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인’ 쿠팡 김범석 의장에게 부과된 새 ‘미션’

송수진 2026. 5. 1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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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본사로 2월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들이닥쳤습니다.

조사관 4명이 나흘간 회사 곳곳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두나무 최대주주인 송치형 회장의 친인척이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지, 그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두나무는 재계 41위 대기업이고, 송 회장은 두나무의 지분 25.51%를 보유한 최대주주입니다.

만약 그의 친인척이 두나무의 경영권이나 지분 관계에 깊숙이 얽혀 있다면?

공정위는 송 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두나무는 송 회장이 아니라 법인인 두나무가 동일인으로 유지됐습니다.

송 회장의 처남이 근무 중이었는데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평사원이라는 게 공정위 판단입니다.

두나무 송치형 회장


■ 동일인이란?..."대기업을 지배하는 자"

동일인. 쉽게 말해 기업 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기준점'입니다.

동일인은 사람일 수도 있고, 법인일 수도 있는데, 사람이 지정되면 그 사람은 ‘총수’로 불립니다.

본래 회사는 주주와 이사회가 움직이는 공적인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우리 재계에선 여전히 사람을 정점으로 하는 전근대적 관리 방식이 태반입니다.

재계 10위까지 동일인을 볼까요. 포스코와 농협을 빼면, 모두 '사람'이 동일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대기업 집단이 시스템에 의한 경영보다 총수 1인의 지배력에 의존하는, 폐쇄적 거버넌스에서 못 벗어나고 있단 뜻입니다.

최근 공정위가 발표한 ‘동일인 지정 현황’.


1986년 도입된 이 제도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재벌들의 '피붙이 경영 서사'를 감시하겠단 겁니다.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형님과 삼촌이 핵심 계열사를 나눠 가지며 단 몇 %의 주식으로 그룹 전체를 호령하는 구태를 감독하겠단 취지입니다.

■ 지정되는 순간 "단 한 주도 보고해야"

동일인으로 사람이 지정되는 순간, 공정위의 더 촘촘한 감시망 안으로 들어갑니다.

특히 총수 일가 지분이 20%를 넘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다 걸리면, 징역형까지도 처해질 수 있습니다.

"동일인이 자연인인 기업집단은 친족 등 특수관계인 등이 발행주식의 20% 이상을 소유한 계열사 등과 거래해 친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해서는 안 된다.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공정거래법 제47조 1항-

그래서 공정위는 요구합니다. "동일인의 친인척 지분 내역을 낱낱이 보고하라"고.

동일인 4촌 이내 혈족, 3촌 이내 인척이 단 한 주라도 갖고 있다면, 빠짐없이 적어내야 합니다.

단 한 주의 주식이라도 친인척 사이에 얽혀 있다면, 사익 편취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숨은 친인척이 있다면? 족보를 뒤져서라도 찾아내야 합니다.

자료를 누락하거나 가짜로 내면, 검찰 고발까지 갈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등산복 '노스페이스'로 유명한 영원무역그룹 성기학 회장 사건이 있습니다.

성 회장은 2021년부터 3년간 무려 82개의 회사를 공정위 보고에서 빠뜨렸습니다.

명단에서 빠진 곳 중엔 딸과 남동생,친인척이 운영하며 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온 업체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습니다.

공정위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성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영원무역그룹 성기학 회장


■ 대기업 대관팀이 '홍삼' 돌렸던 사연

예전 대기업의 공정위 담당팀은 총수의 고향 어르신들을 찾아갔습니다.

홍삼 세트를 안겨드리며 이렇게 읍소하곤 했습니다.

"어르신, 제발 우리 조카 회사 주식은 한 주도 사지 마세요."

지분이 없다는 확인서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홍삼 같은 건 기본이고, 자그마한 그룹사를 떼어줘야 할 만큼 요구가 컸던 적도 있었던 걸로 안다"고 털어놨습니다.

지금은 총수의 4촌 혈족, 3촌 인척이 기본이지만, 원래 총수의 6촌까지 챙겨야 했습니다.


총수(동일인)의 사익 추구에 동원되거나, 위장 계열사의 명의 대여자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공정위 담당 직원들은 이름도 모르는 먼 친척의 주식 계좌를 쫓아 전국을 누볐습니다.

물론 '홍삼 작전'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부정확한 지분 내역 보고가 총수 사법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기에, 지속적인 친인척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나 현대차, LG 같은 곳들은 이미 친인척 관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새로 (동일인) 지정된 곳은 총수 친인척 찾고 관리한다고 말 그대로 '멘붕' 상태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공정위, 쿠팡 김범석 의장 정조준

공정위가 쿠팡 김범석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으로 최근 지정했습니다. '쿠팡 = 김 의장이 지배하는 회사'라고 규정한 겁니다.

김 의장의 남동생 김유석 씨가 경영에 깊숙이 관여 중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사장급으로, 보수가 등기임원 평균에 이르고 비서까지 배정된 핵심 경영진이었습니다.

김 의장이 미국인이고 쿠팡이 미국에 상장됐을지언정, 한국 대기업 특유의 '피붙이 경영'에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서 쿠팡은 더 강력한 규제망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시작으로, 김 의장은 4촌 이내 혈족과 3촌 이내 인척의 쿠팡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을 매년 공정위에 낱낱이 보고해야 합니다.

다른 대기업들이 그랬듯, 한국과 미국에 흩어져있는 김 의장 친인척들을 일일이 찾아내 "우리 주식을 사지 말아달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 쿠팡 "구시대적 규제, 행정소송 할 것"

미국식 사고방식에선 사생활 간섭이자 재산권 침해로 비칠 수 있습니다. 김 의장은 '낡은 족쇄'라 항변하고 싶을 겁니다.

미국 상장사로 글로벌 기준을 따르고 있는데, 한국 특유의 잣대로 발목을 잡는 건 가혹하단 겁니다.

쿠팡은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습니다.

쿠팡 관계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재벌도 아닌 우리가, 왜 이런 구시대적 규제의 타깃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쿠팡이 '우리를 왜 동일인 지정을 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닌다"면서 "내부적으로 관리가 강화될 게 예상되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고 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재계 22위 쿠팡 매출의 대부분은 한국 소비자들 주머니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정거래법은 속지주의를 따릅니다.

재계 일각에서 동일인 제도를 '갈라파고스 규제'로 비판할지언정, 쿠팡이 한국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이상 '운동장의 규칙'을 거부할 권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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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진 기자 (reporters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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