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선 덮친 ‘한타바이러스’…세계 최초 원인 밝힌 한국인 과학자 재조명

박성원 선임기자 2026. 5. 1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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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왕 박사, 들쥐 3000마리 잡아 병원체 발견
예방 백신도 개발…노벨의학상 후보로도 거론
치명적인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MV 혼디우스(MV Hondius)' 우현으로 방호복을 착용한 의료진이 탄 구급정이 접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서양을 항해하던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에서 한타바이러스 집단 감염이 발생한 가운데, 고 이호왕 박사의 업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호왕 박사는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을 규명한 인물로, 당시 유엔군 병사 약 3200명이 고열과 신부전, 출혈 증상으로 쓰러졌다. 1·2차 세계대전에서도 군인 수천 명이 같은 증상으로 사망했으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정체불명의 괴질로 여겨졌다.

이 박사는 쥐가 병을 옮긴다는 점에 주목해 경기도 동두천 일대에서 들쥐를 채집하기 시작했다. 연구 과정에서 바이러스 감염 위험 등으로 연구원들이 포기를 고민하자, 이 박사는 치료비와 가족 생계 등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설득했다. 연구진이 채집한 등줄쥐는 약 3000마리에 달했다.

7년간의 연구 끝에 1976년 이 박사는 한탄강에서 채집한 등줄쥐의 폐 조직에서 병원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병원체는 발견 지역의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로 명명됐고, 이후 관련 바이러스군 전체를 지칭하는 학술용어 '한타바이러스'의 어원이 됐다.

1988년 말, 이 박사는 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 예방 백신을 개발했다. 백신의 효과 검증을 위해 이 박사와 연구진 7명은 직접 임상시험에 참여했고, 1990년 세계 최초의 유행성 출혈열 예방 백신 '한타박스'를 출시했다.

이호왕 박사의 업적은 한 명의 과학자가 새로운 병원체를 발견하고 예방 백신까지 개발한 사례로, 파스퇴르 이후 의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박사는 노벨의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된 바 있다. 생전 이 박사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그런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고려대 백신혁신센터 송진원 교수팀은 이 박사의 뒤를 이어 한타바이러스 백신 개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송 교수는 기존 백신이 개발된 지 35년이 넘은 만큼, 이를 최신화해 개량하는 과제가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