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왜 이러나… 한국와이퍼 집단해고, 한국옵티칼처럼 아팠다
시화노동정책연구소, 3년후 실태 조사
재취업자 79% 임금 하락, 34%가 임시직
284명 해고… 설비 타업체로 이전 납품 계속
“재취업 된다고 삶 회복되는 게 아냐”
보험금 받고 자회사 고용 외면 한국옵티칼
항소심 다툼중… 외투기업 ‘고용 책임’ 화두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이 국내 자회사를 청산하면서 노동자는 해고하고 사업은 또 다른 자회사로 넘겨 이어가는 방식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른바 ‘먹튀’ 논란을 빚은 안산 한국와이퍼 집단해고 노동자들이 여전히 고용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추적 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현재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2월11일자 8면 보도)들도 엇비슷한 구조의 해고를 두고 법원에서 다투는 등 사용자 책임을 묻기 어려운 외투기업의 고용 책임 공백 문제가 재차 떠오르고 있다.
■재취업자 10명 중 8명 임금 줄어… 고용안정협약 무시한 ‘기획청산’ 3년 후
8일 시화노동정책연구소의 ‘외투기업 철수 집단해고 3년, 노동자의 삶과 고용을 묻다’ 조사에 따르면, 일본 덴소 자본이 지배했던 한국와이퍼 집단해고 노동자 가운데 재취업자의 79.1%가 재직 당시보다 임금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직 비율은 34.4%로 늘었고 해고 2년이 지나도 가구 경제가 악화됐다고 응답한 비율은 60%에 달했다. 조사 대상자의 평균 나이는 51세, 평균 근속연수는 13년이었다.
보고서는 집단해고 이후 실업급여·복지급여·건강·심리 지원이 각각 다른 기관에서 따로 운영돼 노동자가 여러 기관을 찾아다녀야 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구조조정·집단해고 피해 노동자를 위한 종합적인 통합 지원기관인 ‘전환지원센터’ 설치 필요성을 짚었다. 아울러 대량해고나 사업이전이 예정된 경우 사전에 고용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지역사회와 협의하는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와이퍼 사태(2023년 2월13일자 7면 보도)는 일본 자동차 부품기업 덴소가 100% 지분을 보유한 국내 자회사에서 지난 2021년 노사 간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을 무시하고 이듬해 7월 일방적으로 청산을 결정해 노동자 284명이 해고된 사건이다. 청산 이후에도 덴소 측은 생산 설비를 다른 업체로 이전해 납품을 계속했다.
■보험금 647억 챙기고 폐업… 항소심서 ‘하나의 사업단위’ 여부 다툼
외투기업의 자회사 청산에 따른 집단해고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기도 하다. 구미 한국옵티칼도 일본 닛토덴코가 100% 지분을 보유한 국내 자회사로, 2022년 10월 해당 공장 화재 이후 21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강행하고 이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이듬해 2월 해고했다. 화재 직후 닛토덴코의 또 다른 자회사인 평택 한국니토옵티칼이 구미 공장 물량을 대체 생산했고 LG디스플레이 등 기존 거래처 납품도 이어졌다. 현재 해고 노동자들은 항소심에서 해고 무효를 다투고 있다.
해당 항소심의 주요 쟁점은 한국옵티칼과 니토옵티칼을 하나의 사업단위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금속노조 법률원 항소심 분석 자료를 보면, 두 법인은 닛토덴코 본사의 단일 지휘 체계 아래 편광필름 후공정을 나눠 생산해왔고 인사·노무 및 재무·회계도 통합 관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닛토덴코는 647억원 규모의 화재 보험금을 수령하고도 공장 재건 대신 청산을 택했으며 평택 자회사는 같은 고객사에 납품을 이어가고 있다. 하나의 사업단위로 인정되면 평택 공장이 정상 가동 중인 이상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해 해고는 무효가 된다는 주장이다. 외투기업이 복수의 한국 법인을 두고 사업을 운영하다 일부를 청산할 경우 어느 법인을 기준으로 정리해고 요건을 심사할지는 한국와이퍼 사태에서도 제기됐던 문제다.
■“들어올 땐 혜택, 나갈 땐 뒷짐”… 외투기업 진입 조건·상시 협의체 필요성
이번 연구를 진행한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와이퍼는 지역에서 노동조합이 있는 평균 이상의 일자리였는데 재취업한 사업장은 규모도 작고 노조도 없다 보니 노동조건이 훨씬 열악해졌다. 재취업이 됐다해서 삶이 회복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 조사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와이퍼나 한국옵티칼처럼 외투기업이 혜택을 누리다 철수할 때 고용 문제가 반복되는 만큼 기업이 들어올 때부터 일정 기간 고용을 보장하는 조건을 달아야 한다”며 “문제가 터진 뒤 수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의 산업단지 차원에서 고용 동향을 모니터링하고 위기 징후가 보이면 사전에 협의할 수 있는 상시적 채널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한국와이퍼 노사합의로 설립된 노동공익재단 재단법인 뚜벅이가 시화노동정책연구소에 의뢰해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1차(2025년 4~6월)와 2차(지난 2~3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16명, 113명을 대상으로 했으며, 사례조사는 지난 1~2월 25명을 대상으로 총 8회 심층 인터뷰 방식으로 이뤄졌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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