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자 갈아치운다”는 추남…성적 매력의 이유는 돈이었다? [히코노미]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6. 5. 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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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썩은 딸기를 그대로 박아놓은 듯한 보라빛 코, 거대한 키, 우악스러운 표정까지. 보기만 해도 얼굴이 찌푸려졌기 때문이었다. 부풀어 오른 코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꺼져”라고 고함치는 그악스러운 성격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저도 모건과 함께 하고 싶어요.” 마네의 ‘나나’. 1877년 작품.
그럼에도 그의 곁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미남도, 미녀도 모두 그의 눈에 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의 재산이 무궁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웃게 할 수록, 거액의 돈이 떨어졌다. 그의 침대에는 시대의 미녀들이 나체로 그를 맞았다.

모든 것을 제 것으로, 자기만의 질서로 만들겠다는 탐욕으로 그는 몸이 달아 올랐다. 그 열기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했다. 문학적 수사로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사내의 이름은 J.P. 모건. 금융의 질서를 새로 사운 사람이었으니까.

J.P. 모건 초상화.
금융가의 옥동자, J.P. 모건
J.P. 모건은 1837년 온실 속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 커네티컷의 유명한 금융가 주니어스 스펜서였다. 3대째 지역을 주름잡던 금융인 집안이었다. 모건은 자수성가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과제는 이미 성가(成家)한 가문을 사수하는 것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온실은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였고, 모건은 그 질서의 미학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부(富)는 언제나 질서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그는 적고 다시 적었다.
“아들아, 무질서를 바로잡거라. 돈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이다.” J.P. 모건의 아버지 주니어스 스펜서.
아버지 스펜서는 아들 모건을 스위스로 유학보냈다.유럽의 선진 금융 기법을 배우길 원해서였다. 미국은 부흥하는 나라였지만, 아직 금융 질서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나라였다. 유럽에서 배워 온 지식은 미국에서 요긴하게 쓰일 것이었다. 그 요긴함으로, 모건의 가문은 더 위로 도약할 것이었다.

모건은 스위스 벨리브와 독일 괴팅겐에서 수학했다. 그가 질서를 가장 중요시했던 인물이었으므로, 계산과 논리로 이뤄진 ‘수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수치를 다루는 본능적인 감각에, 유럽의 교수들은 자주 놀랐다. 학문의 세계에서, 금융의 세계로 나아갈 때도 그는 이물감을 느끼지 않았다. 학문이나 금융이나 모두가 논리와 질서의 세계로 이뤄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금융으로 이름난 19세기 제네바.
무질서에서 돈을 벌다
그가 유학을 마치고 그에게 처음 날아온 건 ‘입대 통지서’였다. 극심한 무질서인 남북전쟁으로 휩쓸려갈 위기 앞에서 그는 의연했다. 300달러를 주고 청년을 한 명 사서, 군대에 대신 보냈다. 온실에서 황야로 나아갈 생각이 그에게는 추호도 없었다.

모건은 이 혼란 속에서도 돈냄새를 맡았다. 남부와의 전쟁에서 무기가 절실한 북군. 그러나 병기 창에는 낡은 소총 뿐이었다. 총열과 방아쇠에 녹이 슬었고, 개머리판의 나무는 갈라져 있었다. 전장에서 방아쇠를 당겼다가는 오발탄이 터져 나갈 게분명했다.

모건은 사기꾼 아서 이스트먼과 사이먼 스티븐스와 손 잡고 이 총 5000정을 사들였다. 한 정당 3.5 달러 값을 치렀다. “못 쓰는 총 사요”라는 말에 군부는 “쓰레기도 처리하고 돈도 벌었다”면서 좋다고 팔아버렸다.

“야 이거 새총도 아니고 뭐 이래.” 미국 남북전쟁을 묘사한, 화가 투레 드 틀스트럽의 작품.
아서 이스트먼은 모건의 돈으로 인부 몇을 부렸다. 개머리판을 새 나무로 바꾸고, 총열에 기름칠을 하기 위해서였다. 새 총인 듯 번듯해 보였으나, 약실은 헐겁고, 그 헐거움 사이로 화약이 새어나올만큼 조악한 무기였다. 북군은 한 정당 22달러를 주고 다시 사들였다. 찰나에 7배를 벌어들이는 수완. ‘홀 카빈 사건’이었다. 모건은 전쟁이라는 무질서에서 돈을 뽑아내는 법을 알았다. 애국이란 돈 앞에서 너무나 유치한 것이었다.

