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향기 품고 내어 주는 꽃처럼… 법향 전하는 ‘꽃스님’입니다

구례/김경화 기자 2026. 5. 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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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경화 기자의 달콤쌉싸름]
30대 인플루언서 스님
화엄사 범정스님

꽃미남, 꽃길, 꽃할배, 꽃보직, 꽃중년, 꽃놀이패…. ‘꽃’은 언제부턴가 특별히 좋은 무언가를 강조하는 접두사처럼 쓰인다. 얼굴이 곱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꽃미남’은 2009년 한국어대사전에 등재됐다. 그렇다면 ‘꽃스님’이라 하면 어떤 스님,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젊은 층과 불자(佛子)들 사이에 이른바 ‘꽃스님’으로 알려진 젊은 출가(出家) 수행자가 있다.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출가한 범정스님(33)의 ‘부캐(제2의 캐릭터)’가 ‘꽃스님’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이 아이디와 별명으로 부처님 말씀을 전하며 젊은 층과 소통한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3만6000명이다. 최근 정부의 자살 예방 사업 ‘천명지킴 프로젝트’ 홍보대사를 맡았다.

화엄사의 상징인 꽃분홍 매화 ‘화엄매’가 지고 신록이 푸르게 번지는 날, 이 절에서 스님을 만났다. 석가탄신일을 앞둔 화엄사는 연등 설치로 분주했다. 스님은 열다섯 살에 두 동생과 함께 화엄사에 맡겨졌다. 사춘기 소년의 울음소리가 한 달 넘게 지리산 계곡물 소리와 뒤엉켰다. 길고 긴 그리움과 원망,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스님은 평온에 이른 듯 보였다. “20대 중반에 내면 깊은 곳에서 이뤄진 두 번째 출가, ‘심출가(心出家·마음으로 하는 출가)’를 하면서 그들(부모)의 삶을 인정하고 나니 오랫동안 꼬여 있던 마음의 매듭이 소리 없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용서는 타인을 향한 관용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가두었던 감옥의 문을 여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꽃이 된 스님

젊은 스님이 애초 세간의 관심을 받은 건 빼어난 외모 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흰 피부와 붉은 입술 탓에 ‘화장하시나’ ‘피부 관리받느냐’는 얄궂은 질문이 쏟아지자 스님은 라이브 방송을 켜고 세수를 했다. 지난해 스님이 앞장선 화엄사의 ‘화야몽(야간 개방 명상 프로그램)’은 9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꽃스님 얼마나 잘생겼길래… 사찰 체험 4시간 만에 마감’. 화제가 된 기사 제목이 이랬다.

-꽃스님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궁금합니다.

“좀 우습지만 그 아이디는 제가 지었어요. 동국대 불교학과 시절 여학생들이 그렇게 불렀는데, 아이디로 갖다 썼어요.”

-마음에 드셨나 봐요.

“한 해 40만명이 화엄매를 보려고 화엄사에 옵니다(전남 구례 인구가 3만명이 채 안 된다). 새벽에 경내를 비질하다 ‘땅에 떨어졌다고 꽃이 아닌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떨어진 꽃잎을 쓰레기라고 치부하는 삶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엄사의 상징격인 천연기념물 '화엄매'. 3월 말에 일주일 정도 붉은 매화꽃이 핀다. 사진 제일 앞쪽 모자를 쓰지 않은 스님이 범정스님. /화엄사 제공

-꽃스님 별칭에 부정적 의견도 많았을 텐데요.

“저를 아끼는 분들이 ‘절대 댓글 보지 마라’는 전화를 많이 주셨어요. 저의 본질은 범정스님이에요. 그건 불변입니다. 꽃스님이라는 ‘부캐’가 얼마나 커지든 간에 그게 범정을 방해한다면 그 길로 안녕입니다. 지금까지는 꽃스님이 도움이 돼요.”

-어떤 방면으로요?

