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그놈의 앱 한번 지우기 드럽게 힘드네”

아르떼 2026. 5. 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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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OTT 눕방일지
소원을 비는 저주의 앱 얘기 그린
넷플릭스 8부작 드라마 <기리고>

넷플릭스 8부작 드라마 <기리고>는 3화 중간쯤에는 멀쩡히 잘 다니던 대기업을 신병(神病)을 앓은 후 때려치우고 무속인이 된 여자 햇살(세속명 하영. 전소니)이 동생 하준(현우석)이 데려온 세아(전소영)가 원령에 씌어 혼수상태에 빠지자, 그녀를 눕혀 놓고 주문을 외우는 장면이 나온다.

“살았으면 삼 넋이요 죽었으면 삼 혼이라. 한 넋이라도 없으면 못사는 법입니다. 넋 난 자손 넋문 열고 혼 난 자손 혼문을 열어. 넋 든 낭에 넋 들이고 혼 든 낭에 혼 들일 제. 궂은 거, 흉한 거 오리정 바깥에 다 버리시고 우리 아이 혼백만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옵나니”

전통 굿 중의 하나인 ‘넋 건지기 굿’의 주문을 드라마에 맞게 윤색한 이 대사는 이상하게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든다. 특히 ‘다른 건 다 버리고 우리 아이 혼백만 거두어 달라’는 마지막 구절은 이 드라마가 궁극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신이 있든 없든, 미신을 믿든 안 믿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문제가 많은 무속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실은 후대가 복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드라마 <기리고>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만큼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하고 또 이어지는 서사 구조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살려주시고, 잘 살게 해 달라’는 기성세대의 순수한 마음이 담겨 있다. <기리고>는 그 주제 의식이 좋은 작품이다.

‘기리고’는 고등학교 이름이 아니다.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는 서린중고등학교이다. (배경이 되는 실제 학교는 충남 홍성여고, 서울 은평중학교, 속초시실내체육관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교에 다니는 5명의 남녀 학생들이 주요 캐릭터이고 ‘기리고’는 이들이 빠져들게 되고 그 때문에 온갖 고초를 겪게 되는 ‘소원 앱’이다.

자신의 폰에 설치하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지되 하루 만에 죽게 되는 저주의 앱이 바로 ‘기리고’이다. 게다가 죽게 되는 과정이 잔혹하기 이를 데가 없다.

드라마의 오프닝 시퀀스는 어떤 여학생이 셀프 카메라를 켜고 자신의 이름과 사주를 적은 종이를 든 채 소원을 비는 장면이다. 여자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머리는 산발한 상태이고 다소 흥분돼 보인다.

“저 미친년 또 뭐 하나 싶지? <...> 내 소원은 너희들이 다 죽는 거야.”

그리고 정말 충격적이게도 크고 굵은 커터 칼을 자기 목 한쪽 끝에 찌르고 다른 쪽 끝까지 베어 간다. 마치 일본 사무라이가 할복하는 방식처럼 깊이 끝까지 자기 목을 자른다. 당연히 피가 솟구친다. 이 오프닝으로 드라마 <기리고>는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내용임에도 고등학생도 볼 수 없는(19세 이상 관람 가) 성인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다. 이른바 ‘영 어덜트’ 공포 미스터리 드라마가 바로 이 <기리고>이다.

세아(전소영)와 나리(강미나), 건우(백선호), 하준(현우석), 형욱(이효제) 다섯명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세아가 서린중학교에 전학을 왔을 때부터 건우는 그녀를 지켰고 고등학교에 가면서 둘의 사이는 더 깊어진 관계가 됐다. 세아는 멀리뛰기 선수이고 국가대표가 되려는 참이다. 건우도 선수지만 세아 만큼은 아니다. 이기적인 성격에 클럽도 들락거릴 만큼 ‘노는 아이’ 나리는 건우를 짝사랑한다.

하준은 거의 해커 수준의 컴퓨터 ‘덕후’이다. 보안 프로그램을 식은 죽 먹기로 뚫어낸다. 하준도 세아를 멀리서 좋아한다. 형욱은 늘 웃고 다니는 친구인데 한편으로는 성적(특히 수학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다. 나리는 그런 형욱을 자기들 표현으로 ‘씹떡 찐따’라 부르며 비아냥대고 홀대한다.

결국 형욱이 모든 사단의 시초가 된다. 형욱은 기리고를 이용해 수학 성적을 잘 받을 수 있게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은 성취됐으며, 그래서 24시간 타이머가 째깍째깍 흘러간 후에 오프닝 시퀀스의 그 여학생처럼 커터 칼로 자기 목을 자른 채 교실 밖 복도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는다. 형욱의 시체는 그런 그를 말리던 세아의 몸 위로 쓰러진다. 세아와 건우, 하준, 나리 모두 큰 충격에 빠진다.

