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싶죠

박주연 2026. 5. 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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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노동]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마늘

마늘(가명)은 부산 출신의 30대 초반 트랜스여성으로 현재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마늘은 ‘아이들’ 이야기할 때 “너무 귀엽다”는 말을 반복하며 웃었다. 지금 이렇게 교육계에 있지만, 여기까지의 과정은 바로 올 수 있는 직선의 길이 아니었다. 또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마늘은 ‘어쩌라고?’의 마인드로 삶을 살아갈 거라 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마늘은 당당하고 경쾌하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꿈이 있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언젠가 돌아봤을 때 나한테도 좋은 어른이 있었다’라고 생각되고 싶다는 마늘과의 즐거웠던 수다를 전한다.

▲ 마늘(가명)은 30대 초반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현재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교재를 들고 칠판 앞에서 찍은 마늘의 모습. (출처: 마늘)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로 언제 올라오게 된 거에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일단 사범대를 졸업했는데,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다니면서 커밍아웃하고 성별 정정도 했는데 학내 분위기가 좀 보수적이었거든요. 임용고시를 조금 준비하다 서울로 올라오게 됐죠. 굉장히 친한 친구가 수도권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도 이유였고, 당시 만나던 사람이 수도권에 있기도 했고요.

 

-대학을 다니면서 커밍아웃을 했다니,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대단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따돌림이나 놀림도 당했고 괴롭힘도 많이 겪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난 사실 명랑한 사람인데, 이렇게 쳐져서 지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학은 중·고등학교와 다르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나도 좀 다르게 살아보자’ 싶었어요.

마침 대학 내에 성소수자 동아리가 있었거든요. 그 때만 해도 나를 게이로 정체화하던 때였어요. 근데 동아리 활동하다 보니 다른 게이 친구들이랑 난 다르더라고요. 뭔가 결이 다르달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다운 게 뭘까, 내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을 깊게 가지게 됐어요. 그러면서 ‘난 내가 남자인 게 싫은 거구나’를 깨달았죠.

사실 날 바로 여성으로 정체화했다기 보다 ‘여자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정도의 느낌이긴 했어요. ‘나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게 맞나? 이게 완벽하게 나한테 맞는 걸까?’ 계속 생각하긴 했는데 이젠 익숙해진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여자가 꼭 어떠해야 한다’는 틀이 깨지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스스로도 불편하지 않게 돼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범대를 갔다고 하셨는데, 원래 꿈이 교사였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화장실에 갔다가 수업에 조금 늦은 적이 있어요. 그때 선생님이 엄청 뭐라고 하고 막 때렸거든요. 그게 너무 충격이어서 엄마한테 얘기하고 전학을 갔어요. 전학 가면서 그 선생님한테 메일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건 좋은 어른이 아니다” 이런 글을 써서 보냈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엄청난데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내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걸 빨리 눈치챘던 것 같아요. 그런 것 때문에 내가 공격 받을 때, 날 어떻게 지켜야할지 모르겠는데 도와줄 어른이 없었어요. 가족은 또 오히려 어렵고, 선생님이 날 도와줬음 좋겠다 생각했죠. 학창 시절에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고 했잖아요. 그 때 선생님은 알 거라 생각했어요. 알고 있지만 바쁘고 번거롭고 귀찮으니까 나를 모르는 채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기억이 있어서 ‘나는 좋은 선생님,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범대에 들어간 거죠.

▲ 마늘의 일터인 학원, 칠판에 쓰인 수업의 흔적들 (출처: 마늘)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임용고시는 왜 포기한 건가요?

처음 학교 들어갈 때만 해도 ‘예비 교사가 모이는 공간’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그래도 다른 집단에 비해서 인권감수성이라던가 사회에서 말하는 도덕과 윤리랄까, 사회적 교양이 좀 있을 거라고요. 아니 적어도 겉으로 체면치레는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지금은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제가 대학 들어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과격한 대학 문화가 있었어요. 신발에다 술 타서 마시라고 주고, 머리 박게 하고 그런 것들이요.

거기다 교내에서 아웃팅 사건도 일어났고, 날 은근히 무시하거나 소외시키려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이런 사람들이 예비 교사라니, 내가 이런 사람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니. 그건 못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생각보다 공부가 나랑 맞지 않더라고요.(웃음) 그것보다 활동이 더 재미있었어요. 집회 나가고 투쟁하는 일이요.

 

-그렇게 교사의 꿈을 접고, ‘플랜B’로 생각한 게 있었나요?

교사 못하겠다 싶으니까 학교 졸업하는 것도 의미 없겠다 싶었어요. 당시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기도 해서 휴학하고 일을 구했는데, 그게 콜센터에서 일하는 거였어요. 생각보다 그 일이 잘 맞더라고요. 일도 잘 했고, 눈치도 빨랐고요. 소위 ‘진상’ 처리도 잘 했어요.

 

-콜센터 일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성소수자로 살다 보니) 어떤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는 익숙하니까요.(웃음) 콜센터에 일하면서 필요한 가면을 하나 더 만들기만 하면 됐어요. 나한텐 그 일이 어렵지 않아서 재미있었고, 그냥 이런 일을 쭉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인생에 큰 목표는 없었거든요. 늘 괴롭힘을 당했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 수 없는 거면 30살까지만 버텨보다가 죽어야겠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큰 계획없이 일단 한달 벌어먹고 살자 정도로 했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도 굉장히 늦게 했고요.

