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소바 살아있는 면, 끝에 남는 선명한 맛
[정동현의 pick] 야키소바

강변에 불꽃놀이의 그림자가 비쳤다. 유카타를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강변을 잰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넓은 잔디밭과 키 큰 나무가 그들에게 누울 곳과 숨을 곳을 함께 마련해줬다. 푸슈욱 하고 불꽃이 올라갈 때마다 사람들의 탄식이 넓게 퍼졌다. 출장으로 간 후쿠오카의 초여름 날씨는 가본 적 없는 열대우림을 상상하게 했다. 사람들의 열기가 섬나라의 습기와 뒤섞여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폐 안쪽까지 끈끈해졌다. 어둑어둑한 저녁이 깊어질수록 한편에 놓인 포장마차의 불빛이 더욱 밝아졌다. 배가 나오고 머리가 희끗한 남자는 막노동을 하듯 국수를 뒤집었다. 땀으로 축축해진 바지에서 남은 동전을 모두 꺼내 계산대에 올려놨다. 눈이 동그랗고 머리를 뒤로 동여맨, 딸인 듯한 여자아이는 당황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동전을 하나씩 세더니 “아리가토”라고 말하며 작은 두 손으로 수북한 야키소바를 넘겨줬다.
123층 롯데월드타워가 보이는 석촌호수 뒷길은 택시만 드문드문 다닐 뿐 길가에 사람이 드물었다. 큰 회사들은 호수 건너편에 모여 있었고 이쪽은 저녁에 불이 켜지는 고깃집과 술집, 그리고 카페가 많았다. 그 사이에 좁게 문을 연 이 집의 이름은 ‘야끼소바 니주마루’였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먼저 인사 소리가 들렸다. 키가 크고 늘씬한 부인과 몸이 단단해 보이는 남편은 나란히 주방에 서서 손님을 맞았다. 메뉴는 간단했다. 소금 혹은 소스를 친 야키소바 2종류 중에 하나를 고르고 토핑을 결정하면 된다. 토핑은 오징어와 새우, 비엔나, 달걀 프라이, 치즈 정도였다. 가게 역시 메뉴만큼이나 작고 좁았다. 긴 주방 앞에 10좌석 남짓 붙은 바 테이블이 전부였다.
주방 한쪽 작은 방에는 제면 기계가 있었다. 영업 전과 점심 저녁 사이에 면을 뽑는다고 했다. 그리고 커다란 가마솥이 보였다. 머리에 두건을 동여맨 남자는 가마솥에 면을 집어넣고 커다란 젓가락으로 휘저었다. 야키소바는 ‘소바’라는 이름과 달리 메밀면을 쓰지 않는다. 이 음식 역시 1950년대 미군이 보급한 밀가루로 시작됐다. 식용 소다를 넣은 시판 중화면을 쓰는 것이 일본 현지에서도 일반적인, 싸고 편한 음식이다.
그런데 이 집은 직접 면을 뽑고 삶았다. 겨자처럼 노란 면이 아니라 하얗고 통통하며 미끈거리는 면이 철판 위에서 꿈틀거렸다.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올라왔다. 탄 구석 없이 거울처럼 정리된 철판에서 재료들이 한데 뒹굴었다. 보통 본토에 가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볶아내는데 이 집은 내외가 자리를 잡고 서서 한 번에 적은 양만 책임졌다. 그 모습은 커다란 북을 치는 듯한 둔탁함이 아니라 정교한 드럼 세트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편평한 주걱으로 재료들을 가볍게 뒤집을 때마다 드럼의 하이톱(high top)을 두드리듯 통통거리는 소리가 났다. 철판이 열기를 머금고 숙주와 채소에서 수분기가 빠지며 김이 올라왔다. 주걱의 속도가 빨라지며 챙챙 심벌이 울리고 스네어의 날카로운 고음이 탕탕 터졌다. 마침내 하나 되어 야키소바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가 되면 주걱으로 모아 접시에 얹었다. 손님들은 청중이 된 것처럼 땀을 흘리는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젓가락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줬다.
타원형의 얇은 스테인리스 접시에 야키소바가 담겨 나왔다. 반숙으로 익은 달걀 프라이가 정중앙을 차지했다. 밑으로 숙주·새우·베이컨이 몸을 숨기지 않았다. 달걀 노른자를 깨어 면에 버무렸다. 검은 소스로 맛을 낸 야키소바는 달큰하고 간간한 맛이 났다. 면에 스며든 양념 덕에 입 안에서 맛이 더 크고 강하게 느껴졌다. 중화면을 쓴 야키소바는 어쩔 수 없이 서로 달라붙고 엉기어 면이 아니라 뭉쳐진 덩어리를 먹는 것 같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집은 면이 한 가닥 한 가닥 살아 있고 그만큼 맛이 섬세했다. 마요네즈와 후추를 뿌리니 소스와 어우러져서 맛이 한결 부드럽고 품도 더욱 넓어졌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야키소바는 기름으로 볶았음에도 담백했다. 상앗빛 면의 색과 식감도 더욱 도드라졌다. 주인장의 추천대로 레몬을 뿌리자 유리창을 닦은 것처럼 맛이 선명해졌고 접시가 비워졌을 때는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 말끔한 뒷맛은 스윙 재즈처럼 단순한 조합으로 경쾌한 리듬을 이끌어낸 철판 위의 찰나에 있었다. 그리하여 가게에 앉아 있을 때는 멀리서 강바람이 불고 사람들의 숨소리와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뜨거운 여름이 되면, 손에 하이볼 한 잔을 들고 고개를 마음껏 뒤로 젖힐 것이다.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주인장 둘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뒤로 희미하게 오래된 폭죽이 터져 올라갔다.
#야끼소바 니주마루 : 야키소바 1만원, 토핑 각각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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