발레메이트 페스티벌’이다. 2017년을 시작으로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열려 올해 9회를 맞는 발레메이트 페스티벌은 취미 발레인이 무대에 오르고 기량을 겨루는 축제다. 올해 참가자는 210팀이다. 1회 때 참가자가 24팀이었던 걸 고려하면 거의 10배로 커졌다. 김길용 와이즈발레단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발레는 진입 장벽이 높고, 전공자만 한다고들 여겼어요. 그런 통념을 깨려면 취미 발레인들을 위한 장을 만들어 실질적인 발레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축제를 매년 진행하면서 취미 발레인들이 많아지는 걸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어요. 참가자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합니다. 간혹 남자 참가자들도 있어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죠.”
이번 페스티벌은 오는 6월13~14일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올해는 가족이 함께 발레 클래스에 참여하는 ‘패밀리 데이’를 진행하는 등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3대가 모두 발레를 즐기거나 부부가 함께 즐기는 이들을 축하하는 자리도 있다. 내년에는 10회를 맞이하는 만큼 더 큰 규모의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취미 발레인들이 발레를 즐기는 방법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지역의 발레 학원에 다니며 수업을 듣는 ‘원정 발레’의 범위가 국내를 넘어 국외로도 향하고 있다. 취미 발레가 대중화된 일본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등으로 발레 테마 여행을 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현지에서 발레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각 나라의 문화 방식대로 발레를 배워보고, 지역마다 특색 있는 발레 관련 쇼핑을 하는 것이다.
7년째 즐기는 취미 발레 이야기를 일러스트와 함께 써 내려간 책 ‘띵별의 일러스트 발레일기’를 펴낸 박연경 작가는 발레를 테마로 한 여행을 다녀오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도시의 얼굴을 발견했다. “일본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라서 도쿄는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도쿄를 발레라는 안경으로 보니 새로웠어요. 일본은 발레가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은 나라라서 그런지 수준도 높고 참여하는 이들도 다양하더라고요.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발레를 배우는 모습도 봤어요.”
확장기에 접어든 취미 발레의 세계는 이토록 다양하고 깊게 가지를 뻗어가고 있다. 발레의 대중화는 아직 먼일일지 몰라도 취미 발레는 점점 뿌리내리고 있다. “발레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문화라서 한번 빠져들면 즐길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박 작가의 설명처럼 취미로서의 발레는 또 새로운 방식으로 ‘발견’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안인용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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