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주의자’가 태양광을 말할 때 우리가 할 일

서영민 2026. 5.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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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티 비롤, 미국이 압박해도 흔들리지 않는 IEA의 수장

터키 출생의 경제학자. 사회생활을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시작했다. 석유·가스 경제가 전공이다. 그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로 옮겼다. OPEC이 산유국 카르텔이라면, IEA는 화석연료 수입국 카르텔로 출발한 곳이다. 1974년 오일쇼크 직후 만들어졌다.

지금은 에너지의 미래를 그리는 가장 강력한 기구다. 그런데 이 기구가 화석연료 비관론을 편다. 그 중심에 파티 비롤이 있다. 11년째 IEA 사무총장인 그가 진두지휘한다. 특히 2021년에는 더 이상 화석연료에 신규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Net Zero by 2050> 보고서를 주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연금을 끊겠다고 위협한다. IEA 예산의 10% 안팎을 미국이 대니까 상당한 위협이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는 전직 프래킹 회사(셰일 가스 추출을 위해 수압으로 돌을 깨는 작업을 하는 회사) CEO다. 그는 IEA의 '넷 제로' 의제를 "파괴적 환상"이라 불렀다. 1년 안에 노선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은 탈퇴할 거라고 못 박았다. 그래도 IEA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 3월. 호주 기자클럽 회견장, ABC 방송 카메라 앞에서 비롤은 재생에너지가 미래라고 단언한다.


"10년 전만 해도 태양광은 낭만적인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비즈니스죠. 이 재생에너지의 주된 추동력은 더 이상 기후변화가 아닙니다. 에너지 안보예요.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국산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근거는 숫자다. 지난해 전 세계에 새로 들어선 발전 설비의 85%가 재생에너지다. 그중 75%가 태양광. 배터리 저장 설치는 한 해에 40% 늘었다.

이쯤 하면 재생에너지 마피아라고 오해할 수 있으나, 오히려 그는 '원전주의자'다. 스스로를 '원전 강세론자 very bullish on nuclear'라 칭한다. 마크롱이 프랑스 원전 비중을 75%에서 50%로 낮추겠다고 했을 때, 그는 신문에 "에펠탑을 파는 것과 같다"고 썼다. 독일 탈원전에 대해선 더 단호했다. "스위스 시계처럼 잘 돌아가던 원전을 끈 독일의 결정은 역사적 실수였다." 그 소신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런데도 그가 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이유, 에너지 안보를 직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엔 이런 위기 대응 수단이 많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르다면서, 그 첫 번째 이유로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배터리를 말한다. 특히 '배터리는 게임체인저'라며 태양광과 풍력을 에너지 섹터의 훨씬 더 큰 부분으로 만든다고 단언했다. 그다음에야 등장하는 게 자신의 소신인 원전이다. "원전이 강하게, 매우 강하게 돌아오고 있다. 4년 전에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유럽이 그렇게 변화했다. 인허가를 단순화하고, 지원해서 태양광·풍력 신규 설치를 한 해 세 배로 늘렸다. 2022년 이후 유럽 재생에너지 성장의 핵심 동력은 기후가 아니라 안보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이번 중동 사태가 증명한다. 스페인 등 재생에너지가 강한 나라를 중심으로 에너지 충격이 확연히 줄었다.

전기화도 이 같은 추세를 강화한다. 우리는 지금 전기의 시대에 들어섰고,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나 전기차, 에어컨 등 세계 전기 수요는 엄청나다. 전체 에너지 수요의 두 배 속도로 자라고 있다. 따라서 "누가 얼마나 전기를 만드느냐, 그 전기가 얼마나 싸냐?"가 데이터센터의 위치를 정하고, AI 레이스의 승자도 정한다는 말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세계 에너지 기구의 수장이 보는 세계의 흐름이 그렇다.

■ IMF도, UN도 결론은 '재생에너지'

지난 4월 14일. IMF가 세계경제전망 World Economic Outlook을 발표했다. 제목은 <전쟁의 그림자 속 세계 경제>다.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에르 올리비에 고린차스가 마이크 앞에 섰다.


세계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 회복 궤도에 있었다. 미국의 이란 침공에 따른 전쟁이 그 동력을 멈춰 세웠다. 지금으로썬 하방 위험이 크다. 그러면서 한 말은 이렇다.

"각국이 이 위기에 대응해야 합니다. 재정 정책은 단기적으로 취약해진 계층을 도와야겠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데 투자할 기회로 생각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공식 보고서에서는 중국을 그 근거로 든다. 이번 에너지 충격에서 중국이 비교적 덜 흔들린 건 수년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전기차 보급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한다.

UN의 수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부터 재생에너지로 미래를 보자고 외쳐왔다. 단순한 기후 대응이 아니다. UN 공식 유튜브 영상에서 구테흐스는 '지금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재생에너지는 가장 싸고, 가장 빨리 늘고 있고, 가장 안전한 에너지'라고 역설한다. 이란 전쟁이 터진 뒤 낸 성명도 마찬가지다. 재생에너지가 안보 수단이다.

"햇빛에는 가격 급등이 없고, 바람에는 수출 금수조치가 없다."

태양은 사라지지 않고, 바람은 계속 불 것이기 때문이다. 2026년 현재, 에너지 안보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것이다.


■ "드릴 베이비 드릴" 트럼프 생각은 다르다? 텍사스를 보라

미국에서도 이 흐름은 분명하다. 트럼프가 화석연료를 큰 소리로 외친다 해도 시장은 다른 말을 한다. 화상통화로 만난 IEEFA(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 전략 자문이자 30년 차 에너지 금융 전문가인 그랜트 하우버의 말이다.

그는 텍사스를 보라고 했다. 미국 석유산업의 심장이면서, 가장 보수적인 공화당의 텃밭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이 미국 재생에너지 확장의 최전선이다.

텍사스 전력망에서 풍력과 태양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36%다. 계속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2026년 미국 신규 태양광의 무려 40%가 텍사스에 깔린다. 신규 배터리 저장의 53%도 텍사스다. 가장 강력한 화석연료 생산지의 에너지 전환은 정치적 구호 뒤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재생에너지가 미래다.

물론 한계는 있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너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스 발전소도 10년 만에 다시 늘고 있다. 다만, 중요한 건 큰 방향이다. 미국의 시장 역시 재생에너지로 향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무력화하고, 풍력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면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방향이 바뀌진 않는다. (중국과의 경쟁에서는 더 뒤처질 것이다.)

텍사스가 보여주는 답이다.


■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그랜트 하우버는 "한국은 이미 공급망 대부분을 자국 안에 보유하고 있다.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태양광, 풍력터빈, 풍력 타워, 하부구조물, 해상 설치선, 배터리, 전기차, 히트펌프, 케이블... 중국을 제외하면 녹색산업 전 분야를 고루 가진 거의 유일한 나라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멈춰 있다. 그 현실을 오늘 밤 10시 20분, KBS 1TV 시사 다큐멘터리 <더 보다> 2부, [호르무즈의 경고:햇빛이 안보다]에서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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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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