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 ‘바냐’ vs 조성하 ‘반야’…철부지 중년 아재들 웃픈 맞짱

유주현 2026. 5. 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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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삼촌·반야아재…핫한 2026 Vanya
“목매달아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죽은 누이의 남편의 아내를 사랑하는 중년 남자의 독백이다. 조카가 연모하는 아버지 주치의는 새엄마와 썸을 탄다. 해괴한 오각관계지만 ‘막장드라마’라기엔 텐션이 약하다. 억눌린 욕망이 삐져나와 ‘웃픈’ 해프닝이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 풍경이다. 7일 개막한 LG아트센터 ‘바냐삼촌’(손상규 연출)과 22일 개막하는 국립극단 ‘반야아재’(조광화 연출) 얘기다. 올해 연극계 최고 빅샷은 이 ‘바냐 대전’이다. 2년 전엔 ‘햄릿 대전’을 치렀다. 원로 배우들이 집결한 신시컴퍼니 버전부터 조승우를 앞세운 예술의전당 버전, 젠더를 뒤바꾼 국립극단 버전까지, “사느냐 죽느냐” 외치던 햄릿의 고뇌가 올해는 “죽기 좋은 날씨”라는 바냐의 푸념으로 대체된 셈이다. ‘바냐아저씨’는 러시아 리얼리즘 연극의 아버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대표작 중 하나지만 국내선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2026년 갑자기 핫해진 ‘바냐’를 어떻게 봐야 할까. 5가지 관전 포인트를 짚어 봤다.

LG아트센터 ‘바냐삼촌’의 이서진(오른쪽)과 고아성. [사진 LG아트센터]
1. 바냐 VS 반야
사실 LG아트센터와 국립극단은 지난해도 ‘헤다 가블러’로 맞붙었다. 각각 이영애와 이혜영이라는 스타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데 이어 올해 이서진 vs 조성하, 고아성 vs 심은경의 겹대결까지, 우연이라지만 흥미진진한 데스매치로 순수연극의 문턱을 낮추고 있는 모양새다.

일단 세간의 관심은 이서진의 연극 데뷔에 쏠렸다. 그간 매체에서 보여준 부티나고 지적인 ‘차도남’ ‘츤데레’ 이미지와 무능하고 찌질한 바냐 캐릭터의 간극이 태평양인데, 7일 첫 공연을 보니 거리를 좁히지 않는 방식으로 간단히 초월해 버렸다. 에드워드 호퍼 그림 속 같은 고독한 사람들의 공허한 심리를 상징하는 뚫린 문 형태의 거대한 세트는 몹시 연극적이지만, 이서진은 별다른 연기를 하지 않는다. 익숙한 ‘츤데레’ 그모습 그대로 우리 주변에 흔한 인텔리 백수의 우울을 쿨하게 토해내다가, 특유의 ‘스윗함’으로 객석의 허를 찌른다.

‘반야아재’ 조성하는 꽤 다를 것 같다. 영화 ‘황해’, 드라마 ‘구해줘’ 등에서 인상적이었던 악역의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안습’ 아재로 변신해야 한다. 국립극단은 1930년대 한국의 시골 정미소로 배경을 옮겼다. 조광화 연출은 “희곡이 주는 위로나 공감을 우리 이야기로 관객이 바로 체화했으면 해서 우리 이름과 우리 땅에 발 디딘 이야기로 보여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바냐’나 ‘반야’나, AI가 주도하는 오차 없는 시대에 100년 전을 살았던 서툰 사람들의 드라마로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힘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국립극단 ‘반야아재’의 조성하(아래)와 심은경. [사진 국립극단]
2. 중년의 사랑, 체호프
이서진은 개막 전 “바냐를 맡기 전부터 갱년기를 앓고 있어 이해가 어렵진 않았다”고 했다. 조성하도 “나이가 들면서 꺼져 가는 열정이 작품에서 드리우는 불안감, 무력감과 같다고 느껴졌고 대한민국 대표 ‘아재’로서 큰 공감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바냐아저씨’를 이머시브 연극으로 만든 이항나 연출도 “나이 쉰이 넘어가니 체호프가 찾아왔다”고 했었다.

