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KCC 떠날 때 울었던 이상민, 실패와 상처 지나 선수·코치·감독 첫 우승 역사 앞에 서다

김종석 기자 2026. 5. 10. 07:4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6위 KCC, 소노와 챔피언결정전 3연승…10일 부산 4차전 승리하면 4연승 정상
- 이상민 감독, KBL 최초 같은 팀 선수·코치·감독 우승 눈앞
- 김승기·전희철·조상현도 선수·코치·감독 우승 경험…이상민은 ‘한 팀’ 최초 도전
- 삼성 준우승과 사퇴, KCC 백의종군 거쳐 슈퍼팀 묶어낸 변화한 리더십
KCC 이상민 감독은 한 팀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달성하는 새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더 내려갈 데도 없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2014년 삼성 감독으로 처음 지휘봉을 잡았던 이상민 KCC 감독은 필자와 만남에서 그렇게 말했다. 당시 그는 "2년 정도 코치를 더 할 줄 알았다"며 조심스러워했다. 선수 시절 '컴퓨터 가드'로 불렸던 그는 지도자가 된 뒤에도 신중했다. 인터뷰를 앞두고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나"라고 물어볼 정도로 꼼꼼했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는 지금 프로농구 역사 한가운데 다시 서 있다.

 KCC는 소노와의 2025-2026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3연승을 달렸다. 10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리는 4차전마저 잡으면 4연승 스윕 우승이다. 그렇게 되면 이상민 감독은 KBL 최초로 같은 팀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인물이 된다.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챔피언 반지를 낀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승기, 전희철, 조상현 감독이 이미 그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상민 감독의 도전은 결이 다르다. 앞선 지도자들이 서로 다른 팀에서 선수, 코치, 감독 우승 반지를 나눠 꼈다면 이상민은 KCC 한 팀에서 세 역할의 우승을 모두 완성하려 한다. 현대 선수로 출발해 KCC 수석코치로 5위 팀 최초 우승을 돕고, 이제 KCC 감독으로 6위 팀 첫 우승까지 눈앞에 뒀다. '같은 팀 선수·코치·감독 우승'이라는 점에서 KBL 최초의 장면이다.

 기록의 결도 남다르다. 그는 지난 시즌 KCC 수석코치로 프로농구 최초 '5위 팀 우승'을 도왔고, 이번 시즌에는 감독으로 '6위 팀 첫 우승'이라는 또 다른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단순한 챔피언이 아니라 KBL 질서 자체를 흔드는 우승이다.

이상민 농구 인생과 우승

사실 이상민이라는 이름은 KCC와 떼어놓기 어렵다.

 최희암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에 입학해 농구대잔치 우승 주역이 된 그는 프로농구 코트에서 현대 유니폼을 입고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 그리고 9년 연속 올스타 팬 투표 1위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농구대잔치와 프로 초창기 시대를 대표했던 최고 인기 스타였다. 연세대 숙소 앞에는 밤마다 팬들이 몰려들었고, 이동조차 쉽지 않았다. '마지막 승부'와 '응답하라 1994'의 시대, 이상민은 그 청춘의 중심에 있던 스타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 농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필리핀과의 준결승에서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이상민의 극적인 3점슛이 없었다면 결승 진출조차 어려울 뻔했다.

 '영원한 현대맨'으로 불렸던 그는 2007년 삼성으로 이적할 당시 팬들의 거센 반발과 시위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만큼 현대와 KCC, 그리고 이상민이라는 이름은 서로 떼기 어려운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의 농구 인생이 늘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다.

 서울 성북초 5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은 그는 중·고교 시절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홍대부고 진학 당시 키는 172cm. 그는 키 크는 방법이 담긴 책을 읽으며 당근, 사과, 우유, 정어리만 먹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고교 3학년 때 182cm가 됐다.

