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I는 3%대지만 라떼·아이스크림·외식비는 여전히 고공행진 소고기 12%·휘발유 19% 상승…평균 물가에 가려진 생활비 압박 뉴욕 카드 내역으로 본 '통계물가와 체감물가'의 간극
(뉴욕=머니투데이방송) 염현석 특파원= 4월의 어느 오후, 맨해튼 거리의 한 노점에서 콘아이스크림 하나를 샀다. 특별한 디저트도, 유명 매장의 상품도 아니었다. 길거리에서 쉽게 사 먹는 평범한 아이스크림이었다. 카드 결제 알림에 찍힌 금액은 1만9662원이었다. 며칠 뒤 스타벅스 라떼 한 잔은 1만807원, JFK 공항에서 산 500ml 음료수는 9820원이었다.
미국 물가는 통계상으로는 상당 부분 안정된 것처럼 보인다. 2026년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CPI는 전년 대비 3.3% 상승했다. 팬데믹 직후 9%대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과 비교하면 상승률은 크게 낮아졌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물가 압력이 완화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실제로 마주하는 가격은 다르다. 주유소 가격판, 마트 고기 진열대, 식당 계산서, 공항 매점 영수증에는 여전히 높은 생활비가 반영돼 있다. 물가상승률은 둔화됐지만, 이미 높아진 가격 수준이 쉽게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CPI는 둔화됐지만 생활비 부담은 여전
2026년 3월 CPI에서 식료품 전체 가격은 전년 대비 2.7%, 식료품점 물가는 1.9% 상승했다. 수치만 보면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러나 외식물가는 전년 대비 3.8% 올랐다. 풀서비스 레스토랑 가격은 4.3%, 제한서비스 식당 가격도 3.2% 상승했다.
외식 가격이 쉽게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식재료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식당 가격에는 원재료비뿐 아니라 인건비, 임대료, 전기료, 보험료, 카드 수수료, 배달앱 수수료 등이 함께 반영된다. 일부 원재료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메뉴 가격이 곧바로 낮아지기 어려운 구조다.
소고기 가격은 특히 상승폭이 컸다. 같은 기간 식료품점 물가가 1.9% 오르는 동안 소고기·송아지고기 가격은 전년 대비 12.1% 뛰었다. 다진 소고기는 11.0%, 로스트용 소고기는 11.7%, 스테이크는 15.2% 상승했다. 전체 CPI만 보면 물가상승률은 3%대지만, 소비자가 실제 구매하는 품목별 가격 부담은 훨씬 클 수 있다.
반대로 달걀 가격은 전년 대비 44.7% 하락했다. 다만 이는 2025년 조류인플루엔자 여파로 가격이 급등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 성격이 크다. 달걀 가격 하락만으로 식료품 전반의 부담이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소고기, 음료, 외식 등 주요 생활 품목의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휘발유도 체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품목이다. 2026년 3월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12.5%, 휘발유 가격은 18.9% 상승했다. 한 달 기준으로도 휘발유 지수는 21.2% 급등했다.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은 출근, 통학, 장보기, 여행 등 일상적인 이동 비용과 바로 연결된다. 주유소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 부담도 빠르게 커진다.
◆뉴욕 카드 내역에 찍힌 고물가
공식 통계만으로는 도시 소비자가 실제로 느끼는 물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뉴욕에서 결제한 카드 내역을 보면 부담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JFK 공항에서 산 과자 두 개와 음료수 하나는 2만4466원, 공항 샌드위치 하나는 1만3626원이었다. 맨해튼 길거리 노점 콘아이스크림 하나는 1만9662원으로 결제됐다.
라떼 한 잔은 1만807원, 푸드코트 쌀국수 한 그릇은 3만632원이었다. 물 한 병과 환타 한 병은 1만5176원, 파스트라미 베이글은 1만8110원이었다. 과거에는 부담 없이 사던 간단한 식음료도 원화로 환산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된다.
외식 가격은 더 높다. 블루노트 재즈바에서 햄버거와 맥주 한 병은 8만2282원, 첼시마켓에서 랍스터롤과 맥주 한 잔은 9만370원, 벤자민 스테이크하우스에서 포터하우스 스테이크와 와인 한 잔은 18만3555원이었다. 뉴욕이라는 지역적 특성, 관광지 가격, 세금과 팁, 환율 효과가 모두 반영된 금액이다.
교통비도 부담 요인이다. 뉴욕 지하철은 현지 기준으로는 비교적 효율적인 이동수단이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한 번 이용할 때 약 4490원 수준이다. 하루에 여러 차례 이용하면 교통비만 2만원을 넘기기 쉽다. 우버 이용금액은 한 차례에 7만87원이었다. 대중교통과 차량 호출 서비스 모두 체감 생활비를 높이는 요인이다.
◆문제는 상승률보다 가격 수준
현재 미국 물가를 볼 때 중요한 점은 물가상승률 둔화와 물가 하락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CPI 상승률이 9%대에서 3%대로 내려왔다는 것은 가격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격은 여전히 과거보다 높은 수준에 있고, 다만 오르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뜻에 가깝다.
소비자가 느끼는 부담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물가상승률은 둔화됐지만, 식료품과 외식, 에너지, 교통비 등 필수 지출 항목의 가격 수준은 여전히 높다. 특히 소고기 가격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고, 외식물가는 4% 안팎에서 버티고 있다. 휘발유 가격도 중동 리스크와 에너지 시장 변동에 따라 다시 상승할 수 있다.
달걀처럼 가격이 크게 하락한 품목도 있지만, 일부 품목의 하락이 전체 생활비 부담을 낮추기에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는 CPI 평균이 아니라 실제로 자주 구매하는 품목의 가격을 기준으로 물가를 체감한다. 이 때문에 공식 통계와 생활현장의 체감물가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있다.
결국 현재 미국 물가 상황은 ‘인플레이션 둔화’와 ‘고물가 지속’이 동시에 나타나는 국면으로 볼 수 있다. 공식 CPI는 3%대까지 내려왔지만, 뉴욕에서 라떼 한 잔은 1만원, 아이스크림 하나는 2만원에 가깝다. 평범한 한 끼 식사도 원화 기준으로 3만~9만원대를 오간다. 물가상승률은 낮아졌지만, 소비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생활비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