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집에서 죽어도 괜찮습니다” 日 재택 임종 명의의 충언
말기암 완화 케어, 신체적 고통 거의 없어
꽃도 심고 튀김도 먹고, 마지막까지 일상 영위
어떻게 죽고 싶은지 건강할 때 물어야

“이제 자도 괜찮아요. 안심하세요. 이제 무서울 거 없잖아요. 하고 싶은 거 다 했잖아요. 좋은 인생을 살았어요.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생이었어요. 부인께 고맙다고 얘기하셨어요? 말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는 힘겹게 가족들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건넨다.
“1941년생 모지츠키 도시오 할아버지는 2024년 7월 12일 생을 마쳤습니다.”
의사는 사망진단서를 쓰고 그 자리에서 인생 졸업식이 열린다. 가족 중에 가장 어린 소년이 대표로 앞에 선다. “생명이 끝까지 살아 나가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입니다. 여러분도 할아버지 이상으로 그 유전자를 이어받아 독창적이고 당당하게 살아 주세요.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이 인생 졸업장을 받아주세요.”
고인을 보낸 가족들의 얼굴은 ‘잘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상기되어 있다. 고통과 오열 대신 웃음과 긍지가 가득한 자리. 마지막을 보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죽음의 질’이 달라졌다.
일본의 재택 임종 현장을 밀도 높게 그린 다큐멘터리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한 장면이다. 영화의 배경이자 일본에서 재택 의료가 맨 먼저 도입된 곳, 야마나시현에는 5천 여명의 환자 곁을 지킨 호스피스 의사 나이토 이즈미 선생이 산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이 방문 진료와 가정형 호스피스 제도를 정착시킨 데는, 30년째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임종을 지킨 그녀의 활약이 크다.
나이토 선생이 쓴 책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에는 21명의 다채로운 재택 임종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병원이 아닌 익숙한 냄새와 온기가 남아 있는 집에서 마지막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 첫 장 아이카와 씨의 죽음부터 포복절도할 장면이 등장한다.
숨이 멎어가던 아이카와 씨는 딸이 거즈로 입술만 적셔주려던 ‘마지막 술’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바람에 갑자기 눈을 뜬다. “어떻게 돌아오신 거예요? 동공도 벌어지기 시작했잖아요. 그러면 제 판단이 무의미해지잖아요. 정말… 아이카와 씨."
엉겁결에 다그치는 의사, 이미 스님을 불렀다고 난처해하는 딸, 상복을 챙겨 먼 곳에서 찾아왔다가 귀신 본 듯 겁에 질린 친구들에게 환자는 “미안하게 됐네”라며 상황을 설명한다. “큰 강이 흐르고 있고 배가 정박해 있었어. 그런데 어디선가 술 냄새가 훅 끼쳤지. ‘잘 됐군. 한잔하고 다시 오자’라고 생각한 순간, 누워 있던 방의 천장이 보이기 시작했어.”
의사는 그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준다, “참나! 술 마시러 돌아오신 거네요!?”
멀리 후지산을 배경으로 논둑길을 가르며 달려오는 모습만으로도 안도가 되는 재택 호스피스 의사,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의 나이토 이즈미 선생을 인터뷰했다. 그녀의 진료소에는 그 흔한 컴퓨터도 없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대신 환자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기 위해서다. 오전 진료를 끝내면 자전거 페달을 밟아 환자들 곁으로 간다.
나이토 선생에 따르면 죽음을 목전에 두면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못 해본 꿈을 이루겠다’는 극적인 소망 대신 단지 조금 더 평화로운 시간을 갖기를 원한다고 한다. 야마나시현에는 현재 70%의 사람들이 집에서 죽는다.

-선생님이 계신 야마나시현은 축복받은 곳입니다. ‘나도 저곳에서 저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일본에서는 이런 일상이 흔한 일인가요?
