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 상냥으론 부족해요”…‘체력 전형’ 승무원 뽑는 항공사 있다는데[르포]

안서진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seojin@mk.co.kr) 2026. 5. 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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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보다 안전”…이스타항공 체력 전형 체험해보니
노이로제 부르는 ‘삑’ 소리…지옥의 셔틀런
이스타항공의 객실 승무원 체력 시험 중 하나인 오래달리기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 [안서진 기자]
“띠링~!”

무심하게 울리는 기계음에 맞춰 20m 트랙을 왕복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셔틀런’이라 불리는 왕복 오래달리기. 이스타항공이 올해 3월부터 새롭게 도입한 객실 승무원 체력 시험의 마지막 관문이다.

여자는 25회, 남자는 40회라는 기준치를 채워야 합격이다. “‘띠링’하는 알림 소리가 나기 전까지 반대편 선을 통과해야 한다”는 이스타항공 사무장의 주의사항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옥의 질주가 시작됐다.

처음 몇 번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고 점점 짧아지는 신호음 간격은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나중에는 어떻게 뛰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발을 굴러야 했다. 완주 후 바닥에 주저앉은 기자에게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면접 점수가 좋아도 탈락”이라며 엄격한 기준을 강조했다.

악력 테스트부터 데시벨 측정까지…“하나라도 통과 못하면 탈락”
이스타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시행 중인 체력 시험과 돌발 상황에 대비한 상황 대처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안서진 기자]
지난 7일 서울 강서구의 한 체육관에서 이스타항공의 객실 승무원 채용 전형을 직접 체험했다.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시행 중인 체력 시험과 돌발 상황에 대비한 상황 대처 면접이 이날의 주요 일정이었다.
비교적 쉬웠던 암리치 테스트. [안서진 기자]
체험의 시작은 암리치(Arm Reach)였다. 기내 위급 상황에서 구급장비나 소화기 등이 있는 오버 헤드빈에 팔을 뻗어 필요한 물품을 꺼낼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다.

뒤꿈치를 들고 한 손을 머리 위로 최대한 뻗어 기준선에 닿는 이 테스트는 다소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신발을 신고 까치발도 허용된다”는 교관의 설명에 가볍게 손을 뻗어 기준선을 넘겼다.

평형성 테스트를 진행중인 모습. [안서진 기자]
하지만 곧이어 진행된 평형성 테스트에서 그 자만심은 산산조각 났다. 단순히 눈을 감는 수준이 아니라 안대로 시야를 완전히 차단한 채 한 발로 버텨야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은 갈대처럼 휘청였다. 난기류(터뷸런스) 상황에서 기내 중심을 잡고 승객을 보호해야 하는 승무원에게 평형성이 왜 필수인지 뼈저리게 느낀 대목이었다.
악력 테스트를 진행중인 모습. [안서진 기자]
이어지는 악력과 배근력 측정 역시 단순한 서비스 역량보다는 비상 상황 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구조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비상구를 개방하고 거동이 불편한 승객을 부축해 탈출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근력이 필수다. 3초간 온 힘을 다해 측정기를 당기자 팔다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가장 이색적이었던 전형은 데시벨(dB) 측정이었다. “발목 잡아! 머리 숙여! 자세 낮춰!”라는 구호를 외치자 측정기에 100데시벨이 넘는 수치가 찍혔다. 패닉에 빠진 승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큰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나니 목이 칼칼해지는듯했다.

이러한 체력 검정 항목 중 단 하나라도 기준치를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리 면접 점수가 훌륭해도 가차 없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정답 없는 세대 갈등…현장 순발력 가리는 ‘상황 대처 면접’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이스타항공 본사에서 객실 승무원 채용 전형 중 하나인 상황대처면접을 체험하고 있다. [이스타항공]
체력 시험으로 녹초가 된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황 대처 면접’이었다. 이 전형은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준비된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걸러내기 위해 이스타항공이 공을 들인 전형 중 하나다.

이날 제시된 그룹 미션의 주제는 흥미로우면서도 까다로웠다. ‘메신저 소통과 칼퇴근을 선호하는 20대 신입’과 ‘대면 보고와 잦은 회식을 고집하는 50대 부장’ 사이의 세대 갈등 해결책을 도출하는 과제였다. 단순히 “서로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은 통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각자 팀원이 되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하이브리드 소통 방식, 인사팀 주관의 조직 문화 개선 캠페인 등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면접관들은 토론 과정에서의 협업 능력, 유연한 사고, 예상치 못한 돌발 질문에 대처하는 순발력을 면밀히 관찰했다.

강태영 이스타항공 인사팀장은 “객실 승무원은 좁은 기내에서 다양한 세대의 동료와 협업해야 하므로 갈등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판단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스타항공은 노선 확대에 대응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채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50명 규모의 신입 객실승무원 공개 채용을 시행했다. 지원자들은 서류 평가 → 상황 대처 면접 → 체력 시험 및 임원 면접 → 채용 검진의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

이선희 이스타항공 객실승무운영팀장은 “체력 시험을 거쳐 입사한 승무원들은 확실히 이전 지원자들보다 실제 비행 현장에서의 평가가 더 좋다는 반응이 많다”며 “객실 승무원의 업무는 단순히 정량적인 평가로만 재단할 수 없는 정성적인 영역이 크지만 탄탄한 체력이 뒷받침됐을 때 비상 상황 대응은 물론 일상적인 서비스의 질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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