“제 은사 스님(스승)인 우석스님(현 화엄사 주지)이 허락하셔서 2019년에 인스타그램에 꽃스님이라는 계정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정확히 뜻도 몰랐지만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팔로어가 늘며 유명해지니까 스스로 더 수행자로서의 몸가짐, 마음가짐을 살피고 다잡게 됐습니다.”

스님이 수행하고 있는 천년 고찰 화엄사는 이름 그대로 ‘화엄경’의 철학을 구현해낸 곳이다. 화엄(華嚴)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처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꽃에 비유한 것으로, 꽃으로 장엄하다는 뜻이다. 화엄사상은 ‘우주의 모든 사물이 서로 인연으로 연결돼 융합돼 있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만물이 무수한 구슬로 연결돼 서로를 비추는 ‘인드라망’이라는 개념으로 인연을 설명한다. ‘나’라는 구슬 안에는 그간 내가 만난 모든 사람, 스쳐간 모든 인연, 앞으로 맞이할 인연이 비치고 있다.

-‘꽃’을 내세우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꽃은 날 때부터 향기를 품고, 그 향기를 누가 언제 맡든 차별하지 않아요. 그냥 피고 향기를 품고 기약 없이 내어줍니다. 수행자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미천합니다만 제가 가진 것, 배운 것, 깨달은 것을 기약 없이 내어줘야죠.”

부모로부터 이별을 배웠다

삶은 예고 없이 방향을 틀곤 한다. 열다섯 살 때였다. 부모님은 용정원(범정스님의 속명)과 그의 두 동생을 화엄사에 내려놓자마자 차를 돌렸다. 삼 남매는 붉은 후미등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저는 착한 아들이었고, 준비 기간은 일주일쯤이었을까요. 부모님 뜻이니 막연히 좋은 결정일 거라 생각했죠. 정작 이별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참 동안 헤맸습니다. 절하는 게 지금도 힘들어요. 어릴 적 스님들께 혼날 때 절을 하도 많이 해서요(웃음). 한 달에 만 배(拜)도 해봤어요. 하지만 산사는 저를 외면하지 않았어요. 부모님 뜻으로 예기치 못하게 출가하게 됐지만 대학 졸업 무렵 ‘이번 생은 스님으로 살아도 행복하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범정스님이 15살때 동생과 함께 화엄사에 맡겨졌다. 어린 시절 화엄사에서 스님의 모습. /꽃스님 SNS

-어떤 계기였나요.

“이번에 낸 제 첫 책(‘사랑을 알아 참 다행이다’)의 주요한 줄기는 저를 키워준 노스님(종삼스님)과 은사 스님에 대한 제 고백, 편지입니다. 그분들께 사랑을 배웠고, 나를 중심에 두는 수행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이별, 스님들께 사랑을 배웠다?

“제게는 ‘당연한 상황’이 없었어요. 왜 비 오는 날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을까, 체육대회는 왜 또 돌아오나…. 대학 입학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그동안 우리를 안 키웠으니 돈도 많이 모았을 테고, 핸드폰 하나 사달라고 투정했어요. ‘안 됩니다, 스님’이라는 매몰찬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미워한다는 건 아직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대는 내가 혼자 꾼 빚, 부모라는 이름의 거대한 산은 언젠가 한 번은 넘어야 했다. “만약 ‘부모님을 내가 매일 마주하는 신도처럼 대하면 어떨까’라고 마음의 창을 바꿔 달아봤습니다.”

-스님과 신도 관계가 된 건가요.

“그런 자각이 든 순간 아픔이 눈 녹듯 사라지더라고요. 상처는 남아 있겠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았어요. 이건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어 ‘혹시나 미안해하며 살지 마세요. 우리 삼 남매 잘살고 있어요. 절에서는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데 귀한 길을 걷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한참 말씀이 없다가 우셨던 것 같아요.”

-그걸로 감정이 정리됐나요.