“베이비붐 세대가 나이를 먹기 시작하는 2000년 무렵부터 변화가 일어났어요. 국가 주도로 안정기를 집에서 보내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동네마다 24시간 돌아가는 방문 간호사 스테이션, 재택 지원 진료소가 생기기 시작했고, 케어 매니저 등의 시스템이 보험과 연동됐어요.
오랫동안 말기 암 환자를 왕진해 온 제 경험으로 보면 의료적으로 병원과 집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웬만한 통증 케어는 모르핀 등을 사용해서 집에서 가능해요. 산소도 투여할 수 있고, 복막투석도 가능해져서 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수술이나 큰 검사 정도죠. 무엇보다 의사로서 저는 늘 마지막을 앞둔 환자들이 무엇을 희망하는지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해요.”

-선생께서 하시는 역할, 죽는 것을 돕는다는 건 어떤 일인가요?
“죽는다는 것은 모든 기능이 천천히 멈춰 가는 과정입니다. 죽어갈 때 불필요한 에너지, 수분, 영양을 인공적으로 몸에 넣으면 몸은 매우 괴롭습니다. 얼굴이 붓거나 심장에 부담이 되고 복수가 차고 그 물을 또 링거로 빼내기에 고통은 더 커져요.
제가 하는 일은 의료의 시간이 어디까지인지,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판단해서 본인이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멈춰가도록 돕는 일이죠. 중요한 건 완화 케어예요. 고통을 경감시켜 드리면 일상과 관계를 존엄하게 유지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평안하게 소진시킬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위엄 있고 아름다워요.”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에도 아름다움이 있습니까?
“그럼요. 생명은 매우 역동적이에요. 불꽃 같은 에너지죠. 아기가 태어날 때의 에너지, 그리고 노인이 떠나갈 때의 에너지… 모두 다 차이 없이 역동적입니다. 똑같은 생명의 흐름이기에 그렇죠. 믿기 어렵겠지만 몸이 허약해도 품은 에너지는 똑같습니다. 사그라드는 불도 열기는 뜨겁잖아요.
그걸 모르면 환자나 노인을 보고 ‘불쌍하다, 가엾다’라고 하지요. 하지만 내면의 에너지는 죽기 직전까지 타오른 다음 긴 여행을 떠납니다. 저는 그렇게 에너지를 태우는 일을 돕습니다. 그러려면 열심히 그 사람을 지켜보아야 한답니다.”
임종에 이르면 자연스럽고 다양한 본심이 드러난다고 했다. 젊은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 햇살 냄새 밴 가족의 빨래를 개고 싶어 했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양옆에서 손을 잡고 남편은 발치에서 잠들었다. ‘죽고 싶지 않다’고 ‘보낼 수 없다’고 절규하는 마음이 지나가면 한 걸음 물러나 ‘내가 없어도 잘 살 거야’ ‘이제 괜찮아’라며 서로를 믿는 순간이 찾아온다.
달라진 환자의 모습에 놀라서 안색이 변하는 지인들과는 달리, 가족은 곁을 지켰기에 사랑과 의연함이 더 깊어진다고. 어디서 죽을지 내가 선택하고 그 결정이 받아들여진 순간부터, 짧지만 불꽃 같은 인생이 시작된다고 했다.

-죽음이 코앞에 닥친 상황임에도 일상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책에서 임종 직전 동공이 풀려가던 아이카와 씨가 따님이 거즈에 적셔 준 술을 입에 대고 갑자기 의식을 되찾아 “미안하게 됐네”라고 쑥스러운 듯 말한 에피소드는 동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상복 입고 온 친구들에게 술 한 잔씩 대접하며 잔치판이 벌어졌다지요.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생명에는 기쁨이 함께해요. 죽음도 생명 현상이기에 웃어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 것, 그것이 유머라고 상지대학교의 알퐁스 데켄 신부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술 에피소드는 확실히 조금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조용히 바라보며 귀 기울이면, 작은 ‘기적’은 꽤 자주 일어납니다.”
-놀랍게도 선생이 배웅한 분들은 무척 평온해 보이더군요.
