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곡성 도림사, 천년의 물소리를 담다 [앵+글로 본 남도세상]
김덕일 2026. 5. 10. 07:11

내린 비로 더 맑게 갠 동악산 자락을 오르는 발걸음은 가볍다. 계곡 물안개가 걷히고,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동악산은 마치 갓 씻어낸 듯 짙은 초록빛을 뿜어낸다. 오늘 뷰파인더의 초점을 맞춘 곳은 옛 선비들의 풍류가 바위마다 짙게 배어있는 '도림사 계곡'과 도인들이 숲을 이루었다는 천년고찰 '도림사(道林寺)'다. 비가 온 뒤, 더 풍부해진 물소리와 생생한 풍경을 담기 위해 서둘러 렌즈를 갈아 끼웠다.


# 비 온 뒤 더욱 살아나는 암반 계곡의 숨결
계곡 초입부터 물소리가 또렷하다. 밤새 내린 비로 수량이 불어나면서, 평소보다 힘찬 물줄기가 넓은 반석 위를 따라 흐른다. 도림사 계곡은 하나의 바위라기보다, 크고 작은 암반이 이어지며 형성된 독특한 지형으로 알려져 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물살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바위를 타고 흐르고, 물기 머금은 바위 표면은 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옛 선비들처럼 탁족(濯足)을 즐기며 시 한 수 읊고 싶은 유혹이 강렬하게 차오른다. 차가운 물소리가 온몸을 씻어내리는 듯한 느낌, 그 청량함을 사진에 온전히 담고 싶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동악산의 품
계곡의 규모는 시선을 높일 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난다. 새의 눈으로 바라본 풍경 속에서 동악산의 숲은 계곡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고, 암반 지형은 자연이 빚어낸 하나의 흐름으로 읽힌다. 새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림사는 숲속에 포근하게 안긴 작은 점처럼 보인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산의 결을 따라 이어지며, 한 폭의 산수화처럼 고요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자연의 선과 면이 어우러진 풍경은 지상에서 느끼는 감각과는 또 다른 깊이를 전해준다.


# 전승 속에 깃든 산사, 도림사
계곡의 물길을 따라 오르면 이내 도림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신라 시대 원효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도림사(道林寺)'라는 이름 역시 다양한 해석이 전해진다. 수행하는 이들이 숲처럼 모여들었다는 의미로 풀이되기도 한다. 경내에 들어서니 산사의 아늑함이 온몸을 감싼다. 화려하지 않지만, 기품 있는 대웅보전의 단청과 처마 끝에 매달려 바람의 길을 알려주는 풍경(風磬) 소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 남도의 풍경은 마음에 먼저 남는다
도림사 앞뜰에 서서 한참 동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사진은 순간을 기록하지만, 풍경은 마음에 먼저 새겨진다. 오랜 시간 흐르는 물과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바위,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산사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춰 설 이유를 건넨다.
오늘도 카메라에는 남도의 풍경이, 마음에는 곡성의 맑은 숨결이 차분히 쌓여간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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