 연세대 시절 최희암 감독과 유재학 코치를 만나며 농구 인생이 바뀌었다. 문경은, 우지원, 서장훈과 함께 뛰며 '분업 농구'를 배웠다. 화려한 개인기보다 조직을 움직이는 법을 익혔다. 빠른 판단, 패스 타이밍, 공간 읽기. 훗날 '컴퓨터 가드'라는 별명을 만든 기반이었다.

KCC에서 우승을 이끌며 MVP로도 뽑힌 이상민 감독.

지도자로서의 길은 더 험난했다.

 2012년 삼성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4년 감독으로 승격됐다. 당시 삼성은 명가 재건을 꿈꿨고, 최고의 스타였던 이상민에게 미래를 맡겼다.

 성과도 있었다. 2015-2016시즌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016-2017시즌에는 삼성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었다. 상대는 안양 KGC인삼공사였다. 하지만 삼성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감독 이상민이 가장 정상에 가까이 갔던 순간이었다.

 이후 삼성은 급격히 흔들렸다.

 외국 선수 변수, 세대교체 실패, 프런트 운영 문제 등이 겹치며 팀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결국 그는 2022년 1월 22일 성적 부진 속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당시 심정은 비참함에 가까웠다고 한다.

 한국 농구 최고의 스타였고, 늘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이상민에게 '실패한 감독'이라는 꼬리표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삼성의 몰락을 이상민 한 사람의 실패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삼성은 그가 떠난 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이상민이 떠난 2021-2022시즌을 시작으로 삼성은 프로농구 첫 5시즌 연속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떠안았다.

KCC 코치로 전창진 감독과 호흡을 맞춘 이상민 감독.
KCC 코치로 우승을 경험한 이상민 감독.

2023년 여름 KCC가 그를 다시 불렀다.

 전창진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는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감독 출신 레전드가 다시 코치로 돌아가는 건 자존심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였다. 사실상 백의종군이었다.

 당시 농구계에서는 이미 "결국 KCC 감독은 이상민에게 갈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친정의 상징 같은 인물을 코치로만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었다. 친정과 이상민 사이에 남아 있던 상징성과 정서적 연결 역시 복귀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상민에게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삼성 주무 출신으로 우승 제조기로 변모한 전창진 감독 곁에서 그는 선수단 운영, 경기 흐름 조율, 시즌 관리, 스타 다루기를 다시 익혔다. 지난해 KCC는 프로농구 최초 5위 팀 우승을 차지했고, 이상민은 코치로 그 역사 곁에 있었다.

 무엇보다 삼성 시절의 실패는 그를 바꿔 놓았다.

 예전의 이상민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다. 시스템과 규율을 우선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상민은 사람을 먼저 본다.

이상민 감독이 벤치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이번 KCC는 전형적인 슈퍼팀이다. 허훈, 허웅, 최준용, 송교창. 각 팀 에이스급 선수들이 한곳에 모였다. 하지만 스타가 많다고 강팀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존심 충돌과 역할 문제로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번 KCC가 특별한 이유는 이상민 감독이 그 스타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냈다는 데 있다.

 허훈의 공격 본능을 살리면서도, 최준용 특유의 자유로움을 인정한다. 송교창의 궂은일과 허웅의 득점 감각 역시 역할 안에서 살아난다. 선수들의 개성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였지만 코트 안팎에서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두루 겪으며 이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만 고집하기보다 경청의 자세를 터득할 수 있었다.

 삼성에서의 실패와 좌절은 오히려 지금의 이상민 리더십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지도자의 꽃이라 불리는 프로 감독 자리에서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선수 시절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이상민은 긴 실패와 상처를 돌아 다시 정상 문 앞에 섰다. 이번 우승은 단순한 챔피언 반지 하나의 의미가 아니다.

 현대(KCC) 왕조의 상징이었던 선수가 친정으로 돌아와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하는 첫 번째 역사. 실패한 감독으로 끝날 뻔했던 지도자의 재기. 그리고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부활의 이야기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기사제보 tennis@tennis.co.kr]

▶ 테니스코리아 쇼핑몰 바로가기

▶ 테니스 기술 단행본 3권 세트 특가 구매

Copyright © 테니스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