“저는 5,000명 이상의 환자의 곁을 지켰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인간은 인생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 행복인가?”에 대한 자각이죠. 매일 아침 햇살에 인사하는 기쁨, 물 한 잔의 맛, 암 투병 중임에도 통증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것들…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고맙다’는 마음이 넘쳐납니다.
가족 간의 응어리, 걱정거리, 풀지 못한 오해도 있지만, 그 부분도 털어낼 수 있도록 도와드려요. 무엇보다 의사인 제가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기에, 말기 암 환자분들도 평안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통증이 없기에 마지막도 평화로울 수 있겠지요?
“통증(특히 암 통증)은 매우 처절합니다.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24시간 내내 토하고 잠도 못 자던 홋타 씨는 통증 때문에 사랑하는 딸과도 사이가 서먹해졌어요. “엄마, 요즘 부츠가 유행인데 사도 돼?” “아파서 쓸데없는 얘기 못 들어 줘.” “내일 시험인데 가르쳐 줄래?” “그럴 정신 없어. 돌아가.” 이런 식으로 고통은 인격과 관계를 파괴합니다.
완화 병동으로 옮기자 홋타 씨도 엄마로서 자신의 존엄을 되찾았어요. 의료진이 진통제를 안전하게 투여하면 환자는 통증에서 거의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건 포기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밝게 잘 살아낼 수 있다는 희망이죠.”
완화 케어를 제대로 해왔다면 신체적인 고통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의사의 눈에 이별의 순간이 머지않았지만, 가족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마음 한구석에 희망이 남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럴 땐 마지막을 고하는 일이 의사의 몫이 아닙니다. 붙잡고 싶어 하는 가족이 그 손을 놓아주어야죠. 저는 “낫지 않는다는 건 알고 계시죠?” 확인은 하지만, 그 이상의 이해를 강요하지 않아요.
암 환자는 곧장 죽음으로 향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병이 다 나은 듯 보이는 날도 있어요. 그런 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지요. 때론 모두 모여 와인으로 건배를 제안하기도 해요. 가족들이 나누는 인사는 대개 세 마디예요.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안녕’.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들으면 남은 이들은 비로소 마음을 정리하기 쉬워집니다.
‘가지 말아요’ 울부짖으며 후회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아요. 함께 고생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죠. 종착지에 이르면 ‘어머니, 열심히 살아오셨어요. 이제 가도 좋아요’라고 리드해 드려요. ‘잘 보살피셨어요. 이제 멋지게 떠나셨어요’ 남은 가족은 서로 격려하도록 이끌죠. 의료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아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책에서 세타 씨는 나답게 죽기 위해 임종 직전까지 마작, 경마, 재즈 감상을 즐기더군요. 나다운 죽음에도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한가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마지막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데 중요합니다. ‘나다운가 나답지 않은가’라는 기준을 세운다면 삶이 조금 편해질 거예요. 어떤 분은 혼수상태에 누워 있으면서도 손님들에게 음식을 드시라고 권하더군요. 어떤 분은 매일 밭에 구근을 하나둘 심었어요. 꽃이 필 무렵에 그는 없겠지만, 기뻐할 손주의 얼굴이 떠올리면서요.
죽음이 가까워져도 소란스러운 사람은 소란스럽고, 잠이 많은 사람은 잠을 자고, 허세 부리던 사람은 끝까지 허세를 부립니다. 짐짓 의연할 필요도 없고 담담하게 살던 사람은 그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사람은 살아온 결대로 죽어가는 법입니다.”
-처음으로 재택 호스피스 케어의 경험을 안겨준 23세 유키 씨를 어떻게 기억하나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저의 첫 재택 케어였고, 당시(1980년대) 일본 사회에는 재택 케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평온하게 보내시도록 잘 뒷받침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의료 동료도 없었지요. 하지만 “집에 있고 싶다”는 그녀의 결의를 온 가족이 3개월간 지켜냈고, 평온하게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힘들다. 등 좀 문질러 줘.” “괜찮아?” “응.” 그리고 그대로 머리가 맥없이 툭 떨어졌고 어머니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대학병원의 의사 100명보다 나이토 선생님 한 명이 있어 주는 게 행복해요.” 그 말이 평생 가슴에 남아 있어요.”
