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영월·100% 검은하늘 태백 있는 강원도를 가는 이유 [여책저책]

장주영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semiangel@mk.co.kr) 2026. 5. 9.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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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말했죠. 바라보는 것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행을 떠나 자연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볕이 좋고 바람이 선선한 때의 자연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분명 같은 곳인데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강풍이 불면 달라지겠죠.

동해 묵호항 도째비골 / 사진 = 모요사
​책 ‘모든 날의 강원’은 강원 지역의 자연, 역사 등이 주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리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엽서 같은 풍경 뒤에 쌓인 사람들의 땀과 역사를 읽습니다.

​여책저책은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이 아닌 멈추고 깊이 바라보는 자세를 살펴봅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 역시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과 시선이라는 것도 전합니다.

모든 날의 강원
이영재 | 모요사
사진 = 모요사
동해의 푸른 바다, 설악산의 장엄한 설경, 그리고 여름철의 북적이는 피서지. 우리가 흔히 ‘강원도’라고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이미지들이다. 최근 출간한 이영재 작가의 ‘모든 날의 강원’은 이러한 엽서처럼 납작한 풍경 뒤에 숨겨진 강원의 진짜 속살을 깊이 있게 소개한다.

저자는 KBS 강릉방송국 아나운서로 강릉에 터를 잡아 살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토포필리아적 인간’이자 ‘공간 반골’이라 부른다.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그리스어로 장소에 대한 애정을 말한다. 때문에 화려하게 도약하는 대도시나 번성하는 공간 보다는 인구가 줄고 쇠락해 가는 구도심을 선호한다.

또 사람의 온기가 깊게 배어 있는 장소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닌 저자의 철학이 담긴 인문 에세이에 가깝다.

예능 ‘삼시세끼’ 민박집 있는 정선 / 사진 = 모요사
책은 강원의 자연을 단순히 아름다운 절경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풍경은 언제나 사람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고 봤다. 저자는 강원의 공간을 땀과 역사가 켜켜이 쌓인 문화와 생활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동해 논골담길의 가파른 경사는 그저 전망 좋은 언덕이 아니라 비탈을 따라 삶을 밀어 올려야 했던 사람들의 생활사라고 적었다. 정선 아우라지의 물길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삶에서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장소라 되짚었다.

아픔과 역사가 새겨진 장소도 빼놓지 않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관심이 뜨거운 영월의 장릉과 엄흥도의 묘를 따라 이어지는 서사를 책 속에 실었다. 단종의 비극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도리를 다했던 충신의 의지를 전했다.

사진 왼쪽부터 강릉 안반데기 배추밭,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 사진 = 모요사
산업유산의 공간인 태백을 ‘검은 시간’과 ‘흰 시간이 함께 포개진 곳’으로 묘사했다. 태백의 겨울 하늘 아래 순도 100%의 검은 밤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찬란한 별빛의 향연은 혹독한 계절을 견뎌낸 삶의 무게가 그 안에 스며 있다고 썼다.

또 저자는 강릉단오제에 대해 외지인에게는 며칠간의 축제로 비치지만 지역민에게는 계절의 리듬과 시장의 활기, 사람들의 체취가 살아나는 생활 그 자체라고 역설한다. 안목해변의 보잘것없는 자판기에서 출발해 전국적인 커피 생태계로 성장한 강릉의 커피 이야기는 시간이 빚어낸 독특한 서사를 증명한다.

이 밖에도 옥계나 한계령, 내린천의 휴게소, 예밀리의 그윽한 와인 향 등 한때 경유지에 불과했던 공간들이 새로운 목적지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았다.

사진 왼쪽부터 강릉 안목해변, 원빈과 이나영이 결혼한 장소가 있는 정선 / 사진 = 모요사
강원의 지형은 ‘봉긋한’이나 ‘야트막한’ 같은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근육질의 기세를 지니고 있다면서 말이다. 저자는 강원의 높은 고도와 거센 바람, 극단적인 계절이 빚어낸 육백마지기와 안반데기, 매봉산 바람의 언덕 같은 ‘언덕 삼대장’을 압도적인 파노라마로 그려낸다.

책은 우리가 빠르게 지나쳐 왔던 강원을 잠시 멈추고 다시 읽게 만든다. 다이어리를 펼쳐 강원으로 향하는 날을 찾게 만드는 이 책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벅찬 감동과 위로를 얻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든든한 동행이 돼줄 것이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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