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하지 않는 지역 서사를 위하여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칼럼니스트]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쓴 '쇳돌'을 읽고 있다. 저자는 고모의 죽음을 기화로 자신의 출생지가 실제와는 달리 양양광업소가 있던 '강원 양양 장승리'로 되어있음을 발견하고, 광산노동자였던 가족을 포함해 지금은 폐광된 그 곳의 사람과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남의 가족사이자 생판 모르는 지역의 노동사인 '쇳돌'을 읽는 묘미 중 하나는 저자가 채굴하는 여성 서사다. 보통 광산하면 헤드랜턴을 착용한 탄광 속 남성 노동자를 떠올리지만, 여자들도 갱 밖에서 활발히 일했다. '국내 최대 자철 철광'이었던 양양광업소에서 여자들은 철분이 있는 쇳돌과 폐석을 구별해 골라내는 '선광부'로 일했다. 이는 지역의 여성들이 타 도시로 떠나지 않고 고향에 남아 살 수 있는 원천으로 기능했다.
'쇳돌' 이전, 내게 '여자 광부'의 존재를 알려준 것은 강원일보의 '광부엄마' 보도다. 2024년 4~6월 총 10회에 걸쳐 연재된 '광부엄마'는 태백 장성광업소와 삼척 도계광업소의 폐광을 앞두고 탄광촌의 여성 노동자인 선탄부를 재조명했다. 양양의 선광부가 쇳돌을 골라냈다면, 이들 탄광촌의 선탄부들은 석탄을 가려냈다. 선탄부들 가운데는 탄광에서 남편을 잃고 '광부 아내'에서 광부 일을 하는 '광부 엄마'가 된 케이스가 많다. 탄광촌에서 그들은 남성 탄광 노동자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한편 식모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다. 오랜 탄광 노동으로 많이들 진폐증을 앓지만, 남성 광부들에 비해 까다로운 산업재해 보상 기준 때문에 보상을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정직한 노동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그들에게 광부 일은 자부심이자 긍지다.
[관련기사 : 강원일보) 남편 앗아간 탄광… 삶의 터전이 되다 / 강원일보 유튜브) 광부엄마 선탄부 그날의 역사를 말하다]
'쇳돌'과 '광부엄마'에 등장하는 광업소들은 모두 폐광 절차를 밟았다. 결과적으로 이들 저작들은 '쇳돌'의 부제처럼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는 이들 광업소뿐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 자체의 사라짐을 뜻하는 '지역 소멸'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이고 있다. '지역 소멸'이라는 말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매번 주춤거리게 된다. '소멸'이라는 말이 주는 폭력성이 저어되면서도, 끝내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비수도권 지역이 처한 현실의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결국에 그 말을 내뱉어 놓고서는, 늘 이게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면면을 알리고, 사회적 소수가 된 지역 내에서도 소수의 자리를 점하는 이의 모습을 적극 그리는 것이 언제든 소멸되지 않는 언론의 길이기 때문이다.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한 이대학보의 '지방소년표류기'는 고령화된 지역에서 소수자가 된 청소년 이야기를 다룬다. 학업과 일자리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에서 수도권으로의 순유출을 견인하는 집단은 청년들, 그 가운데서도 여성들이다. 그러나 '지방소년표류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향에 계속 살고 싶은 청소년들이다.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있으며 지금껏 나를 키워온 곳, 산과 들이 있어 좋은 이 곳에 남고 싶다는 것이다.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는 정보현 기자 역시 전남 강진에서 서울로 대학을 왔지만 고향에 살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다. 서울살이를 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같은 읊조림이나, 집 떠나는 엄마의 차 안에서 외치는 “가기 싫어” 같은 토로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지방소년표류기'는 오랜 연원을 가진 여자들의 상경 서사이건만 더욱더 가속화되는 형편이며, 자의가 아닌 '어쩔 수 없는'의 상황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뜩이나 청소년들은 투표권이 없어 정치적 영향력을 끼치기 어려운 한편으로, '입시생 아니면 문제아'라는 어른들의 이분법적 분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관련기사 : 이대학보) 인구감소지역 청소년 10명 중 8명 “더 큰 지역으로 떠나고 싶어요” / 이대학보 유튜브) 서울이 기준이 된 사회, 아이들은 떠밀린다]

“강원일보가 더 빨리 오셨어야 했다.” 폐광을 두 달여 앞둔 시점, 경력 10여 년의 선탄부 손기애씨가 한 말이다. 한참 전에 와서 보도를 했다면,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한탄이다. 이는 '지역 소멸'이라는 말이 정말로 현실화되기 전에, 언론이 부지런히 지역의 사정과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전언이기도다. 이 중에서도 소외되기 쉬운 여성과 청소년, 장애인들 얘기는 더욱 그렇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최근 지방선거 후보들에게 지역 언론 강화를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에 관한 정책 협약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역 저널리즘 향상을 위한 정부광고 집행 지표 마련 등이 골자다. 이번 선거가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지역 언론들이 지역 밀착형 보도를 이어가는 공적 환경을 만드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수도권 주민들을 포함한 모든 독자들이 수도권 아닌 지역 서사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지역 소멸'의 문제는 결국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의 생존권과 '거주의 자유'를 포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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