두 공연의 예매자도 40대 이상이 약 50%다. 흔히 체호프는 ‘중년을 위한 작가’로 불린다. 러시아 농노해방 전후의 혼돈 속에 살았던 체호프의 작품에는 과도기적 인간의 불안과 허무가 가득하다. 어딘지 슬프지만 셰익스피어나 그리스비극을 수놓는 살인이나 복수,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가 제시한 거시적인 구원의 길은 없다.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에서 소외되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만 있다.

특히 ‘바냐아저씨’는 중년 남성이 평생 지켜온 신념이 흔들리는 과정의 혼란을 고스란히 드러낸 ‘체호프 리얼리즘의 정수’로 꼽힌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막심 고리키가 체호프에게 보낸 편지가 흥미롭다. “바냐아저씨는 완전히 새로운 연극예술이며, 대중의 머리를 후려치는 망치다. (중략) 우상에게 희생된 삶에 대해, 인간들의 저급한 삶에 개입한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고 여타의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다른 드라마들은 당신의 드라마처럼 인간을 현실로부터 철학적인 일반화에까지 데려가지 못한다”.

고리키의 말처럼 ‘바냐’ 무대엔 ‘한 인간의 존재감’에 대한 고민이 있다. “난 살아본 적이 없어.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다 날렸어”라는 외침이나 “나는 이제 마흔일곱이야. 예순에 죽는다 해도 앞으로 13년이나 더 살아야 해. 너무 길어. 그 13년을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대사는 젊음을 바친 일터에서 언제 AI에 대체될지 몰라 불안한 요즘 중년의 심정 그 자체다.

‘현대 리얼리즘 연극의 아버지’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 [중앙포토]
3. 드라이브 마이 카 & 모자무싸
바냐가 뜨는 건 영상 매체의 영향도 있다. 바냐의 고독은 알게 모르게 꾸준히 재생산되어 왔다. ‘한국의 체호프’라 할 박해영 작가의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황동만(구교환),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손석구), ‘나의 아저씨’의 박동호(이선균)가 모두 21세기 바냐다. 이 애처로운 ‘아재’들의 인기가 바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준다.

가장 세련된 동시대적 해석으로 꼽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면 무대의 관전 포인트가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을 원작 삼아 ‘바냐아저씨’를 극중극으로 보여주는데, 다국적 배우들이 각자의 언어로 말하는 부조리극 스타일로 연출해 체호프 극작 특유의 소통 문제와 ‘파우자(Pausa, 사이 또는 침묵)’를 극대화했다. 사실 ‘바냐’ 속 대사는 대화라기보다 자기 말만 하는 ‘독백의 화성악’으로 불린다. 그래서 파우자의 길이나 뉘앙스 처리가 극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관객이 읽게 만드는 시간이라서다.

LG 버전은 슬로우모션으로 서서히 꺼져가는 엔딩의 암전에 ‘파우자’를 집중한 듯 하다. 체호프를 전공한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윤서현 박사는 “체호프는 말로써 전달되는 것과 다른 차원의 뉘앙스가 전달되는 순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파우자를 독특하게 사용했다. 체호프의 풍경화는 그런 설명이 안 되는 지점들 때문에 매력적이고, 해석이 화수분처럼 나온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김애란 작가가 AI에게 없는 인간다운 점으로 ‘망설임’을 꼽은 것도 일맥상통한다.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목소리의 떨림이나 침묵이 AI가 흉내낼 수 없는 공감의 결정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김 작가의 말처럼, 체호프의 파우자도 대사보다 더 큰 이야기를 전한다.

