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속여라, 뷔페에서 본전 뽑으려면
한국인의 유별난 뷔페 선호
그 배경과 제대로 먹는 법

#1. 지난 1일 점심 시간 서울 종로구 ‘테이크(Take)’는 오픈 첫날임에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업체 관계자는 “30팀 넘게 줄 섰고 어린이날까지 예약이 모두 찬 상태”라고 했다. 테이크는 지난해 한화에서 인수한 급식업체 아워홈이 내놓은 새로운 뷔페 브랜드로, 영풍문고 지하 2층에 있는 이곳 종각점이 1호점이다. ‘글로벌 푸드 마켓’이 브랜드 콘셉트다. 세계 각국 시그니처 음식을 중심으로 130여 메뉴를 제공한다.
#2. 지난 6일 서울 남산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은 새로운 뷔페 레스토랑 ‘더 테라스 키친’ 오픈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는 11일 정식 오픈을 앞두고 시범 운영 중이었다. 자리에 앉자 셰프가 킹크랩이 실린 트롤리를 밀고 왔다. 셰프는 킹크랩을 접시에 담아 손님 앞에 놓았다. 이곳에서는 음식 60여 가지 중 3분의 1 가량을 손님이 주문하면 즉시 조리하고, 킹크랩·파스타·디저트 등 일부 음식을 손님이 앉은 자리로 가져다준다. ‘미리 준비된 음식을 손님이 직접 갖다 먹는다’는 기존 뷔페 개념을 뒤집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추락하던 뷔페가 되살아났다. 호텔 뷔페는 예약이 힘들다. ‘애슐리퀸즈’ ‘빕스’ 등 중저가 뷔페 업체들도 실적이 개선됐다. 뷔페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가장 쉬운 설명은 ‘불경기’와 ‘고물가’다. 식사부터 디저트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뷔페가 호황이라는 것.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국인의 유별난 ‘뷔페 사랑’을 이해하기엔 부족하다.

‘푸짐한 상차림’ 선호하는 한국인
미국과 유럽 등 서양에서는 불황이라고 뷔페가 뜨지는 않는다. 뷔페보다는 단일 품목의 저렴한 가격과 심리적 위안에 초점이 맞춰진다. 미국에서 불황은 외식 인구를 패스트푸드점으로 이동시킨다. 코스별로 음식이 서빙되는 전통적인 식사 예법을 중시하는 유럽에서는 ‘식사 형식’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영국은 피시앤칩스, 이탈리아는 파스타·피자 등 전통적인 ‘소울푸드’ 수요가 늘어난다.
서양에서 뷔페는 불황 때 오히려 고전하기도 한다. 미국 대도시 호텔에서 7년간 근무한 요리사 A씨는 “뷔페는 식재료 폐기율이 높고 주방 인력이 많이 필요해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에 손님이 조금만 줄어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다”며 “미국 손님들에게는 뷔페가 ‘낮은 품질’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 ‘차라리 제대로 된 단품 요리 하나를 먹겠다’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했다.
반면 한국에서 뷔페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푸짐한 상차림’을 선호하는 정서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음식을 한 상에 담아내는 ‘한상차림’이라는 공간 전개형 식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뷔페라는 외식 형태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음식 평론가 강지영씨는 “원하는 음식을 입맛대로 선택·조합하는 한국 고유의 식사법에는 시간차를 두고 나오는 서양의 시간 전개형 코스 식사법보다 익숙하고 편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했다.
호텔 뷔페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급 외식 문화의 정점에 섰다. 특급호텔 총주방장 B씨는 “해외에서 호텔 평가 기준은 프랑스 레스토랑이지만, 국내에서는 뷔페가 호텔의 얼굴”이라고 했다. 한국형 뷔페는 ‘잔치’와 ‘가성비’가 결합된 독특한 형태다. 결혼식·돌잔치·회갑연 등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먹을 게 많아야 한다’는 정서가 뷔페와 절묘하게 맞물렸다.
랍스터·대게 등 고급·고가 식재료를 무제한 제공하는 형태는 한국식 프리미엄 뷔페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서양에서는 여러 음식을 한 접시에 섞어 담거나 직접 움직여서 가져오는 것을 ‘품격 없는 식사’로 간주하지만, 한국에서는 ‘대접’을 중시하는 전통 문화가 자본주의 시대 ‘무제한 소비’와 만나 시너지를 내면서 뷔페가 최상의 외식 형태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한국 뷔페 역사 68년
뷔페는 스칸디나비아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바이킹족은 오랜 항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면 커다란 상에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나눠 먹는 풍습이 있었다. 스웨덴 전통 식사 방식인 ‘스뫼르고스보르드’로, 이를 프랑스 사람들이 ‘음식을 늘어놓은 상’을 의미하는 뷔페(buffet)라 부르며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 최초의 뷔페 식당도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열었다. 1958년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이 서울 동대문에 세운 ‘스칸디나비안 병원(현 국립의료원)’ 뒤편에 있었던 ‘스칸디나비안 클럽’이다. 의료진 전용 식당으로 출발했지만 주한 외교관과 외국인 단골 모임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일반 시민에게도 개방됐지만 2012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 최초의 뷔페는 1973년 문을 연 조선호텔(현 웨스틴 조선 서울) ‘갤럭시’다. 갤럭시는 호텔 재건축 후 ‘카페 로얄’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8년 ‘아리아’로 명맥을 잇고 있다.
뷔페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끈 건 1980년대 초·중반이다. 1990년대 들어서는 샐러드바를 앞세운 뷔페 형태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1년 ‘씨즐러’가 상륙했고 1997년 CJ 푸드빌의 ‘빕스’가 출범했다.
2010년대에는 한식 뷔페가 등장했다. 2013년 경남 창원에서 ‘풀잎채’가 론칭했고 같은 해 하반기 CJ 푸드빌이 ‘계절밥상’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2014년 이랜드이츠 ‘자연별곡’, 신세계푸드 ‘올반’, 놀부 NBG ‘화려한 식탁 N 테이블’ 등 한식 뷔페 브랜드가 쏟아졌다. 하지만 2016년 한식 뷔페가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신규 출점에 제한이 생겼다.
뷔페 업계에 결정적 타격은 코로나였다. 2020년 하반기 뷔페 영업이 금지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고물가가 한국을 덮치면서 뷔페가 되살아났다. 업계 1위인 이랜드이츠는 올해 ‘애슐리퀸즈’ 매장 5곳을 새로 열면서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빕스도 2022년 매장 25곳에서 35곳으로 늘었다.
급식·패스트푸드·백화점도 뷔페에 뛰어들고 있다.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지난달 경기도 광명에 한식 뷔페 ‘복주걱’ 2호점을 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 현대그린푸드는 백화점 내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탈리’를 월 1~2회 뷔페로 운영한다.