“두 분도 나이 들고 외로우니 자식 생각이 많이 나실 거예요. 하지만 다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제 삶의 결이 정해진 이상 제 부모를 불자, 중생으로 바라보기로 했다면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 년에 한두 차례 뵙는데, 식당에 가도 스님인 저에게 상석(上席)에 앉으라고 하십니다.”

바로 밑 여동생과는 화엄사에 온 이튿날 이별했다. 여성이 지낼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남동생(막내) 범주스님은 범정스님의 평생의 도반(함께 수행하는 동료)이 됐고, 여동생(현태스님)도 성인이 된 후 출가했다.

꽃스님과 폼생폼사

절에서 받은 사랑은 자신을 아끼는 마음으로 자라났다. 동진출가(어린 시절 출가) 스님들은 흔히 결핍이 많다고 한다. 범정스님은 “사람을 살게 하는 건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이라며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돌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님들께 가장 크게 영향받은 게 있다면.

“제 스무 살 때 좌우명이 ‘폼생폼사’였는데, 노스님의 아우라를 보고 배운 거예요. 남들에게는 우스운 얘기일 수 있지만, 그 폼 하나를 365일 내내 지켜내는 게 쉽지 않아요. 삭발을 하고 승복을 깨끗이 다려 입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부터 정진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꽃스님의 ‘폼’도 그 영향인가요.

“부모님과 관계를 정리하고 심출가를 한 즈음부터 거의 매일 삭발하기 시작했어요. 보통 보름에 한 번쯤 하거든요. 매일 스스로를 다잡는 제 루틴이죠. 중학생 시절 노스님을 보며 느낀 경외감을 되새기며 지금 이 자리의 나를 다시 확인하는 의식이랄까요.”

-혹시 화장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고등학생 때는 ‘여드름 박사’였어요. 모나미 볼펜으로 눌러 짜기도 하고요(웃음). 선크림을 바르고 클렌징 밀크로 매일 2분간 꼼꼼히 씻습니다. 잘 닦는 게 중요해요.”

-은사 스님께 배운 게 있다면요.

“은사 스님은 그저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셨어요. 20대 어느 날 갑자기 ‘세상 구경하고 오라’며 여행을 보내주셨어요. 승복을 벗고 두 달 반 동안 경비행기 타고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하면서 동남아를 헤매고 왔어요. 가슴 뛴다는 게 이런 거구나, 도파민 터진다는 감각, 내가 젊다는 걸 비로소 느꼈습니다.”

-그럼 돌아오기 싫진 않았나요.

“전혀요. 나에게 이런 걸 선물하려고 여행을 보내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마음의 그릇을 가진 존재가 스님이라면 다시 집(절)에 돌아가고 싶다, 아주 기분 좋게 돌아왔습니다.”

패러글라이딩하는 범정스님. /꽃스님 SNS

-여행을 많이 하나요.

“절집에 사는 우리에게는 특별히 더 여행이 필요하다고 해요. 일상이 너무 팍팍하고 삭막하거든요. 그래도 스님들이 멋있는 게 각자 낭만이 있어요. 똑같이 머리 깎고 승복 입는다고 다 같지 않아요. ‘빡센’ 루틴 속에서, 누군가에게 보여지지 않은 삶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승리해야 하는 거죠. ”

범정스님은 ‘출격 대장부’라는 표현을 썼다. 부처님은 ‘전쟁터에서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훌륭한 승리자’라고 했다. “왜 나만 이런 삶이지, 한탄한 적도 있지만 다른 길을 가고 있으니 다른 고통을 겪을 뿐 더 불우하고 나쁜 삶은 아닌 거죠. 가치를 둔다면 저는 이 삶에 더 두겠다고 결정한 겁니다.”

지드래곤은 나의 벗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스님이 함께 수행하는 동료, 마음속으로 도반이라고 여기는 이가 있다. 가수 지드래곤. 규격과 약속에서 어긋난 파격, 자기 자신에게 취해 사는 삶의 태도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지드래곤의 팬이신 건가요?

