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모으고야 말겠어!”… 30년 대호황 이끈 ‘포켓몬 경제학’

정상혁 기자 2026. 5. 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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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탄생 30주년 전국이 들썩
불황 잊은 흥행 대박 비결

지난 1일 오전 서울 성수동 서울숲에 12만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일대에서 열린 ‘포켓몬’ 기념품 무료 증정 행사 첫날, 인근 카페 거리에도 4만명이 들이닥쳤다. 해당 굿즈가 비단잉어 캐릭터(잉어킹)가 그려진, 올해 포켓몬 탄생 30주년을 기리는 한정판 카드였기 때문이다. 사고 우려로 행사가 중단될 만큼 광기 어린 장관이었다. 새벽 노숙을 감행하고, 일본·중국에서도 원정족이 건너왔다. 리셀러(Reseller)들은 한 달 전부터 이 카드를 10여만원에 즉석 매입하겠다며 영업을 벌였다.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우량주, 지난해 서울 잠실에서 공짜로 배포된 포켓몬 홍보용 카드는 현재 중고 거래 가격이 60만원을 넘어섰다.

◇수집하다 중독된다, 재테크까지

전국이 포켓몬으로 들썩이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포켓몬 런’ 행사 무대에서 춤사위를 벌이는 피카츄들. /SKT

역시 5월은 가족, 그리고 포켓몬의 달. 1996년 일본에서 출시돼 세계를 접수한 포켓몬이 연일 뜨거워지고 있다. 원작자가 어릴 적 숲에서 곤충 채집하던 기억을 떠올려 만든 게임이 그 시초로, 이후 만화로 방영되며 글로벌 캐릭터 산업의 선두가 됐다. 포켓몬이라는 귀엽고 매력적인 미지의 동물을 하나씩 잡아나가며 도감을 완성하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 흥행의 열쇠말이었다. 만화 주인공이 외치는 상징적 구호 “Gotta Catch Them All”처럼, 현실에서도 “다 모으고야 말겠다”는 팬들의 수집욕을 자극해 지갑을 열게 한 것이다. 수집 과정에서 충성도를 높이고 유행의 장기화까지 유도하는 전략. 일본 경제지 도요게이자이에 따르면, 포켓몬 누적 매출은 세계 최고 수준인 약 200조원으로 추산된다.

지난주 성수동 대란을 일으킨 포켓몬 30주년 기념품 '잉어킹 카드'. 사고 우려로 무료 증정 행사는 잠정 중단됐다.

인기의 중심에 포켓몬 카드가 있다. 브랜드 분석 매체 라이선스 글로벌은 지난해 포켓몬 인터내셔널 컴퍼니 매출액을 120억달러(약 18조원)로 발표하고 “이 성공의 상당 부분은 전 연령대를 사로잡는 베스트셀러, 포켓몬 카드 덕분”이라고 했다. 포켓몬 카드를 포켓몬 포획하듯 수집하는 행위, 인기도 및 희소성 등 가치를 따져 재테크 수단으로 삼는 ‘포켓몬 카드 경제’까지 탄생시켰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은 “2004년 이후 포켓몬 카드의 누적 투자 수익률이 3821%에 달해 S&P500 지수 수익률(483%)을 크게 앞섰다”고 보도했다. 포켓몬 카드 총 발행량은 750억장, 지난 2월에는 간판 캐릭터 피카츄 희귀 카드가 미국 경매에서 약 242억원에 낙찰됐다. 강도 행각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이유다.

포켓몬 빵 열풍의 주역 ‘띠부띠부씰’. 최근 포켓몬 탄생 30주년을 맞아 내놓은 오리지널 화풍의 '띠부띠부씰' 역시 오픈런 대란을 불렀다. /SPC

포켓몬 ‘띠부띠부씰’ 열풍 역시 수집형 상품화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포켓몬 빵’에 동봉된 이 스티커를 전부 모으려 배우 지창욱 등 유명 연예인들마저 수십만원을 주고 중고 거래에 나서는 등 사회 현상으로까지 부각됐다. 지난 1월 포켓몬코리아 신년회에 참석한 SPC삼립 경재형 당시 대표는 “지금껏 포켓몬 빵 누적 판매액이 32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스티커 덕에 빵 3억2000만 봉지가 팔렸다는 얘기다. 빵에 이어 ‘포켓몬 김’도 품귀 현상을 빚은 바 있다. 동봉된 홀로그램 딱지를 모으려는 수요가 몰리자 일부 쇼핑몰에서는 두 배 비싼 가격표가 붙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배보다 커진 배꼽 잡기, 이후 유통가의 새 공식이 됐다.

