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부르는,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기타협주곡 [.txt]
같이 들을 클래식
호아킨 로드리고, 아랑후에스 협주곡 2악장
시력 장애 로드리고가 포기 않고 완성
2악장은 첫아이 잃은 상실감으로 그윽
보지 못한 것 보여주는 ‘마음’의 음악 세계

끅끅, 끅끅…. 맥이 뛰는 소리가 귀에서 울린다. 감기로 중이염을 앓았는데 돌발성 난청이 올 수도 있단다. ‘빠바바밤~~’ 청력을 잃은 베토벤의 ‘운명’의 리듬이 세차게 들려온다. 음악가에게 청력도 중요하지만, 구순을 바라보시는 나의 스승님은 유독 눈이 나빠지는 것 하나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신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며 눈을 감아 본다. (독수리 타법이다.) 오타가 꽤 나온다. 하물며 피아노 연주는 어떠랴. 피아니스트는 두 눈이 손가락 열 개만큼이나 중요하다.
촛불 아래서 음표를 그린 바흐와 헨델도 결국 눈에 문제가 생겼다. 작곡으로 혹사당한 눈들이 아우성을 치는 건 당연하다. 모파상은 한쪽 눈을 실명하고도 소설을 썼고, 눈을 섬세하게 사용한 화가 모네와 드가는 시력을 잃고도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비약적인 인상주의 화풍의 작품이 남게 된 일면이 있다.
티브이(TV)에서 힘차게 내뿜는 관악기의 팡파르! “람 빠바바밤 빠바바밤!” 마치 뉴스 속보처럼, 이 음악은 온 식구를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불러 모았다. 한국방송(KBS)의 ‘토요명화’ 시그널 음악. 아이들에게는 굿나이트 알람이었다. “애들은 자라.”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금관악기들이 포르테(f)로 외치는 “람 빠바바밤 빠바바밤!”은 마치 ‘다 모여봐, 모여봐!’ 하듯 시끄러우니 도무지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웬만한 카페인보다도 강력한 이 음악, 바로 그 유명한 ‘아랑후에스 협주곡’이긴 한데, 원곡과는 조금 다르다.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살랑살랑한 음색의 기타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가 휘감으며 기타를 클래식 무대로 이끈 명곡이다. 특히 2악장은 솔로 기타가 첫 시작에 나서서 아르페지오로 나지막한 신비로움을 전한다. 이윽고 들어오는 악기는 ‘토요명화’처럼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가 아니라, 기타 반주가 곁들여진 잉글리시 호른이다. 구슬픈 음색의 잉글리시 호른은 슬프지 않아도 슬프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토록 멜랑콜리한 선율은 그대로 심장에 새겨진다.
토요명화의 시그널은 이 협주곡의 2악장 11분 중 마지막 3분가량을 쓴 것으로, 약간의 편곡이 더해졌다. 그러니 토요명화 부분을 들으려면 8분대를 참고 지나야 한다. 기타 솔로가 화려한 테크닉을 과시하고 절정에 오르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된다. 내 경험으로는 2악장을 처음부터 들어야 비로소 토요명화의 감동과 추억이 더욱 거세게 밀려든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터져 나오는 울음처럼 말이다.
로드리고는 세 살 때 디프테리아로 시력을 거의 잃는다. 그럼에도 청년 시절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클래식을 공부한다.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는 못했지만 단념하지 않았다.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신혼 6년 차에 터뜨린 축포와도 같은 곡이다. 1939년, 파리에 머물던 로드리고는 아내와 함께 아랑후에스로 신혼여행을 갔던 추억을 기타와 오케스트라로 표현한다. 1악장과 3악장은 위풍당당했던 과거 스페인의 영광을 노래한다. 당시 내전으로 고통받던 스페인 국민의 아픔을 달래려는 듯. 이와 달리 2악장은 주로 목관 악기들이 나서며 ‘멜로’한 음색(그윽함)을 반복해 들려준다. 로드리고 부부가 첫아이를 잃고 황폐해진 마음을 담은 것이다.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프고, 또 가장 어려운 기타 협주곡은 이렇게 탄생한다. 그리고 9년 뒤, 로드리고는 시력을 완전히 잃는다.
기타와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이니 악보가 있어야 연주할 수 있다. 클래식에서 악보는 음악 그 자체다. 로드리고는 악보를 점자로 그렸다. 점자 악보(Braille, 브라유)를 본 적은 있지만 관심이 가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근래, 시각 장애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해설자로 함께하며 적잖이 놀랐다. 보통 시각 장애 연주자는 점자 악보를 사용하지만, 제작이 까다로워 구하기도 어렵단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으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구상이 스쳤다. 점자 악보를 읽는 기술도 따로 익혀야 한다. 음의 높이뿐 아니라, 길이, 세기, 또 각종 음악 기호까지 점으로 표시한다. 여럿이 합주하는 악보를 점자로 읽어내기란 너무나 복잡한 일이겠다. 결국 들으며 외운단다. 많이 들으면 저절로 외워지겠지만, 외워서 익힌 음악을 무대에서 연주해 내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외우다’의 영어 표현 중 ‘Learn by HEART’(런 바이 하트)가 있다. 완벽하게 외워서 마음에 새기는 것을 뜻한다.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들어서 외운 음악을 손으로 연주해낼 수 없다.
점자 악보는 100년 전, 루이 브라유가 열다섯 살에 만들었다. 그는 네 살에 시력을 잃은 시각 장애인이었다. 앞을 볼 수 없는 이가 앞을 못 보는 이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이후 그는 오르간도 연주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개막식, 선글라스를 쓴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를 열창한다. 그리고 “빈체로. 승리!” 그의 노래는 악보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앞을 못 보는 가수가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첼리는 열두 살에 시력을 잃었지만, 피아노를 연주하고 승마와 제트스키를 즐긴다. 그는 시력을 잃은 것이 음악을 향한 열정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시력과 인생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브라유의 어머니도, 보첼리의 어머니도 아들을 보통 아이와 똑같이 키웠다고 한다. 누구나 언제든 신체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앞이 잘 보인다 해도 다 보는 게 아니며, 앞을 못 본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보는 게 아니다. 결국 마음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봄’ 아닐까?
‘토요명화’의 추억은 넷플릭스 시대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쉽고 간절해야 소중한 법인데, 요즘은 뭐든 넘쳐나니 뭐든 아쉽지가 않다. 그 시절이 다 가버린 건 영 아쉽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빰 빠바바밤! ‘아랑후에스 협주곡’만 있으면 거뜬히 돌아갈 수 있다. 추억 속으로.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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