8부작 <기리고>의 특이점은 보통은 등장인물들 사이에 비중의 높낮이가 있어서 분량 면에서도 나름 차이를 보이기 마련인데 연출자인 박윤서는 캐릭터 모두를 비교적 균등하고 균질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 세심함의 정도가 꽤 높아서 눈에 띌 정도이다. 주인공급인 다섯 명의 학생들 외에 무속인이자 하준의 누나인 하영, 곧 햇살과 그녀의 파트너인 남자 무속인 방울(노재원)도 주요 캐릭터이다.

햇살과 방울은 세아와 하준, 건우와 함께 붉은 폰을 찾으러 다닌다. 피에 젖은 붉은 폰은 매흉이다. 매흉(埋凶)은 저주의 매개체이다. 간신히 찾은 매흉도 진짜 매흉이 아니다. 극 종반부에는 진짜 매흉을 파괴하기 위한 햇살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햇살은 불교의 경전인 ‘법구경’의 일부를 읊조린다.

“심위법본 심존심사(心僞法本 心尊心使)”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기리고 저주의 근원도 다 마음의 원한에서 왔음을 햇살은 간파한다.

5부부터 시작해 6부, 그리고 8부 끝까지 나오는 도혜령(김시아), 권시원(최주은)도 매우 중요한 배역이며 시원의 엄마인 ‘돌아이 무당’ 업순(이상희)은 이 드라마가 전개하는 모든 이야기의 전제 급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특히 저주에는 피가 필요하며 극 전반에 ‘솟구치는 피’의 개연성을 부여하는 인물이다.

드라마 초입부 오프닝 시퀀스에서 자기 목을 잘라 솟구치는 피와 함께 죽어버린 여학생이 바로 도혜령이다. ‘기리고’ 앱을 개발한 것은 권시원이며 자기가 속한 코딩 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느 디지털 경시대회에 나가기 위해 앱을 만든 것이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 앱에 도헤령의 저주가 걸린 것이다.

1부 첫 장면에서 도혜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은, 2, 3, 4, 5부를 거쳐 6부에 와서야 드디어 밝혀지며, 7부와 8부는 이 모든 저주의 사건을 해결하는 대단원으로 꾸며진다.

등장인물들 모두는 주거니 받거니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데, 그건 살아서나 죽어서이나 변함이 없다. <기리고>의 배역들 모두에 골고루 분량이 주어지기까지는 각자의 시점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하려는 연출 박윤서의 의도, 작가 박중섭의 기획이 깔려 있다. 형욱의 죽음은 세아와 건우, 나리와 하준의 시점으로 재해석된다. 나리는 이 모든 일이 구차한 변명, 핑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이 미안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제일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사건 자체는 하나이며 평면적인 직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의 입장으로 놓고 보면 사건은 다면적이고 곡선으로 이루어진 듯 복잡한 내용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일종의 ‘라쇼몽 효과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에서 같은 사건을 두고 목격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해석한 데서 유래)’를 <기리고>에서 발견할 줄은 생각지 못한 부분이다.

팝콘 무비로 시작하는 척했지만, 전체 서사는 매우 탄탄하고 촘촘한 구조로 되어 있다. 연출과 각본의 기량이 만만치 않다. 신인급 배우 모두(기성 배우는 방울 역의 노재원과 시원의 엄마로 무당 업순 역인 이상희밖에 없다. 이상희는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연기력이 좋아 보이는 것은 조금 과장해서 평가하자면 순전히 연출의 힘이다. 박윤서가 신인들에서 연기를 뽑아낸 셈이다.

<기리고>를 보고 있으면 마치 빼곡한 서가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 들며 언제 그 책장들이 와르르 쏟아질지 모른다는 서스펜스와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한국에서 나온 공포 영화들 가운데 한 수 위인 수준급 작품이다. 잘 만든 드라마이다.

밀고 가는 주제 의식도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야말로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이다. 아이들이 쓰는 폰 앱이 저주에 걸렸다는 설정은 지금의 디지털 환경 자체가 저주에 걸린 듯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지금의 SNS, 지금의 학교, 지금의 사회와 국가, 지금의 인간관계 모두가 저주에 걸린 것과 진배없을 만큼 그 소통 과정이 엄청난 문제투성이라는 얘기이다. 극 중 아이들처럼 우리 모두 오해와 그로 인한 비방, 조리돌림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다는 얘기를 <기리고>는 일관되게 밀고 나가고 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세아는 극한의 싸움 끝에, 피투성이가 된 채 간신히 살아남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 씨발. 그놈의 앱 하나 지우기 드럽게 힘드네.” 그 전에 나리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이들 대사에서 사람들은 드디어 한시름 놓게 된다. 그리고 기이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실제로 우리 모두 이런 앱, 저런 앱을 깔아 놓은 채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착시 속에서 살아가지만 진짜 소통은 오히려 그런 앱을 하나하나 정리해 갈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안다. <기리고>는 그 소통, 대화, 관계의 복원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재밌는 한국 드라마를 내놨다.

<기리고>의 장점은 ‘기가 빨릴 만큼’ 숨이 차고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종종 이런 성과를 낸다. 넷플릭스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