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내치고 워시 택한 트럼프…美, 금리 인하로 선회할까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통화 완화 기대 커졌지만 물가·고용 현실에 속도조절 불가피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8년 만에 미국 중앙은행의 수장이 바뀐다. 5월15일 제롬 파월(Jerome Powell)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임기가 끝나고, 케빈 워시(Kevin Warsh)가 상원의 인준을 거쳐 새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월을 처음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파월은 2018년 2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임명됐고, 이후 2022년 바이든 행정부에서 연임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선택했던 연준 의장을 교체하기로 했다. 금리 인하를 강하게 요구해온 그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신중한 통화정책을 유지한 파월이 계속 충돌해 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출범 이후에도 연준은 노골적인 정치적 압박 속에서 금리를 세 차례 인하하는 데 그쳤다. 후임자인 워시는 결국 파월 체제에 대한 트럼프의 불만 위에서 등장한 인물이다. 실제로 워시는 그동안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다만 그는 상원 청문회에서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사전에 약속하도록 요구한 적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런 약속을 한 적도 없다"는 것이 워시의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시장은 워시가 파월보다는 정치적 압력에 상대적으로 순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통화정책 또한 완화적인 방향, 즉 더 빠른 금리 인하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금리 인하 쉽지 않은 미국 경제 현실
트럼프 정부가 비공개적으로 제시하는 적정선까지 금리를 낮추려면 현재 기준금리에서 최소 1%포인트는 인하해야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새 의장 취임만으로 연준의 정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우선 제도적인 제약이 있다. 연준은 개인이 아니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구성하는 이사 12명의 합의로 운영된다. 의장의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은 한 표를 가진 구성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임 파월 의장은 퇴임 직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해 의장직에서는 물러나더라도 이사직은 잔여 임기까지 채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파월의 이사 임기는 2028년 1월31일까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연준이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이라는 이중의 목표(dual mandate)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연준은 어떤 경우에도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이는 누가 의장이 되더라도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약한다.
현재 미국 경제는 금리 인하를 서두르기 어려운 조합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물가 측면에서 서비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주거비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3%대 중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가가 하락 추세에 들어섰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신호다.
여기에 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변수는 다시 부담 요인으로 부상했다. 지난 3월 기준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12% 이상 상승했다. 반면 고용시장은 여전히 견조하다. 실업률은 4.3%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년 대비 약 3.5% 상승하며 서비스 물가의 하방 경직성을 강화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물가는 충분히 안정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경기 둔화 신호가 뚜렷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릴 유인은 크지 않다. 결국 대통령의 압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제 현실이고, 그런 점에서 보면 시장 기대만큼 빠른 금리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합리적이다.
물론 워시 역시 금리 인하를 위한 명분 만들기에 나서고 있기는 하다. 연준의 첫 번째 개혁 과제로 제시한 새로운 인플레이션 지표 도입이 대표적이다. 워시는 현재 연준이 기준으로 삼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실제 체감 물가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해 왔다. 표면적으로는 통계를 개선한다는 논리지만, 결과적으로는 물가 지표 해석 방식을 바꿔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워시는 현재 연준 내부의 '만장일치' 문화도 비판했다. 모든 이사의 동의를 기다리기보다는 경우에 따라 다수결 방식의 의사결정도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는 곧 정책 결정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여전히 목표치인 2%를 넘는 인플레이션과 불확실한 성장 전망이라는 환경에서는 급격한 완화도, 반대로 급격한 긴축도 모두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결국 지금 수준의 금리를 상당 기간 유지하는 선택이 가장 안전한 시나리오에 가까워 보인다.
워시 체제의 진짜 변수는 대차대조표
워시 체제의 연준이 지금의 연준과 가장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오히려 기준금리가 아닌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다. 파월 시대 연준의 자산 규모는 팬데믹 이전 4조 달러에서 2022년 한때 9조 달러까지 급증했다. 그러나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인플레이션을 불렀고, 결국 연준은 빠른 속도로 다시 금리를 올려야 했다.
워시는 이 과정을 강하게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는 청문회에서도 연준이 장기 자산을 과도하게 보유하며 사실상 재정 당국처럼 기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역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약 6조7000억 달러 규모의 연준 자산은 대부분 장기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으로 구성돼 있다. 연준이 본격적으로 장기 채권을 축소하기 시작하면 시장 충격은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것보다 더 클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의 재정 적자가 사상 최대 규모인 상황에서 연준까지 장기 국채를 매각하기 시작하면 장기 국채 금리는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채권 매각 규모가 커지면 그 규모에 따라 장기 금리는 오히려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장기 금리의 상승은 곧바로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게 된다. 트럼프가 지난 1월 새 연준 의장 후보로 워시를 선택했다고 발표했던 당시 금융시장이 일시적으로 흔들렸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청문회에서 나온 "대통령의 꼭두각시(Sock Puppet)가 될 것이냐"는 질문에 워시는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다. 금리 인하를 바라는 트럼프의 선택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워시는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 가운데 비교적 '안전한 선택'으로 평가됐다. 변호사 출신이지만 월가 경험이 풍부하고, 이미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연준 이사를 지낸 경력도 있다. 연준 이사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워시는 일관되게 방만한 통화정책을 비판하며 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하는 입장에 가까웠다.
실제 청문회 발언 역시 예상보다 온건하고 실용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자산 축소 역시 급진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며, 금리 인하 시기와 폭도 결국 경제 상황에 따라 조정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워시 체제의 연준 역시 트럼프의 금리 인하 압박과 전쟁 이후 달라진 경제 현실 사이에서 딜레마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현실이라면, 전쟁으로 달라진 미국의 경제 상황도 현실이다. 워시의 연준이 지금의 연준과 같지는 않을 것이고 일정한 변화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 속도나 폭은 현실의 제약 속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초만 해도 시장에서는 하반기에 두 차례 정도의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의 실현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고 있지 않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