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이 ‘범퍼’라면 운전자보험은 ‘에어백’

2026. 5. 9. 00: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머니 주치의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다.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면 반드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운전자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해 두면 사고 이후의 문제도 대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사고에서는 이 전제가 그대로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동차보험은 분명 필수적인 안전장치이다. 다만 그 역할은 분명히 제한되어 있다. 자동차보험은 피해자의 치료비나 차량 손해를 보상하는, 즉 ‘민사적 책임’을 해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교통사고의 책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고의 유형이나 피해 정도에 따라 형사적·행정적 책임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12대 중과실 사고’이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서 규정한 이 항목에는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위반, 음주·무면허 운전,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의무 위반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중과실 사고는 자동차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즉 보험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벌금이나 형사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동차보험과 운전자보험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보험은 ‘차’를 중심으로 한 보장이다. 차량을 기준으로 사고 피해를 보상하는 구조이다. 반면 운전자보험은 ‘운전자’를 따라다니는 보장이다. 어떤 차량을 운전하든, 심지어 렌터카나 타인의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에도 운전자 본인의 법적 책임을 대비하는 구조이다. 두 보험은 역할이 전혀 다르며,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이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더라도, 실제 운전 환경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5월은 나들이와 여행이 늘어나는 시기다. 장거리 운전이나 낯선 지역 주행이 많아지면서 운전 환경도 평소와 달라진다. 익숙하지 않은 도로, 보행자 밀집 지역, 어린이 보호구역 등을 지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사고 위험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서는 단순 접촉사고를 넘어 보행자 사고나 중과실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자동차보험은 사고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러한 사고가 형사적 책임으로 이어질 경우에는 별도의 대비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사고의 법적 리스크 자체가 커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제도 변화가 있다. 2020년 시행된 ‘민식이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및 도로교통법 개정)은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고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였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 상해를 입힌 경우에도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한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보행자 보호 의무도 크게 강화되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통행 중이거나 통행하려는 경우에도 운전자는 일시 정지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또는 범칙금 부과 대상이 된다. 특히 우회전 시 일시 정지 의무 강화 등으로 인해 기존에는 단순 과실로 여겨졌던 사고도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몇 년간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정체 또는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보행자 교통사고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사망 사고 중 보행자 비율은 약 35~40%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운전자 과실이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다. 또한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고는 건수 자체는 많지 않지만, 형사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리스크의 질이 다르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상한이 사실상 없는 책임’이다. 형사합의금은 별도의 기준 없이 사고의 경위와 피해 정도에 따라 당사자 간 협의로 결정되기 때문에 수천만원에서 수억 단위까지 요구될 수 있다. 법적으로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아니지만, 합의 여부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부담을 피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여기에 벌금과 변호사 선임 비용까지 더해지면 사고 한 번으로 개인 재무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민사적 보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발생한다. 이 지점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운전자보험이다. 다만 가입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장의 실효성’이다. 실제로는 보험에 가입해 놓고도 제대로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운전자보험의 핵심 항목은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이다. 이는 형사합의를 위한 자금으로, 실제로는 피해자와의 합의 과정에서 활용된다. 한도가 낮거나 지급 조건이 제한적이면 실제 상황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합의금을 미리 지급하는 선지급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선지급이 되지 않으면 결국 운전자가 먼저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호사 선임 비용도 중요하다. 형사 절차에서는 초기 대응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한 진술 내용, 증거 제출, 과실 인정 여부에 따라 이후 검찰 송치 여부나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장 금액이 낮으면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사건 대응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보장 시점이다. 일부 상품은 정식 기소 이후에만 변호사 선임 비용을 보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경찰 조사 단계나 약식기소 단계에서는 스스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단순히 ‘보장이 있다’는 사실보다, ‘얼마까지, 언제 지급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벌금 보장 한도도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 등은 법 개정으로 벌금 수준이 과거보다 크게 높아진 만큼, 기존 가입 금액으로는 실제 상황을 충분히 대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운전자보험은 사고를 막는 보험이 아니다. 사고 이후 발생하는 법적·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자동차보험만으로 충분한지, 운전자보험이 있다면 변화된 법과 제도 환경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까지 현실적으로 대비 가능한 구조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홍승희 머니랜턴 대표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