-‘사망진단서’를 ‘인생 졸업증서’라 이름 붙여, 가족 중 가장 젊은 사람에게 건네주는 건 무슨 까닭인가요?
“본래 ‘사망진단서’는 구청에 제출하는 무미건조한 서류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명은 이어져 간다는 그 마음을 담아서 임종 자리에 함께한 청소년들에게 건네주지요. “이건 할머니가 인생의 마지막 시련을 잘 이겨내고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마쳤다는 증명서란다. 유스케도 학교에서 선배들의 졸업식을 본 적 있지?” 자연스럽게 동참시켜요.”

부모가 동의하면 아이가 생이 다 하는 마지막 순간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봐, 할머니 몸이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지?” “만져 볼래?” “귀에 대고 고맙다고 해보렴. 마지막까지 귀는 들리니 할머니에게 귀한 선물이 될 거야.” 죽음은 생명의 바통을 넘겨주는 것이라고 설명해주면 아이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도 소중히 여겨요. 재택 케어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재택 임종은 가족의 헌신을 전제로 한 큰 희생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생 이야기를 들으면 간병을 통한 성취감이나 임종 후의 성장도 큰 보상인 것 같습니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일본 사회 특유의 분위기인가요?
“일본 문화라기보다는 생명을 지탱하는 방식이 오랫동안 축적된 결과예요. 일본에는 장기 요양 보험 플랜에 따른 지원 체계가 있어서 예전보다 안심하고 간병할 수 있어요. 사실 임종을 지키는 일은 등산과 같아요. 때로는 험준한 오르막도 있고 때로는 쉬어가는 곳도 있지요.
응원해 줄 사람을 찾아 혼자 너무 많이 짊어지지 말고 이 산행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도중에 포기하고 싶어질 것 같으면 간병인이 잠시 쉴 방법을 찾습니다. 단기 보호 시설을 이용하는 식으로요.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관여한다면, 임종 후에 성취감과 함께 슬픔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될 거예요.”
-당신의 어머니는 어떻게 배웅하셨나요?
“어머니는 마지막에 요양원에 들어가셨습니다. 남동생 가족과 동거하셨지만 남동생이 병이 들어 집에서 간병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어머니는 서서히 노쇠해지셨고 생명의 마지막에 다다랐어요. 위독해져 혼수상태에 빠진 밤, 평온하게 숨 쉬는 어머니의 얼굴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날 곁에는 저 혼자뿐이었죠.
솔직히 언제 어머니가 숨을 거두실지 몰라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프로인 나조차도 말이죠...) 저는 어머니의 마지막에 당신이 가장 좋아하던 일본 술을 드리고 싶어, 혀 위에 한두 방울 올려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삼키셨어요. 분명 맛있으셨을 거예요. 95년 인생 마지막 맛의 기억은 바로 일본 술입니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이라도 마지막에 먹고 싶은 것을 권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메밀국수, 튀김, 와인 같은 것들 말입니다.
“건강을 지키는 것은 생명의 장기전에서 하는 일입니다. 만약 남은 수명이 짧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저는 본인이 원하는 맛을 보셨으면 합니다. 말기 암 환자였던 다다오 씨가 간절히 원하던 튀김 한 접시를 먹고 했던 말이 생각나요. “오늘은 제가 쏠게요!.” 그때 정말 기뻤습니다. 그 한마디에서 자긍심이 느껴졌어요. 걱정만 끼치는 존재가 아닌 평등하게 교류하는 인간으로서의 자부심!