 

-지금은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다고 했는데,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제 인생의 큰 변화와 굴곡엔 항상 사랑/연애가 껴 있어요.(웃음) 콜센터 일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 당시 만나던 사람과 동거 아닌 동거 중이라 지출이 점점 커지게 됐어요. 연애를 계속 하려면 돈이 좀 더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운 좋게도 교육 관련 회사에서 제안이 왔어요. 거기서 신규 강사를 많이 모집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진 자격증이 조건에 맞았던 거죠. 그렇게 교육 일을 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제가 아이들을 여전히 너무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중학생들이었는데, 그냥 너무 예쁘고 귀엽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그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학원을 차리게 되었고 거기서 같이 일하게 됐어요. 이제 만 2년 정도 됐네요.

 

-학원 일은 잘 맞아요? 가르치는 것 말고 학부모들과의 트러블 이런 문제도 있는 것 같던데 말이죠.

그쵸. 근데 콜센터에서도 일하고 상담 관련된 일도 하고 그래서 좀 단련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솔직히 말하는 편이에요. ‘우리가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하면 다른 학원 가셔도 된다. 그치만 아이의 문제는 다른 학원에 가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요.

▲ 가르치는 학생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출처: 마늘)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때요?

지금 시험 기간이거든요. 어제도 밤늦게까지 아이들 공부하는 거 봐줬어요. 나 늦게까지 안 자고 있을 테니까 혹시 문제 풀다가 질문 생기면 문자 보내라고 했고요. 지금 담당하는 학생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보고 있으니까, 서로 신뢰가 있는 편이죠. 아이들 보면 신기해요. 아무것도 몰랐었는데 이제 나한테 배워서 새로운 문제를 푼다는 게요. 마치 걸음마 못했던 아이가 걷는 걸 보는 것처럼요. 그래서 아이들 보고 있음 기분이 너무 좋고, 입에 뭐 하나라도 더 넣어주고 싶고 그래요.

아이들이 슬슬 사춘기도 오고 하는데, 또 조금 예의없이 군다거나 그럴 땐 따로 불러서 ‘그런 예의 없는 행동이고, 그런 건 어른한테 하는 거 아니다. 어른이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건 무례하다’고 알려줘요. 그럼 또 ‘죄송합니다’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예쁘게 보이죠.

 

-본인만의 교육 철학 같은 게 있다면요?

난 그냥 학원 강사이고 여긴 학원이긴 하지만, 아이들한테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 실패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봐요. 사실 제가 그걸 못 배웠거든요. 임용고시도 무서워서 도망갔잖아요. 실제로 해 봤으면 어땠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안 그랬음 좋겠어요. 시험을 잘 치든 못 치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 본 경험은 자신들의 삶에서 유용할 거라 생각해요.

 

-멋진 선생님이네요. 나도 마늘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음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의 내 모습도 되돌아 보게 되네요. 요즘 청소년들과 말이 통할까 싶거든요.(웃음)

저도 말이 잘 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고압적이지 않은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그들 또한 재미있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돼요. 전 학원 수업할 때 ‘스탠딩 코미디’ 공연한다 생각해요.(웃음) 아이들한테 조잘조잘 여러 이야기를 하죠. 그럼 ‘선생님 이상해요~~’ 이러거든요. 그럴 때 ‘이상한 게 뭐 어때~ 선생님은 열려 있어.’ 이런 말도 하죠. 언제든 궁금한 게 있음 물어보라고 하고. 연애 상담도 해줘요.

근데 누가 나한테 ‘좋은 선생님이냐’ 물어보면 그건 잘 모르겠어요. 엄청 뛰어난 선생님도 아니고요. 다만 최소한 노력은 하는 사람인 거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을 고립시키지 않는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이고요. 학원에서 개별 상담을 길게 하진 않지만, 학생들 보다 보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 있거든요. ‘부모님한테 하기 어려운 얘기 있음 나한테 와서 말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줄게.’라고 하죠.

자신들의 고민이나 어려움을 다 얘기하진 않을 수 있지만, ‘살면서 좋은 어른 한 명쯤은 있었다’는 게 언젠가 생각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위안이 될 수 있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다가 어느 학교에 성교육을 갔었는데, 거기서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물론 날 못 알아봤죠. 거긴 남자중학교였거든요. 그래서 설명을 하고, 사실 그 때 괴롭힘 당해서 힘들었다고 얘길 했어요.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솔직하게 ‘당시에 초임이었고, 정말 몰랐다. 뒤늦게나마 몰랐던 거에 미안하다, 사과한다’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이지만 그 말을 들으니,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구나 알게 돼서 좋았어요. 그 때 당시에 나한테도 좋은 어른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고요. 그래서 나는 아이들한테 ‘좋은 어른이 있었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앞으로 또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나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학원을 그만두게 되면 사회복지 쪽에서 일하면서 상담을 하고 싶거든요. 부산에 있을 때 성폭력상담소에서 잠깐 일했는데, 사실 일은 엄청 빡세긴 했어요. 그렇지만 보람이 있었거든요. 상담으로 찾아온 피해생존자에게 난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거나 덕분에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별거 아닌 일이 도움이 되는 세상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일을 조금 더 전문적으로 해 보고 싶어요. 더구나 그 일이 제 사주랑 잘 맞대요.(웃음)

가족들에게 커밍아웃하고 나서 아버지가 ‘사회에 이바지되는 인간이 돼라’는 얘길 하셨어요. 본인이 그런 걸 좀 하고 싶었는데 못한 거에 대한 마음이 좀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네가 이왕 (성별 정정도) 결정하고 네 삶을 개척했으니, 사회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대학 때 운동하면서 ‘넌 난년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웃음) 사회운동이나 활동 같은 게 잘 맞는 게 같아요.

지금은 가르치는 아이들 보는 게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얘네 고등학교는 보내야지 싶어서 일단 올해까진 이 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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