이 무렵 코가 문드러지고 그 위에 돌기가 죽순처럼 돋아났다. 얼굴이 흉물스러워질 수록, 그는 미인의 육체로부터 이를 치유받는 것처럼 행동했다. 아내의 눈을 피해 요트를 띄워 그 위에서 전국에 이름난 미녀들과 놀아났다.

“글쎄 저 아래, 젠슨황 아니 모건이 있대.” 제임스 티소의 ‘배 위의 무도회’.
철도에 거품이 끼다
전쟁은 재건이라는 산업을 잉태한다는 메커니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이는 모건이었다. 철도가 놓이고, 마천루가 올라가는 미국의 청사진이 그의 집무실에 놓여 있었다. 오늘날 인공지능(AI)에 돈이 몰리듯, 철도에 천문학적인 돈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는 섣불리 철도에 돈을 대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어중이떠중이가 몰려들어 시장이 점점 혼탁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전역에는 철도가 깔렸는데, 사람과 물자가 철마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미국인 모두를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사업가들은 투자자를 찾아가 철도 사업이 돈이 된다며 구슬렸고, 투자자들은 사업 계획서에 그려진 기차만 보고, 거액을 내어줬다. 무질서가 철도에 서리 내리고 있었다. 서리는 철도라는 꽃을 죽일 것이었다.

“데이터센터? 우린 땐 철도가 1황이었지...” 1869년 5월 유타주 대륙횡단철도.
너무나 많은 철도 회사가 벌여놓은 무질서를 모건은 견디기 어려워했다. 난개발과 과잉경쟁으로 철도 회사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갈 때마다, 그가 이 회사들을 하나 둘 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카오스(혼돈)는 죽음을 비료삼아 코스모스(질서)로 꽃 피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건은 전 사업의 역량을 철도 사업에 퍼부었다. 돈이 모자르자,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서 ‘아메리칸 레일즈’라는 분야를 만든 것도 모건이었다. 영국에 돈 좀 굴린다는 양반들은 철도는 몰라도, 모건이라는 이름은 알았으므로, 투자에 서슴지 않았다. 철도 회사 간판 한켠에 하나 둘 ‘모건’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미국 전체 철도의 3분의 1 이상이 모건의 영향력에 놓였다. 이제 질서를 부여할 시간. 노선이 통폐합 되고, 운임이 표준화됐다. 마침내 미국 철도에 질서가 놓이기 시작했다. 철도를 개발한 건 모건이 아니었으나, 이를 산업으로 꽃 피운 건 모건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모거나이제이션’(Morganization)이라고 불렀다.

뉴저지 철도 회사 채권 뒷면에 J.P.모건이 새겨져 있다.
금융을 실로 삼아 미국의 경제를 짜다
금융을 줄기 삼아 무질서하게 퍼져 있는 회사들을 보배로 엮는 일을 모건은 천직으로 여겼다. 그의 눈에 철강 산업이 들어왔다. 앤드류 카네기가 지배하는 철강 산업에서, 모건은 여전히 무질서의 악취를 느꼈다. 카네기가 물량 밀어내기로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철강 가격이 요동을 쳤기 때문이었다.

쌀 가격이 요동치면 민심이 흉흉하듯, ‘산업의 쌀’인 철강 가격의 급격한 변동성은 기업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힘이라면, 미국의 철강을 세계 최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단전에서 솟아올랐다.

모건은 천박한 무질서를 정리하고 싶어서, 앤드류 카네기를 만났다. 그는 종이를 한 장 꺼넸다. ‘4억 8000만 달러’. 카네기의 철강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카네기는 미련 없이 모건의 손을 잡았다. 미국 경제사상 가장 위대한 인수합병이었다.

