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잎에 담던 인도 풍미, 두바이서 ‘품격’까지 올렸다

2026. 5. 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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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등 식당의 비결] 두바이 ‘트레신드 스튜디오’
시그니처 메뉴 ‘사디아(Sadya)’. 첫 추수를 마친 마을 사람들이 바나나 잎 위에 스물네가지 음식을 올리고 나누던 인도 남부 전통 의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진 트레신드 스튜디오]
두바이는 미식으로 설레게 하는 도시는 아니었다. 사막 위에 세워진 이색적인 인공의 풍경, 럭셔리 호텔과 쇼핑몰이 도시의 골격을 이루는, 효율적이고 돈 많고 화려한 도시, 딱 그 정도.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도시가 자신을 ‘미식 도시’로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고, 그 흐름의 가장 앞자리에 있는 곳이 바로 두바이 최초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트레신드 스튜디오(Tresind Studio)’다.

인도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17코스의 메뉴를 아주 특별한 연출과 함께 선보이는 이 식당에선 길거리 음식부터 각 지역의 가정식까지,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가 가진 풍부한 향신료와 조리법을 글로벌 미식 언어로 섬세하게 풀어낸다. 두바이의 프리미엄 럭셔리 지역인 팜 주메이라에 위치한 식당에는 테이블이 8개뿐이다. 최대 20석. 숫자만 들으면 작은 식당을 떠올리겠지만 실제 공간은 330㎡(100평)이 넘는다. 손님을 맞고 웰컴 드링크를 제공하는 라운지가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넓지만 그마저도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전체 좌석을 다 채우지 않는다.

‘트레신드 스튜디오’의 셰프 히만슈 사이니. [사진 트레신드 스튜디오]
17개의 코스는 한 권의 여행기처럼 펼쳐진다. 인도라는 거대한 나라의 지리적 다양성, 즉 해안·사막·산맥·평원을 따라 차례로 요리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코스 시작부터 한 명의 가이드가 큰 인도 지도를 들고 손님 옆에 서서 각 요리가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짚어준다. 각 지역을 담당하는 셰프들은 직접 테이블 옆에 와 손님들 눈높이에 맞게 자세를 낮추고 요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스의 문을 여는 첫 접시는 인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길거리 간식 ‘파니 푸리’다. 얇은 껍질 안에 담긴 요거트와 타마린드의 산미, 고수 향이 입 안 가득 느껴진다. 그런데 이 한 접시가 도착하는 방식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바이 팜 주메이라의 야자수 모양을 그대로 본뜬 도자기 접시 위, 트레신드 스튜디오가 자리한 정확히 그 지점에 작은 한 알이 놓여 있다. 그동안 글로벌 파인다이닝 신에서 늘 변두리에 머물러야 했던 인도 요리가, 그것도 가장 흔한 길거리 음식을 들고,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의 가장 화려한 중심부에 당당하게 자리잡는 순간을 표현했다고 해석하면 너무 과장일까.

시나몬 껍질과 게살을 이용한 ‘기 로스트 크랩’. [사진 트레신드 스튜디오]
남인도 망갈로르의 어부 가정식인 ‘기 로스트 크랩’은 본래 큰 게딱지째 양손으로 뜯어먹는 거칠고 풍부한 향의 음식이지만 이곳에선 시나몬 껍질 한 조각 위에 게살이 단정하게 올려 있다. 코스가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풍경이 다시 바뀐다. 한국의 인도 음식점에서도 만날 수 있는 가장 익숙한 이름, 북인도 가정식의 정수 ‘버터 치킨’이 진한 콩소메(맑은 수프 요리)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모든 코스의 프레젠테이션과 서빙 방식은 오랜 시간 함께 손발을 맞춰 온 무용단의 공연처럼 정밀하고 아름답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그니처 코스 ‘사디아(Sadya)’다. 사디아는 인도 남부 지방에서 첫 추수를 마친 뒤 한자리에 모여 바나나 잎 위에 스물네 가지 음식을 올리고 손으로 섞어 나눠 먹던 공동체 잔치라고 한다. 한 마을의 마음이 한 잎 위에 모이는 의식을 트레신드 스튜디오는 식탁 위에 펼친다. 직원 한 명이 다가와 첫 재료를 놓는다. 잠시 후 또 다른 직원이 다음 재료를, 다음 직원이 또 그 다음 재료를 놓는다. 그렇게 망고 커리를 살짝 두른 파인애플 쌀 크림, 케랄라산 아몬드의 가벼운 단맛, 코코넛 아이스크림, 남부 인도 향신료로 우려낸 따뜻한 토마토 스프 등이 한 접시 위에 모인다. 그날의 가장 감동적인 한 접시였다.

전체 코스 내내 서비스의 결, 플레이팅의 정교함, 구성의 완성도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곳 없었다. 그러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한 겹 걷어내고 음식의 맛과 풍미 그 자체로 좁혀 들어가면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3년 만에 미쉐린 3스타를 거머쥐었을까.

두바이에 미쉐린 가이드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22년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유치에 의한 결정이다. 두바이는 도시 브랜드를 런던·도쿄·뉴욕과 같은 금융 허브인 동시에 세계적 관광 도시의 반열에 올리고자 했고 그러기 위해 ‘미식 도시’라는 포지션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미쉐린의 유명세가 자신의 도시 위에 내려앉기를 원했기에 고든 램지, 노부, 알랭 뒤카스, 마시모 보투라 같은 파인 다이닝계 거물급 이름들을 차례로 ‘수입’했다. 트레신드 스튜디오는 첫 해인 2022년 1스타, 이듬해에 2스타, 2025년에는 두바이 최초의 3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다. 게다가 ‘인도 파인다이닝 최초의 미쉐린 3스타’라는 왕관까지 함께 쓰게 됐다.

이 모든 것은 도시가 의도를 갖고 시간과 자본을 들여 만들어 낸 ‘계획 미식 경제’의 결과다. 인도 파인다이닝은 글로벌 미식계에서 오랫동안 과소평가된 카테고리였고, 두바이는 인구의 약 40%가 인도계로 채워진 도시다. 그런 도시에서 ‘인도 파인다이닝’이 미식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도시의 미식 위상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동시에, 이 도시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가장 큰 공동체의 자긍심까지 함께 세우는 일이다. 게다가 트레신드 스튜디오는 두바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키워 낸 로컬 브랜드다. 미식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두바이의 트레신드 스튜디오의 성장과정은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진다.

박희은 자유기고가.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벤처투자자. 전 세계 도시를 오가며 로컬 미식·공간·사람을 통해 문화의 결을 읽는 것을 즐긴다. 셰프를 하나의 창업자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미식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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