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할 땐 '비누향', 혼자있을 땐 '숲향'···향기, 매일 기분따라 바꿔 입는다

요즘 향수는 단순히 향기를 더하는 제품이 아니다. 과거에는 ‘어떤 향수를 쓰는지’가 취향을 설명하는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그날의 컨디션과 분위기에 따라 향을 바꾸는 ‘가변형 취향’에 가깝다.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향을 선택하고, 그 선택 자체가 하나의 태도가 된다. 향수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일상의 흐름에 맞춰 조정되는 선택지가 됐다.
완성된 향수보다 나만의 향수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한때 명품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향수 시장은 최근 약 600억달러(약 88조원) 수준까지 성장하며 뷰티 카테고리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하나의 향’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시그니처 향수를 정해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지금은 상황에 따라 향을 나누는 것이 기본값이 됐다. 출근할 때는 가볍고 깨끗한 향, 약속이 있는 날에는 존재감 있는 향, 혼자 있는 시간에는 잔향이 편안하게 남는 향을 고르는 식이다. 이 같은 변화는 제품 형태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디스커버리 키트와 10~30㎖ 트래블 사이즈, 미니어처 세트의 확산은 단순한 옵션 확대가 아니라 소비 방식의 변화에서 비롯된 결과다. 큰 용량 하나를 오래 사용하는 대신 작은 용량을 여러 개 두고 상황에 맞게 교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완성된 향수’라는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인 흐름이 레이어링이다. 서로 다른 향을 겹쳐 사용해 자신만의 조합을 만드는 방식이다. 니치 향수의 확산 역시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향보다 설명하기 어렵고 기억에 남는 향이 선택된다.
올해 트렌드 향은?
그렇다면 2026년 실제로 소비되는 향은 무엇일까. 업계가 공통으로 꼽는 키워드는 ‘강하지 않은 향’이다. 비누나 세탁물, 피부를 연상케 하는 클린 계열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숲과 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우디·그린 계열도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달콤한 구르망 계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과거처럼 강하게 드러나기보다는 절제된 형태로 변화했다. 전반적으로는 특정 계열이 도드라지기보다 여러 향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향이 중심이다.
젠더 구분 역시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남성용과 여성용이라는 구분은 점점 의미를 잃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중성적인 향이 기본값이 됐다. 향수 선택의 기준은 ‘누가 쓰는가’에서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생산 단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른바 ‘K퍼퓸’이 부상하면서 국내 화장품 ODM 기업들도 역할을 넓히는 모습이다. 한국콜마가 선보인 ‘서울 포레스트’ ‘태백 스프링’ ‘제주 브리즈’ 같은 향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특정 원료를 강조하기보다 ‘어떤 장소를 떠올리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설계다.
최근 내한한 프랑스 니치퍼퓸 하우스 오르메(ORMAIE)의 창업자 밥티스트는 “요즘 소비자들은 향이 좋은지를 넘어 이 향을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지까지 함께 따져본다”며 “앞으로의 향수는 취향을 넘어서 개인의 생활방식과 선택 기준을 드러내는 도구로 더 세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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