“자 이제, 미국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겠지.” J.P. 모건.
모건은 철강 산업이라는 난장을 정리했다. 카네기라는 거인을 사로잡은 뒤에는 고만고만한 조무래기 철강사들도 모두 사들였다. 이를 하나로 묶어 철강 회사를 통합 출범 시켰다. ‘U.S. 스틸’이었다. 모건은 철강 가격에 질서를 부여했다. 호황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 불황에도 가격을 후려치지 않았다. 예측 가능성이야말로 산업의 가장 큰 불쏘시개가 된다는 걸 알아서였다. U.S 스틸은 그렇게 미국 전체 철강 생산량에 66%를 틀어쥐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10억 달러 기업가치를 달성한 회사였다.

1901년 출범 당시 2150만 톤의 철강은, 1939년 7160만톤으로 폭발했다. 이 쇳물은 뉴욕과 시카고의 마천루로, 서부로 뻗어나가는 증기기관차로, 도시를 잇는 교량으로 솟아 올랐다.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쇳물을 뽑아낸 이가 J.P. 모건이었다.

“자 이게 다 너희들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J.P. 모건 풍자화.
공황 해결사로 나선 구원투수
그에게 마지막 무질서가 찾아왔다. 1907년 구리 회사 유나이티드 코퍼 컴퍼니 주가가 폭락했다. 투자했던 은행들도 덩달아 무너졌다. 은행에 돈을 맡긴 시민들이 “내 돈 내놔”라 아우성쳤다. 은행은 문을 굳게 닫았다. 뉴욕의 대형 금융사인 니커보커 신탁회사도 무너졌다. 자본주의의 혈관인 은행이 무너지자, 미국은 발작을 일으켰다. 1907년 금융 공황이었다.
“내 주식 돌려내~~” 1907년 공황 당시 월스트리트.
공황이라는 큰 불이 났는데 ‘중앙은행’이라는 소방수는 공석이었다. 미국은 주(States)의 연합(United)이어서, ‘중앙은행’ 제도에 학을 뗐다. 두 차례 한시적으로 중앙은행을 운행한 뒤 더 이상 연장하지 않았다. 중앙은행이라는 유럽적인 제도가 없어서 미국의 경제는 더 없이 굳건하다는 게 미국 지도층의 생각이었다.

중앙은행은 없었지만, 누군가는 이 급한 불을 꺼야 했다. 생산량은 11%, 수입은 26% 감소했고, 실업률은 3% 미만에서 8%로 급등했다. 은행이 무너지고, 그 불길이 시민들을 먹어 치우고 있는데, 하늘만 쳐다볼 순 없는 것이다. 모두가 하늘 대신 한 사람을 쳐다봤다. 무질서를 혐오하는 남자, 미국의 경제 대통령. J.P. 모건이었다.

“거 참 내가 막눈으로 투자하지 말랬지?” 자신의 사진을 맘대로 찍는 기자에게 화를 내는 J.P. 모건.
미국의 마지막 민간 경제 영웅
1907년 10월 19일. 모건이 미국 최고의 부자들을 월스트리트 집무실로 불러 모았다. 재무부 장관 조지 부르스 코텔유도 버선발로 달려왔다. 내셔널 시티 은행의 총재인 제임스 스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은행과 회사에 거액의 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자 그냥 너는 손만 얹고 있어.” 미국 경제를 주무르는 J.P.모건 풍자화.
미국 경제의 거인들이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도 비로소 안도했다. 한 달 후 공황이 끝났다.

한 민간인에 의해 나라 경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참담했는지. 미국 정부는 연방준비법 (Federal Reserve Act)으로 중앙은행 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위기의 소방수가 다시 국가의 공으로 넘어갔다. 미국을 금융 위기에서 구한 마지막 민간 영웅. J.P. 모건.

미국의 경제 거인 J.P.모건.
<네줄요약>

ㅇ금융의 왕 J.P. 모건은 온실 속에서 자라나 ‘질서’의 미학을 느끼고 있었다.

ㅇ스위스에서 유학한 뒤부터 그는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ㅇ무질서하게 투자되던 철도와 철강에서 회사들을 인수해 산업을 정리한 것도 모건이었다.

ㅇ공황이 왔을 때 모건은 미국 최고의 부자들과 함께 자금을 투입해 위기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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