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이 술을 빚듯… 러닝화 만드는 30년 달리기 사랑꾼

양평/이태동 기자 2026. 5. 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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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브랜드 FAAB 김준형 대표
거품 쏙 뺀 고성능 카본화 인기
“러닝 문화 확산에 도움됐으면”

“주당들이 직접 막걸리 빚는다고 하잖아요. 마라톤 마니아로서 달리기에 가장 좋은 신발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8일 경기도 양평 용문생활체육공원에서 국산 러닝화 브랜드 ‘FAAB’가 최근 출시한 카본화를 신어 보인 김준형(59) FAAB 대표의 얼굴에 자부심이 드러났다. 그는 “글로벌 메이커를 능가할 순 없겠지만, 일반 러너들에게 필요한 기능적인 요소만 따지면 이 이상의 카본 러닝화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제 30년 러닝 인생을 집약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준형 FAAB 대표는 새로 출시한 카본 러닝화를 소개하며 “일반 러너에게 필요한 기능 면에선 이게 최고”라고 했다. / 장련성 기자

김 대표는 FAAB를 이끈 지 약 2년 된 초보 경영자다. 스포츠 브랜드와는 상관없는 직장에서 일하며 30년 동안 아마추어 러너로 활동하다가 FAAB 창립자 박복진(75)씨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았다. 울트라 마라톤(풀코스 이상의 초장거리 마라톤)계에서 유명 인사인 박씨는 ‘달리기에 진심’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업 경력도 없는 김 대표에게 덜컥 회사를 맡겼다.

김 대표는 1997년 IMF 위기 때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러닝에 입문했다. 매일 출근 전 10㎞씩 달리던 게 하프·풀코스 마라톤 도전으로 이어졌고, 울트라 마라톤까지 참가하는 수준이 됐다. 2021년엔 하루 평균 10㎞씩, 100일 연속으로 총 1047㎞를 달리는 도전에도 성공했다.

8일 오후 경기도 양평 용문생활체육공원에서 출발 자세를 취하고 웃어 보인 김준형 대표. /장련성 기자

갑자기 국산 러닝화 브랜드 CEO가 된 그가 첫 제품으로 기획한 게 ‘보급형 카본화’다. 카본 러닝화는 엘리우드 킵초게(케냐)가 본격적으로 ‘서브2(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이내 주파)’에 도전한 7~8년 전부터 국내에도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러너들이 신기엔 불편한 부분이 많았다. 엘리트 선수에 맞춘 과한 반발력 때문에 발목·무릎 부상 우려가 컸고, 밑창이 쉽게 갈려나가 오래 신을 수 없었다. 가격도 30만~50만원 정도 해 일반 러너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장비였다.

김 대표는 안정성, 내구성, 저렴한 가격 세 가지 요소에 집중해 카본화를 만들기로 했다. 국내외 공장을 수소문한 끝에 무게와 탄력, 내구성을 원하는 수준으로 조합했다. 그는 “시제품이 나오면 직접 한 달 이상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테스트했다”며 “마지막 시제품은 6개월 동안 거의 1000㎞를 달린 끝에 ‘됐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FAAB 김준형 대표가 8일 경기도 양평 용문생활체육공원에서 직접 기획해 만든 카본 러닝화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장련성 기자

그가 선보인 카본 러닝화는 동호인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우선 판매가를 유명 브랜드 제품의 절반 정도로 책정한 게 인기 요인이다. 유통 마진과 마케팅 비용 등을 걷어냈고, 디자인도 김 대표가 AI(인공지능)를 써서 직접 한 덕분이다. 김 대표는 “많은 수익을 내진 못해도 손해 볼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앞으로 더 좋은 신발을 계속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성’도 중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가 신발 사업에 매달리는 건 ‘러닝의 대중화’란 목표 때문이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기능성 신발을 선보여 더 많은 사람이 달리기에 흥미를 느끼길 바라는 겁니다.” 판매 수익의 10%를 청년 러너들에게 지원금 등으로 전달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즐거운 러닝 덕에 우수 아마추어가 늘어나면, 정체된 한국 엘리트 육상에도 자극이 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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