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차남’ 김신 장군 현양식 함께한 99세 노병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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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군 공군은 육군 항공대로 출발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에야 독립 군종(軍種)이 됐다.
동료들이 김두만 장군(당시 계급 소령)을 축하하는 의미로 무등을 태워 기쁨을 나누는 모습이 찍힌 사진은 6·25 전쟁 당시 한국 공군의 활약상을 상징하는 명장면으로 통한다.
김신 장군은 조국 광복 후 공군에 투신해 중장까지 진급하고 제6대 참모총장(1960∼1962년 재임)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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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군 공군은 육군 항공대로 출발해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에야 독립 군종(軍種)이 됐다. 그래서 육·해군과 비교해 창군이 1년 늦다. 6·25 전쟁 기간 중 대장 계급의 장성을 배출한 육군과 달리 공군은 1960년대 후반에야 처음으로 대장이 나왔다. 1968년 12월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김성룡(2002년 별세) 제10대 공군참모총장이 주인공이다. 참모총장 재임 도중 계급이 올라간 김성룡 장군과 달리 그 후임자인 김두만(99) 제11대 공군참모총장은 1970년 7월 대장 진급과 동시에 그 자리에 임명됐다. 당시 김두만 장군은 43세에 불과했으니 요즘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김두만 장군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역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일 것이다. 승호리 철교는 북한 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 지류 중 하나인 남강에 놓인 철교였다. 북한군의 핵심 보급로인 만큼 앞서 미국 공군이 여러 차례 폭격했으나 끝내 파괴하지 못했다. 마침내 1952년 1월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가 한국 공군에 이관됐다. 김두만 소령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조종사들이 투입돼 3차례에 걸쳐 폭탄을 투하한 끝에 겨우 철교를 완전히 부술 수 있었다. 당시 전투비행전대장으로서 김 소령 등 조종사들의 작전 수행을 총괄 지휘한 인물이 바로 김신(2016년 별세) 대령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이자 일제강점기 광복군 일원으로 활약한 유명한 장군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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