어차피 많이 드시지는 못해요. 한입, 두 입의 맛에서 행복을 느끼고 인생의 축복을 얻는 것 아니겠어요? 여러분의 ‘최후의 만찬’ 소망은 무엇인가요? 저는 미소된장국과 부드럽게 갓 지은 흰쌀밥, 그리고 교토의 절임 채소입니다. 상상만 해도 꼴깍 침이 넘어가네요(웃음).”
-혹시 혼자서도 고독을 느끼지 않고 자택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럼요. 대신 현명하고 강인하게 마지막을 준비해야죠. 난치성 질환을 앓는 게이코 씨는 남편과 함께 반찬 가게를 운영하다 사별 후 혼자 지내왔어요. 제가 방문 진료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요리하고, 기둥에 묶어 둔 끈을 잡고 집 안을 이동했습니다.
수많은 인연 중 우연히 마지막 시간을 함께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의를 분명하게 전하세요. 감사의 마음과 함께 유대감을 쌓아 올릴 수 있어요. 저는 때로 인생의 마지막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의 스승 로쿠스케 씨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건강할 때 휘파람 불듯 경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셨다지요? 저의 ‘죽음의 스승’이었던 이어령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으로부터 무엇을 배우셨나요?
“에이 로쿠스케 씨는 위대한 문화인이었습니다. 커튼 뒤로 사라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팬들을 위해 라디오에 출연하고 병실에서 녹음하며 자기답게 죽었습니다. 제게 들려주신 말이 기억납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즐겁게, 즐거운 것을 진지하게’ 하라고요.
죽음도 그렇습니다. 살아계실 때 물어보세요. ‘괴로워지면 어떻게 하고 싶으신지’ ‘산소마스크를 쓰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명을 마주하면, 당사자는 안심하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예민한 분들은 피해야겠지만, 제 주변엔 알고 싶어 하는 분이 더 많았어요.”

-문득 궁금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어떻게 죽습니까?
“어떤 사람은 대화 도중 고개가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식사 도중 갑자기 호흡을 멈추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누워서 등산하듯 길고 고통스러운 호흡을 이어가다 숨이 멎지요. 사람마다 병상과 체력이 다르기에, 숨이 멎는 방식도 수많은 상황이 존재합니다.”
-임종 직전 맞닥뜨리는 감정이 ‘신뢰감’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극한 상황에서 우리 몸은 연수(숨뇌) 등 생존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장기에 산소를 우선 공급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번뇌와 욕망이 깎여 나가고,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바로 신뢰감입니다. 생명의 가장 소중한 핵심에 다가가는 거지요. 여러분도 웃으며 “안녕”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겁니다.”
-5,000명의 곁을 지킨 선생님은 자신의 임종 광경을 어떻게 그리고 있습니까?
“인생의 수만큼 생명의 마감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아시겠죠. 저는 모두에게 바다를 회유하는 참치 같다는 말을 듣습니다. 항상 움직이고 있죠. 멈출 때가 마지막입니다. 사명을 다할 수 있다는 기쁨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헤엄치고 있어요. 참치 이즈미입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죽음은 어떤 죽음인가요?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떠나는 죽음이겠지요. 어떤 상황이건 나를 쓸모없는 물건처럼 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분명한 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은 의료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풀지 못한 문제, 보고 싶은 장소, 만나고 싶은 사람… 그런 것을 병원에서 할 수는 없어요. 그걸 깨달으면 정말 행복한 장소로 돌아가고 싶을 거예요.
자신의 낡고 오래된 방이라도 좋습니다. 사회적 유대가 있는 고향일 수도 있겠지요. 그걸 깨닫는 것이 인간성을 되찾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저는 자연을 좋아해요. 나무와 새소리가 있는 곳에서 마지막 숨을 쉬고 싶어요.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파도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죽을 장소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임종은 지역 사회에 맡기는 것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면 병원에서 죽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할 수 있다면 한국도 24시간 방문 간호사 스테이션을 세우고, 왕진 의사를 늘리고, 장기 요양 보험 같은 복지도 세밀하게 정비하길 바란다고, 나이토 선생은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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