“그런 셈이죠. 어릴 적부터 마음이 갔고 늘 찾아보고 응원했습니다. 이제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도반이 된 것 같아요. 너는 너의 무대에서 화려하게 갈 길을 가라, 나는 내 인생이란 무대에서 빛날게. 그분은 모르겠지만(웃음)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스님이 되지 않았다면 뭘 하고 계셨을까요.

“지드래곤. 하하. 제 성향이 그래요. 타고난 끼가 있는데 하필 나에게 사랑을 알게 해준 게 스님이었던 거죠. 저는 스님으로서의 삶에 매료됐고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해 이 인생을 택한 겁니다.”

-꽃스님도 그 연장선이겠어요.

“그런 셈인데, 꽃스님보다 중요한 건 범정스님, 범정보다 중요한 건 용정원이라는 중생이에요. 범정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되니 꽃스님도 존재하는 거죠. 용정원이 건강하게 사는 데 절이 좋은 영향을 주니 스님으로 사는 겁니다.”

범정스님은 “승려로서 사는 내 삶이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군 군종 승려(장교)로 재입대해 많은 젊은 층과 소통한 스님은 “MZ라는 용어는 기성세대가 편을 나누려고 선을 긋는 말”이라며 “저 스스로도 ‘MZ스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삶의 만족도가 높으신 것 같아요.

“승려로서 사는 내 삶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군종 승려로 임관하고 다른 종교인과 지내며 그 마음이 더 단단해졌어요. 당시의 제 삶이 창피할 정도로 같이 생활한 신부님·목사님이 너무 열심히 사셨거든요. 그분들의 삶이 커 보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승려의 길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저는 제 근기(根機·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성취할 수 있는 능력)가 썩 좋지 않다는 걸 알아요. 매일 삭발하는 것 같은 루틴을 시작했고, 그때 출가 발심(發心)을 했어요. 상좌(제자)를 맞이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고요.”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

스님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상좌 둘을 두고 있다. 10대에 부모와 떨어진 스님이 30대에 부모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제가 만나는 분들이 대개 40~60대인데, 그동안 자녀 문제에 대해 함부로 했던 말들에 대해 참회하고 있습니다(웃음). 아이들을 키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의 그릇을 키워주는 가장 위대한 스승이에요. 내 수행의 거울이죠.”

-아이들 얘기가 나오니 한숨을 쉬시네요.

“어휴. 둘째가 아이폰을 두 번이나 깨 먹었어요. 말도 마세요.”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겠어요.

“제가 절에서 받은 걸 회향(廻向·힘써 닦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준다)할 대상이 나타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은사 스님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죠. 절에서는 좀 위험한 발상인 것 같은데 전 타고나길 제가 행복하고 편안한 게 첫째인 것 같아요.”

-자신을 가장 소중히 하라는 거죠?

“누구든 우선순위는 나 자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랫말이 있죠? 또 하나의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양보하고 배고픈 엄마를 보면서 짜장면을 먹을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종교를 믿는 사람이 계속 줄어듭니다.

“젊은 층에게 ‘힙불교’가 유행인데 왜 불심으로 이어지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원래 그랬거든요. 그냥 편해서, 강요하지 않아서 불교가 좋다고들 했어요.”

-신도가 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가요.

“종교는 삶이라는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이 되는 뗏목 같은 거예요. 잘 건너갔으면 뗏목은 버리고 가야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좀 멀어졌다가도 힘들 때 우리 스님들의 옷깃이 만져질 수 있으면 됩니다.”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에서 범정스님이 합장하고 있다. /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불교에서는 세상을 고통의 바다, ‘고해(苦海)’라고 한다. 괴로움이 기본 값인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스님은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원만합니다”라고 답한다고 한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지만, 모든 게 둥글게 흘러가고 있다는 뜻. “원만하다는 건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문제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 일이 잘 풀리든 안 풀리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겠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모두 원만하시길 바랍니다.”

수행을 이어가며 더욱 짙어질 꽃스님의 법향(法香)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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