뷔페 가기 전 ‘굶기’는 최악의 전술
신라호텔 ‘더 파크뷰’가 1인당 24만원(프리미엄 코스 요리를 뷔페와 함께 즐기는 ‘오뜨 퀴진’ 주중 저녁과 주말 기준)으로 올리면서 국내 뷔페 최고가가 경신됐다. 호텔 뷔페가 아닌 중저가 뷔페도 이용료가 싸지는 않다. 뷔페 식당을 찾을 때 ‘본전’과 ‘가성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외식업계 관계자들은 “많이 먹으려면 ‘뇌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 출장 때 하루 5끼는 기본이라는 레스토랑 컨설턴트 C씨는 “음식을 먹기 시작해 포만 호르몬이 혈액을 타고 뇌 시상하부에 도달해 ‘배부르다’는 신호를 전하기까지는 평균 15~20분이 소요된다”며 “뇌가 포만감을 느끼기 전까지 생선회·랍스터·대게·소안심·양갈비 등 단가 높은 단백질류 위주로 2~3접시를 안정적으로 비워야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했다.
단백질, 특히 따뜻한 구이·튀김류는 포만감이 늦게 오는 편. 탄수화물은 혈당을 급격히 높여 뇌에 즉각적인 ‘배부름’ 신호를 보내니 최대한 자제한다. 단가도 낮은 편이다. 회와 쌀밥이 결합된 초밥은 먹지 않거나 뒤로 미룬다. 밥·국수·디저트류는 가장 맛보고 싶은 시그니처 메뉴를 먹은 후로 배치한다.
뇌를 속이는 또 다른 기술로는 ‘감각적 리셋’이 있다. 우리 뇌는 같은 맛을 계속 보면 질려서 포만감을 느끼지만, 다른 맛이 들어오면 다시 식욕을 만들어낸다. 고기 요리를 먹다가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피클·초절임 등 산미가 강한 음식이나 매콤한 음식을 한입 먹는다. 맛의 변주가 미각을 리셋해 다음 접시를 비울 힘을 준다. 레몬즙이나 식초가 들어간 음료를 소량 마시면 입안 기름기가 제거되고 감각이 리셋돼 압박감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귀찮다고 여러 종류의 음식을 큰 접시에 한꺼번에 담아오는 건 금물이다. 큰 접시에 가득 담으면 시각적 압박감 때문에 뇌가 먼저 배부름을 느낄 수 있다. 조금씩 담아 먹어야 심리적으로 훨씬 여유롭다. 또 자주 일어나 걸을 수밖에 없다. 가벼운 걸음은 위장관의 연동 운동을 자극하고 소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굶기는 ‘뷔페와의 전쟁’에서 최악의 전술이다. 위가 수축된 상태에서 갑자기 음식이 들어오면 금방 포만감을 느끼고 소화 불량이 오기 쉽다. 식사 3~4시간 전 가벼운 간식으로 위장에 ‘소화 시동’을 걸어두는 정도가 알맞다.
물은 위액을 희석해 소화를 방해하고 음식이 들어갈 공간을 차지한다. 식사 1시간 전 충분히 마시고, 식사 중에는 입을 축이는 정도로 자제한다. 탄산음료는 일시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위 속에 가스를 채워 배가 부르게 만든다. 페퍼민트·생강차 등 따뜻한 차나 물을 선택한다. 파인애플과 키위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풍부한 ‘천연 소화제’. 고기 요리를 먹을 때 중간중간 섭취해주면 포만감 완화와 소화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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