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반도체, 다른 성장…대만은 왜 AI 붐을 통째로 먹었나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선데이모닝인사이트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신주(대만)=AP/뉴시스]2021년 10월20일 대만 신주(新竹)의 대만 최대 반도체칩 제조회사 TSMC 본사에 회사 로고가 보이고 있다. 대만 법원은 27일 일본 컴퓨터 칩 장비 제조업체 도쿄 일렉트론의 전 직원에게 대만 최대 칩 제조업체 TSMC의 영업 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2026.04.27. /사진=유세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0/moneytoday/20260510060200689iifx.jpg)
같은 반도체 수혜국으로 분류되는 한국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뚜렷하다. 올해 1분기 기준 대만은 13.69% 성장한 반면 한국은 3.6% 성장에 그쳤다. 약 4분의 1 수준이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 기업 실적은 개선됐지만, 그 성과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폭과 경로는 달랐다.
소득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대만의 올해 1인당 GDP는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IMF는 2031년까지 대만과 한국의 1인당 GDP 격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 차이가 1만 달러 이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대만의 올해 1분기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1.1% 증가한 1957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대만 수출의 4분의 3 이상이 AI·고성능 컴퓨팅·클라우드 등 첨단 기술 품목에 집중돼 있다.
![[타이베이(대만)=AP/뉴시스]2024년 4월25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인공지능(AI) 엑스포 'AIVOLUTION'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모습. 대만 경제가 지난해 연간 8.6% 성장, 15년 만에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인공지능(AI) 열풍과 미국으로의 수출 급증으로 인해 수출 중심 산업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2026.01.30. /사진=유세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10/moneytoday/20260510060202046fvws.jpg)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실적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TSMC의 2026년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8.3% 급등한 5725억 대만달러(약 26조7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엔비디아, 애플,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쏟아붓는 거대 자본이 대만 경제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가는 구조가 확립됐다는 평가다.
세부 지표는 단순 수출 주도가 아닌 투자 주도형 성장의 특성을 보여준다. 1분기 실질 상품 및 서비스 수출이 35.25% 증가하는 동안, 수입 역시 자본설비 및 원자재 비축 수요가 반영되며 27.07% 늘어났다. 특히 자본설비 구매는 33.52%, 원자재 수입은 38.82% 급증했다. 기업들이 단기적인 수주 확대를 넘어 향후 생산량 증가를 전제로 선제적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대만의 경제 호황이 단순 외형 성장이 아닌 생산능력 확충을 동반한 우상향 국면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내수 흐름도 견조했다. 1분기 민간 최종 소비 기여도는 2024년 1분기 이후 최고치인 2.23%포인트를 기록했고, 내수 전체 기여도는 4.07%포인트로 집계됐다. DGBAS는 정부의 현금 지급 프로그램, 주식시장 랠리에 따른 자본 수익, 기업의 판촉 활동이 소비 심리 개선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수출 실적 호조가 고용 및 소득 증가, 금융 시장 심리 개선으로 이어져 내수 시장을 견인하는 선순환이 구축됐다.
대만의 고성장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핵심 변수는 특유의 산업 구조다. 대만은 반도체 생산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경쟁 우위를 바탕으로 AI 인프라 확대에 필요한 다수의 공정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대만의 총수출액은 전년 대비 34.9% 증가해 사상 최초로 6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정보통신 및 시청각 제품, 전자부품의 합산 수출액은 4740억 달러로 전년 대비 53.0% 급증하며 전체 수출의 74%를 차지했다. AI와 데이터센터 관련 수요가 대만 수출 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합의의 반대급부로 대만 기업들은 미국 내 2500억 달러 규모의 직접 투자를 약속했다. 대만 정부는 이와 별도로 2500억 달러의 신용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 합의를 계기로 TSMC는 애리조나주에 장기적으로 최대 12개 팹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당 관세 합의에는 대만 기업이 미국 내 공장 건설 기간 동안 생산능력의 최대 2.5배, 완공 후에는 1.5배 물량까지 무관세로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특혜가 포함됐다.
다만 1분기 13.69%라는 성장률을 모두 구조적 성장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관세 변화에 앞서 글로벌 기업들이 주문과 선적을 앞당긴 효과가 일부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DGBAS가 연초 제시했던 1분기 성장률 전망치인 3.46%와 실제 13.69% 사이의 막대한 오차는 관세 인상 전 선주문 물량이 집중된 데 따른 쏠림 현상으로 보인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관세 부과 불확실성이 커지자 글로벌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재고를 비축하는 밀어내기 수출 효과가 대만의 1분기 성장률을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미국 내 투자 계획도 장기 변수다. TSMC의 애리조나 투자는 대만 반도체 산업의 미국 이전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을 키우고 있다. 다만 미국 내 팹 건설은 높은 인건비, 인프라 제약, 인력 확보 문제를 동반한다. 단기간에 대만 내 첨단 제조 생태계가 미국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문제는 메모리 영역의 실적 개선이 국가 경제 전반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는 파급 경로가 좁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메모리 분야 경쟁력은 높지만, 비메모리,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 AI 서버 시스템 통합 분야에서는 대만만큼의 확장성을 발휘하기에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KCIF 국제금융센터는 한국이 메모리 강국으로서 HBM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에도 비메모리 부문의 낮은 점유율 탓에 단기간 내 대만과의 경제적 격차를 축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대만이 설계부터 제조, 후공정까지 비교적 균형 잡힌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AI 중심 공급망에 신속하게 적응했다고 본다. 반면 한국은 HBM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 급증에 따른 기업 수혜가 이어지더라도, 공급망 다변화와 생태계 확장 측면에서는 어려움이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첨단 칩 생산, 첨단 패키징, AI 서버 조립, 랙 통합까지 이어지는 폭넓은 생태계를 구축해 AI 투자 확대의 수혜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됐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칩, 애플의 M시리즈, AMD의 데이터센터 프로세서 등 AI 시대의 핵심 칩들이 모두 TSMC의 생산 역량에 의존하고 있다. TSMC가 최첨단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공정인 CoWoS를 담당하면 콴타컴퓨터, 페가트론, 위윈, 위스트론, 인벤텍, 폭스콘 등 대만계 서버·PC 조립 기업들이 AI 서버 수요를 흡수한다. PCB 기판, 쿨링 시스템, 전원공급장치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수혜를 받는다.
비메모리 공정, 첨단 패키징, AI 서버 시스템 구축 및 고객 맞춤형 생산 유연성을 포괄하는 산업 전략의 전면적인 개편이 요구된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을 장기간 육성해왔고, 정부와 민간이 비교적 일관된 산업 전략을 유지해왔다.
한국도 세제 지원, 전력·용수 인프라, 인력 양성, 첨단 패키징과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장기 과제로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AI 수혜가 반도체 기업 실적에만 머물지 않고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생태계 설계가 지금 한국에 가장 필요한 과제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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