◇전방위 협업… 무한 확장

그래픽=송윤혜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에도 포켓몬은 건재하다. 음료·완구·세제·스마트폰 등 온갖 용품에, 올해는 현대차와도 협업하는 등 잠시도 시야에서 사라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상 모든 물건에는 ‘포켓몬 에디션’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 일상 소비재로 세대를 초월하는 콘텐츠 친밀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팬층을 넓혀 세대를 연결하는 게 장수 비결”(포켓몬 최고운영책임자 우츠노미야 타카토)이라는 설명처럼, 경험 소비로도 확장 중이다. 지난 5일 러닝 대회 ‘포켓몬 런’이 서울 뚝섬에서 열렸다. 티켓 5000장이 30분 만에 매진됐고 웃돈까지 붙어 거래됐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참가한 한모(39)씨는 “포켓몬은 나이를 초월한 가족 간 몇 안 되는 공통 관심사”라며 “팔이 안으로 굽듯 뭘 골라도 관련 상품에 손이 가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발행한 포켓몬 30주년 특별판. 캐릭터의 힘이 대중문화의 영역을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적극적인 신기술 접목은 올드 콘텐츠를 현재 진행형으로 존재하게 하는 힘. ‘포켓몬 고(GO)’가 대표적이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 실제 현실 공간을 돌아다니며 포켓몬을 잡아 도감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한 신개념 게임. 폭발적 열기는 게임을 향한 선입견까지 뒤집어놨다. 골방에 틀어박힌 은둔족을 집 밖으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미국 듀크대 연구에 따르면 ‘포켓몬 고’ 사용자의 하루 평균 걸음 수가 2000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로 인한 교통사고도 대거 보고됐다. 이듬해 ‘포켓몬 고로 인한 죽음’(퍼듀대)이라는 보고서가 발간될 정도였다.

◇피카츄가 전부가 아니다

블랙핑크 멤버 지수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켓몬 '이브이'를 안은 채 몬스터볼을 들어보이고 있다. /인스타그램

성공 궤도에 오른 캐릭터 기반 상품은 대개 품질 저하를 우려해 뉴페이스 개발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지만, 포켓몬은 끊임없는 메뉴 다각화로 나아가고 있다. 포켓몬 리스트는 발매 당시 151종에서 현재 1025종으로 늘었다. 효과는 인기투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포켓몬 출시 25주년 당시 치러진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건 2013년 등장한 ‘데덴네’였다. 10위권에 오른 1세대 캐릭터는 단둘뿐이었는데, 그 자체로 포켓몬의 상징인 피카츄마저 7위에 그쳤다.

‘최애’의 선택 폭이 넓어질수록 콘텐츠의 생명력은 길어진다. “높은 충성도를 바탕으로 한 소비”(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트렌드 보고서)를 추동하기 때문이다. 최근 포켓몬 측은 세계 각지의 스타들에게 ‘당신의 최애 포켓몬’을 묻는 영상을 공개했다. 포켓몬에서 자신과의 동질감을 발견하는 성향이 강했다. 가수 레이디 가가(40)는 “그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사용한다”며 노래로 기분 좋게 잠들게 하는 ‘푸린’을 꼽았고, 블랙핑크 멤버 지수(31)는 수려한 외모로 다채롭게 진화하는 ‘이브이’를 선택했다. “여러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모습”이 그 이유였다.

◇학계도 주목, 포켓몬 생태계

포켓몬 대표 캐릭터 피카츄와 이브이가 최근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포켓몬 행사를 축하하고 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

포켓몬은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2월 특집 기사를 통해 “포켓몬은 생물 다양성, 연구 윤리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줘왔다”고 평가했다. 진화론에 입각한 채집·육성 게임에서 출발한 만큼 포켓몬 분류는 실제 연구 작업과 유사하고, 이로 인해 수많은 연구자들의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실존 생물보다 포켓몬을 더 많이 안다는 조사 결과에 바탕해 포켓몬 카드를 응용한 교육 프로젝트 ‘파일로’(Phylo) 등의 활용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교육이라는 키워드는 국적 불문 학부모들을 자극하는 핵심 요인. 미국 시카고 필드박물관은 오는 22일부터 포켓몬 캐릭터와 실제 화석을 함께 전시하는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를테면 1세대 포켓몬 캐릭터 ‘프테라’는 쥐라기 익룡 프테로닥틸루스에서 착안했는데, 인기가 높아지면서 2014년에는 익룡의 속명이 해당 포켓몬 영문명(아이로닥틸)에서 딴 아이로닥틸루스로 명명되기도 했다. 시조새 아르카이옵테릭스와 이를 본뜬 포켓몬 ‘아케오스’도 전시 목록에 포함됐다.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Pokécology’(포켓몬 생태학) 행사를 지난달까지 진행했고, 여기서만 제공된 피카츄 카드 역시 수십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지갑이 계속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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