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이 술을 빚듯… 러닝화 만드는 30년 달리기 사랑꾼
거품 쏙 뺀 고성능 카본화 인기
“러닝 문화 확산에 도움됐으면”
“주당들이 직접 막걸리 빚는다고 하잖아요. 마라톤 마니아로서 달리기에 가장 좋은 신발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8일 경기도 양평 용문생활체육공원에서 국산 러닝화 브랜드 ‘FAAB’가 최근 출시한 카본화를 신어 보인 김준형(59) FAAB 대표의 얼굴에 자부심이 드러났다. 그는 “글로벌 메이커를 능가할 순 없겠지만, 일반 러너들에게 필요한 기능적인 요소만 따지면 이 이상의 카본 러닝화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제 30년 러닝 인생을 집약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FAAB를 이끈 지 약 2년 된 초보 경영자다. 스포츠 브랜드와는 상관없는 직장에서 일하며 30년 동안 아마추어 러너로 활동하다가 FAAB 창립자 박복진(75)씨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았다. 울트라 마라톤(풀코스 이상의 초장거리 마라톤)계에서 유명 인사인 박씨는 ‘달리기에 진심’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업 경력도 없는 김 대표에게 덜컥 회사를 맡겼다.
김 대표는 1997년 IMF 위기 때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러닝에 입문했다. 매일 출근 전 10㎞씩 달리던 게 하프·풀코스 마라톤 도전으로 이어졌고, 울트라 마라톤까지 참가하는 수준이 됐다. 2021년엔 하루 평균 10㎞씩, 100일 연속으로 총 1047㎞를 달리는 도전에도 성공했다.

갑자기 국산 러닝화 브랜드 CEO가 된 그가 첫 제품으로 기획한 게 ‘보급형 카본화’다. 카본 러닝화는 엘리우드 킵초게(케냐)가 본격적으로 ‘서브2(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이내 주파)’에 도전한 7~8년 전부터 국내에도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러너들이 신기엔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엘리트 선수에 맞춘 과한 반발력 때문에 발목·무릎 부상 우려가 컸고, 밑창이 쉽게 갈려나가 오래 신을 수 없었다. 가격도 30만~50만원 정도 해 일반 러너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장비였다.
김 대표는 안정성, 내구성, 저렴한 가격 세 가지 요소에 집중해 카본화를 만들기로 했다. 국내외 공장을 수소문한 끝에 무게와 탄력, 내구성을 원하는 수준으로 조합했다. 그는 “시제품이 나오면 직접 한 달 이상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테스트했다”며 “마지막 시제품은 6개월 동안 거의 1000㎞를 달린 끝에 ‘됐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그가 선보인 카본 러닝화는 동호인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우선 판매가를 유명 브랜드 제품의 절반 정도로 책정한 게 인기 요인이다. 유통 마진과 마케팅 비용 등을 걷어냈고, 디자인도 김 대표가 AI(인공지능)를 써서 직접 한 덕분이다. 김 대표는 “많은 수익을 내진 못해도 손해 볼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앞으로 더 좋은 신발을 계속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성’도 중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가 신발 사업에 매달리는 건 ‘러닝의 대중화’란 목표 때문이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기능성 신발을 선보여 더 많은 사람이 달리기에 흥미를 느끼길 바라는 겁니다.” 판매 수익의 10%를 청년 러너들에게 지원금 등으로 전달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즐거운 러닝 덕에 우수 아마추어가 늘어나면, 정체된 한국 엘리트 육상에도 자극이 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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