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혐의 벗은 ‘뽀빠이’ 이상용… “무혐의면 더 크게 써야지!”

이한수 기자 2026. 5. 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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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25년 5월 9일 81세
2017년 본지 인터뷰 당시의 ‘뽀빠이’ 이상용.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1944~2025)은 인기 절정이었던 1996년 말 ‘MC 인생’이 무너졌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 성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KBS ‘추적 60분’이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10년간 사회를 맡아온 간판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는 전격 폐지됐다. 15년간 이끌어온 KBS 라디오 ‘위문열차’ MC 자리도 날아갔다.

건강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의 횡령 혐의는 충격적 사건이었다. 조선일보도 KBS를 인용해 사회면 톱 기사로 보도했다.

1996년 11월 4일자 39면.

“KBS는 “이씨는 지난 2월부터 이00씨가 운영하는 ‘뽀빠이 출판사업부’라는 회사에 이름과 초상권을 빌려주고 심장병 어린이 수기집 ‘가슴 속의 작은 희망’ 등과 연하장을 팔게 했다”며 “이씨는 최근까지 7개월간 판매금 30여억원 중 3억2천만원을 넘겨받았지만 이 중 실제로 수술비로 사용한 금액은 7%인 2천2백59만원뿐”이라고 보도했다.”(1996년 11월 4일자 39면)

이상용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했다. 신문사에는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4년 전부터 뽀빠이를 정기적으로 후원했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이중적인 사람이 어떻게 방송에 출연해 왔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상용은 기자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1997년 3월 1일자 39면.

석 달 후 반전이 일어났다. 공금 횡령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이상용 무혐의’를 전한 기사는 사회면 2단 크기였다.

“심장병 어린이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뽀빠이’ 이상용씨(52)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씨는 28일 ‘출판사 대표와 자신의 사진을 책에다 담도록 허용, 책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초상권료로 받기로 했으면서도 수익금이 심장병 어린이를 위해 쓰인다고 대중을 속이고 심장병 어린이 후원금을 가로챈 혐의’에 대해 서울지검으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1997년 3월 1일 자 39면)

2007년 4월 21일자 B1면.

이상용은 10년 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당시 괴로웠던 심정을 회고했다.

“그 사건으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고 수면제를 두 대씩 맞아도 잠을 못 잤어요. 물만 마셔도 토했습니다. 후배들이 교대로 병실 보초를 섰어요. 내 불 같은 성격에 혹시 머리를 찧고 죽을까 봐 병실 벽에 스티로폼을 붙였을 정도였으니. 처음 그렇게 한 달을 보냈어요.”(2007년 4월 21일 자 B3면)

인터뷰에 붙인 박스 기사는 ‘석 달 만에 무혐의 밝혀져’로 제목을 달고 당시 상황을 서술했다.

“이 사건은 세간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고, 일순간 그는 영웅에서 사기꾼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3개월 만에 무혐의로 결론 났다. 서울지방검찰청의 당시 문서(1997년 2월 28일)를 찾아보면, ‘사기 혐의 없음, 업무상 횡령 혐의 없음’으로 되어있다. 실제 아무 근거가 없이 의혹설(說)에 매스컴이 놀아났던 셈이다.”

이상용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나를 죽일 때는 죽이더라도 내가 한 일은 크게 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심장병을 고쳐준 거, 무료 도시락을 싸준 거, 이런 좋은 일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고 해야지. 내가 심장병을 하나도 안 고쳐줬다고 났어요. 567명을 수술시켰는데…. 벤츠 문고리도 잡아본 적이 없는 내가 벤츠를 타고 다녔다고 쓰고, 내게 전화 한 통화만 해도 확인이 됐을 텐데 어이가 없었어요.

또 나를 죽일 때 크게 보도했으면, 무죄로 판명됐으면 적어도 두 배 크기로 기사를 내도 모자랄 판인데…. 저를 예뻐하시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너무 화가 나서 병원에 찾아오셔서는 ‘눈이 왔다, 쓸지 말고 떠나라, 봄이 와서 눈이 녹으면, 그 모습은 다시 나타난다’라는 말씀을 주셨어요.”(2007년 4월 21일 자 B1면)

2001년 4월 10일자 36면.

이상용은 ‘왜 언론을 상대로 소송하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에 “이미 다 잃었고, 되돌려지는 것도 아닌데, 법적으로 한들 돈 몇 푼 보상받을 뿐인데, 그런들 뭐 하겠어요”(2007년 4월 21일 자 B3면)라고 했다.

별세 1년 6개월 전 조선일보 문화면 기획 ‘나의 현대사 보물’ 31번째 출연자로 지면에 등장했다. 이상용은 MC 하차 이후 어려웠던 생활을 언급했다.

2023년 12월 5일자 A18면.

“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이거스에서 한국 관광객 상대로 가이드를 했다. “손대면 돈을 다 잃는다고 해서 카지노 한 번 안 하고, 팁을 받으면 베개 안에 차곡차곡 모았다”고 했다.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방송의 고정 프로그램을 맡지는 못했다.”(2023년 12월 5일 자 A18면)

이상용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회고했다. 성공한 인생이라고 했다.

“지금은 전국에서 ‘폭소 강연’을 하며 지낸다고 했다. “이 나이에 이만큼 바쁘게 지내는 것이 자부심”이라고 했다. “전국을 다니다가 수박밭이 보이면 들어가서 하나 사 먹고, 고구마 캐는 곳이 있으면 맨발로 같이 캐기도 합니다. ‘뽀빠이입니다’ 하고 인사하면 몰라보는 분들이 없으니, 이만하면 잘 살았다는 생각입니다.”(2023년 12월 5일 자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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