4. 눈물 나는 코미디
첫 연극무대에서 이서진은 예상을 넘어 빵터지는 큰웃음을 자주 선물하는데, 바냐의 매력 중 하나는 ‘희비극’의 아이러니다. 1899년 모스크바예술극장 초연 당시 체호프와 스타니슬랍스키의 대립이 재미있다. 체호프는 바냐가 쏜 총이 빗나가는 서투름이나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음을 부각시켜 실소와 페이소스를 동시에 유발하길 원했으나, 당대 최고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고통과 절망에 집중해 웃음기 없는 비극으로 만들었다.

이 버전이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현대 리얼리즘 연극의 토대가 됐지만, 요즘은 비극이라는 통념을 깨는 체호프다운 아이러니의 구현이 관건이 됐다. 윤 박사는 “체호프 시대 러시아 사람들은 작가를 예언자로 생각하고 해답을 구했지만, 체호프에게 중요한 건 해답 제시가 아니라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군가 웃고 떠들 때 누군가는 목숨을 끊는 것처럼, 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희비극’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손상규 연출도 “멀리서 바라보면 우리 모두는 어우러져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을 것”이라며 “실수투성이 인간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체호프의 시선처럼 우리도 서로를 혹은 자기 자신을 좀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5. 소냐의 위로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와 맞짱뜨는 바냐의 시그니처는 사실 소냐의 독백이다. 오십줄에도 본명 ‘이반’이 아니라 아명으로 불리는 철없는 어른 바냐의 눈물에 소냐는 “어쩌겠어요, 살아가야죠”로 시작해 “기다려요, 우린 쉬게 될 거에요”로 끝나는 긴 독백으로 응답한다. 미래가 더 불안한 다음 세대가 오히려 의연하게 부모 세대를 위로하는 것이다.

윤 박사는 “소냐의 이름은 지혜, 바냐의 이름은 바보, 바냐의 누이 이름인 베라는 믿음을 뜻한다. 베라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믿음이 사라지고 기댈 곳 없는 세계를 사는 우리 바보들이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면서 “여성에 대한 당대의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체호프였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후기 소설이나 희곡의 경우 희망을 제시하는 인물로 젊은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2026년의 우리가 바냐를 소환한 것도 소냐의 지혜가 필요해서 아닐까.

둘 다 연극 데뷔인 고아성과 심은경의 진검승부가 궁금한 이유다. 영화 ‘파반느’의 서글픈 내면 연기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오른 고아성의 독백은 이서진과 마찬가지로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지만, 흐느끼는 삼촌을 감싸안을 때 특유의 다정함이 물씬 묻어난다. 그 다정함은 오랜 시간 소녀 곁을 지켜온 삼촌에게서 비롯됐다는 것도 느껴지는 무대다.

심은경의 독백은 어떨까. 최근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로 키네마준보 여우주연상을 수상할만큼 절제된 연기로 정평난 그는 이 독백에 “슬픈 감정에 골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과 이상을 담겠다”고 했다. 심은경은 “소냐의 독백은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만큼이나 가볍게 뱉을 수 없는 대사”라며 “무대 위에 오롯이 나와 독백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완전히 몰입해서, 마치 천사의 말을 대신 읊는 듯한 상태가 되었으면 한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연주자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 같은 존재가 시공간을 지켜주는 숭고한 느낌을 받곤 한다. 살아서 이걸 보고 있다는 게 감격스러울 정도로 빛나는 그 감각을 우리 연극에서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 안톤 체호프의 ‘바냐아저씨’
러시아 시골 영지의 관리인 바냐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조카 소냐와 함께 죽은 누이의 남편인 세레브랴코프 교수를 평생 뒷바라지해 왔다. 그러나 은퇴한 교수가 매력적인 새 아내 옐레나와 돌아와 영지를 팔자고 제안하고, 바냐는 자신의 지나온 삶에 대해 깊은 회한과 분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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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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