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 사망자 낸 ‘아리셀 사고’, 대표 형량은 왜 대폭 깎였나 [이인혁의 판례 읽기]
[법알못 판례 읽기]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1차 전지업체 아리셀의 공장에서 큰불이 났다.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박순관 대표와 그의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 등 경영진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2025년 9월 1심 법원은 박 대표 부자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이었다. 그런데 2026년 4월 나온 항소심(수원고등법원 형사1부) 판결에선 이들의 형량이 대폭 깎였다. 박 대표는 징역 4년으로, 박 본부장은 징역 7년으로 감경됐다.
유족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법이냐”고 항의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1심과 2심의 판단이 이처럼 극명하게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열감지기 설치 위반, 모두 유죄
1심은 아리셀이 제조한 전지의 제조상 결함으로 내부 단락이 발생해 대형 화재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또한 경영진은 전지 제조 과정에서 전해액 주입 공정 이후에는 전지가 다양한 원인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봤다.
항소심 역시 “전지의 폭발 원인으로 제조상 결함이 아닌 외부적 원인을 지목할 만한 다른 사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화재 사건이 발생하기 이틀 전 전지 폭발 사고가 터지는 등 제조상 결함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열감지기 설치 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1심과 2심의 판단은 같았다. 1심 판결에 따르면 아리셀의 전지 제작 공정 과정에서 간헐적으로 손으로 온도를 검사하는 것 외엔 전지 발열을 확인할 수단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리셀이 열감지기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의무 위반이라고 봤다. 2심 재판부도 “열감지기가 완벽한 수단은 아니나 다른 더 유효·적절한 수단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부분도 1심과 2심의 의견이 동일했다. 화재로 숨진 23명 중 20명이 파견근로자였다.
법원은 아리셀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기간 불법 파견받았고 이 같은 점이 사고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1심은 박 대표가 불법 파견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봤고 항소심도 이런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비상구 설치 의무는 판단 갈려
그러나 비상구 설치 의무를 둘러싸고는 두 법원의 시각이 달랐다. 화재가 난 아리셀 공장 3동 2층엔 비상구가 없었다. 1심은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이면 층마다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아리셀은 비상구 및 비상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1심은 이를 근거로 안전조치 의무 위반 치사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공장 3동 2층에 비상구를 설치했어야 한다는 건 ‘지나친 확장해석’이라고 판단했다. 산업안전보건규칙 제17조엔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과 그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비상구 설치를 규정하고 있을 뿐 ‘각 층’별로 비상구를 설치하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다.
3동 2층에 비상구 설치 의무가 없는 만큼 비상구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할 의무도 자연스레 따라붙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수원고법은 또한 화재 발생 시 모든 문이 자동으로 개방돼 통행이 가능했고 대피경로로 이용할 수 있는 통로가 통행에 장애가 될 정도로 막혀 있었거나 좁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를 무죄로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도 “사망한 피해자들에 대한 안전보건교육과 소방 훈련, 화재 대피 교육, 훈련 부족 등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우왕좌왕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화재 이틀 전 선행 폭발사고 이후 후속 공정을 중단하거나 매뉴얼을 마련했었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참사라는 점에서 피고인들의 책임은 매우 중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는 동시에 2심 재판부는 박 대표 등이 안전조치를 ‘완전히 방치’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사고가 발생한 부분이나 작업상 안전조치가 필요한 공정에 대해선 구체적 안전조치를 해왔다는 얘기다.
현실적·기술적 한계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현재의 기술 수준 등에 비춰 재해 발생을 완벽하게 막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화재가 발생한 위치, 화재가 이례적으로 확산한 속도 등 사건의 특수성이 피해자들의 사상에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족과 합의…양형 반영은?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양형에 얼마나 반영할지는 1심과 2심이 상반된 시각을 보인 대목이다. 박 대표 등은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 전원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과도 모두 합의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를 양형에 크게 반영하지 않았다. 수원지법 형사14부의 고권홍 부장판사는 2025년 선고 당시 “결국 기업가는 합의됐다는 이유로 선처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며 “이런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재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족이 생계유지 등 이유로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감안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게 되면 피고인이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도록 만들거나 급기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재판부는 “충분한 피해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리셀의 안전보건 담당 관리자 등 나머지 직원 3명에 대해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아리셀 법인은 벌금 8억원을 선고받았다. 아리셀 피해자 유족 법률 대리를 맡은 신하나 변호사는 항소심 판결 선고 직후 “이 정도 규모의 사건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하면 중처법이 왜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아리셀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게 될 예정이다.
[돋보기]
박중언 본부장 형량이 더 높은 이유는?
‘아리셀 사건’ 항소심에서 박순관 대표(징역 4년)의 형량이 박중언 총괄본부장(징역 7년)보다 낮게 나왔다. 부자 관계인 두 피고인의 1심 형량은 동일하게 징역 15년이었다. 본부장이 대표보다 더 무거운 형량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재판 과정에선 박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선 경영책임자를 사업 총괄책임자 또는 안전보건 업무책임자로 정하고 있다. 박 대표는 박 본부장에게 아리셀 경영 전반에 관한 경영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심과 2심 모두 박 대표가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아리셀은 박 대표가 운영하던 에스코넥의 리튬 전지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시킨 것이고 박 본부장을 박 대표에 준할 정도로 최종적 의사결정권한을 가진 안전보건 업무책임자로 선임하기로 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이나 내부적 의사결정, 안전보건업무 총괄체계 구축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아리셀이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박 대표는 대표이사 직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안전보건 업무에도 직접 관여했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박 본부장이 아리셀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해 왔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 본부장이)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근무할 환경을 구축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책임의 정도가 박 대표보다 무겁다”고 판시했다.
또한 “박 대표가 박 본부장에게 아리셀 업무 상당 부분을 맡긴 이유에는 경영상의 판단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나 파견법상 책임을 면탈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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